▲ 김흥국(왼쪽), 신동엽, 이윤석 |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성격과 출연자의 취향이 다를 때 연예인들은 과감히 출연을 포기한다.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는 이가 신동엽이다. 신동엽은 지난 2004년 케이블 음악채널 M.net의 <슈퍼바이브파티> MC를 맡았지만 곧 제작진에게 자진 하차 의사를 밝혔다. 당시 신동엽의 이 프로그램 출연은 최정상급 공중파 MC가 최초로 케이블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점에서 방송관계자들에게 주목을 받았었다. 이런 관심만큼 제작비 또한 당시로는 유례없는 거액이 투자됐고 시청자들의 기대도 컸다. 하지만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듯 신동엽은 과감히 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당시 제작진은 클럽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새로운 트렌드를 엿보는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신동엽 역시 이런 제작 의도를 이해하고 동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녹화가 시작되자 신동엽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힙합 파티 분위기에 상당히 당황했다고 한다. 힙합에 문외한이었던 그는 오랜 고심 끝에 결국 자신이 계속 MC를 맡는 것이 시청자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해 결국 제작진에 하차의사를 밝혔던 것이다. 프로그램 녹화 단 1회 만에 하차한 신동엽을 대신해 2회부터 MC를 맡은 이는 클럽 문화에 정통한 홍록기였다. 신동엽은 스튜디오에 앉아 토크를 풀어나가는 프로그램을 선호하는 편인데, 그는 이런 자신을 스스로 ‘좌식 MC’라 부를 정도다.
‘남자의 자격’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개그맨 겸 교수 이윤석은 자신의 이미지를 고려해 출연 중이던 두 개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07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방송 활동과 대학 강단에서 강의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그가 자식 같던 프로그램을 두 개나 스스로 그만두어야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교수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는 ‘국민 약골’로 기억되는 이미지와 깊이 있고 진지한 강의를 해야 하는 교수 이미지가 다양한 곳에서 충돌하곤 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그는 당시 ‘아하’ 게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던 <무한도전>에서의 자진 하차를 결심하게 된다. 개그맨 동료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미지가 의도치 않게 돌출되는 느낌이 들어 하차를 결심하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
이후 <무한도전>은 정준하가 이윤석의 자리를 메우며 지금까지 높은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윤석이 자진 하차했던 또 다른 프로그램은 바로 <섹션TV 연예통신>이다. 10년이나 출연하며 ‘섹션의 산증인’으로 불렸던 그의 하차는 당시 의외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이 또한 주위의 시선이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교수가 연예인을 쫓아 다니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일부 동료 교수들의 시선이 그가 자진 하차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현재 그는 서울예술전문학교 학부장을 맡고 있다.
그런가하면 출연료에 대한 불만으로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하는 연예인들도 상당수다. 대개의 경우 섭외과정에서 출연료에 관한 조율을 하지만 선출연 후협상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한 케이블 프로그램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하게 된 개그우먼 A는 특유의 능청스런 입담으로 제작진들을 만족시켰다고 한다. A 역시 자신과 잘 맞는 이 프로그램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계속 열심히 녹화에 임할 각오를 보였지만, 어찌된 일인지 해당 프로그램에서 A의 얼굴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알고보니 그 이유는 바로 출연료였다.
첫 녹화 전까지 출연료 조율이 없었던 터라 녹화가 끝난 뒤 A는 제작진에게 넌지시 출연료를 물었는데 제작진의 답변을 듣자마자 A가 정색을 한 것. 그에게 책정된 출연료는 신인 개그맨의 출연료보다 못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한편 또 다른 개그맨 B는 출연료 인상을 요구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수년 동안 출연해온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하기도 했다. B는 자신에게 동기 부여를 해달라며 자신의 출연료 인상을 요구했지만, 제작진이 난색을 표한 것. 그런데 알고보니 B의 프로그램 자진 하차는 정말 하차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일종의 엄포였다고 한다. 그런데 의외로 프로그램 제작진은 기다렸다는 듯 자진 하차 의사를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결국 B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자진 하차 아닌 자진 하차’를 하며 프로그램과 아쉬운 작별을 고한 것이다. 게다가 당시 B가 요구한 출연료 인상액은 단돈 5만 원이었다고 한다.
지난 2010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는 가수 김흥국은 자신이 진행하던 두 개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했다. 월드컵 응원을 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하차 이유. 당시 교통방송 <행복합니다>와 SBS <브라보 라디오> 등을 진행하던 그는 방송국과 합의점을 찾는 데 실패하자 과감히 자진 하차를 결정했다.
그는 당시 “아내에게 축구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라며 늘 다짐하지만 또 이렇게 됐다”며 4년마다 찾아오는 자신의 ‘월드컵병(?)’을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또 “매번 월드컵 때마다 출연 중인 프로그램에서 자진 하차하는데 한국 팀의 성적까지 안 좋으면 일종의 괘씸죄로 6개월 넘게 방송 복귀가 어렵다”는 뒷얘기를 전하기도 했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