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귀남 법무장관(왼쪽)과 남기춘 전 서부지검장 |
실제로 남 전 지검장은 퇴임 후 “살아 있는 대통령을 수사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재벌은 교묘하게 수사를 방해했고 법무부도 우리를 지치게 했다”고 발언해 법무부의 수사 개입 사실을 시사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3월 남 전 지검장(당시 울산지검장)이 맡았던 한나라당 관계자들에 대한 선거법 위반사건 수사 때도 법무부 간부의 ‘수사 무마 시도’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검찰청법 제8조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전반적인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총장만이 지휘·감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법무부가 대기업과 여당 관계자들의 수사에 개입했다는 것에 대한 비난으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핵심은 이 법무장관이 김준규 검찰총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수사를 지휘한 이유가 무엇이고 청와대 등 윗선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장관이 청와대나 여권 실세의 언질을 받고 검찰수사에 압력을 행사했을 것이란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사정당국 안팎에서는 법무부 장관을 배후에서 주무르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을 것이란 소문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형국이다. 일각에서는 그 실세가 누구인지를 두고 갖가지 추측이 무성히 나돌고 있을 정도다.
이 장관이 김 총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수사지휘를 내리는 무리수를 둔 배경과 관련, 청와대-법무부-검찰 수뇌부 간 서열에 따른 지휘·감독의 애매함 때문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 총장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이 장관(12기)은 김 총장(11기)보다 사법연수원 한 기수 아래다. 서열을 중시하는 법조계 관행상 애초부터 이 장관이 김 총장을 진두지휘하기는 애매했다는 얘기다. 어색한 서열 설정과 그로 인한 검찰-법무부 수뇌부 간 소통 부재가 불러온 사건이라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청와대에서 사정 업무를 총괄하는 권재진 민정수석(10기)은 김 총장보다 한 기수 위다. 권 수석이 법무부와 검찰 사이에서 일종의 조정자 역할을 하거나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도 그냥 간과할 일은 아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안 그래도 현 정권의 측근 참모로 분류되는 이 장관의 위치를 재확인시켰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청와대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번 사태를 빌미로 자존심을 구긴 김 총장이 독기를 품고 정권 및 측근 사정수사에 착수할 경우 피를 불러올 엄청난 권력형게이트가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검찰과 법무부의 아슬아슬한 갈등을 넘어 청와대의 말 못할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이유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