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녀의 아름다움은 독이 될 수도 있다. 채팅 사이트에 미모의 여성 사진을 등록하는 방법으로 남성들을 유인해 수 천만 원을 뜯어낸 여성이 경찰에 붙잡혀 충격을 주고 있다. 일명 ‘인터넷 꽃뱀’으로 불리는 이 여성은 남성들의 심리를 이용하거나 혹은 ‘성매매’를 가장해서 피해자들의 지갑을 열게 했다.
‘호기심’에 약한 남성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꽃뱀 보이스 피싱’ 사기사건의 실태를 취재했다.
제주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2월 27일 미녀 사진을 미끼로 사이버 상에서 교제한 4명의 남성으로부터 7300만 원을 가로챈 박 아무개 씨(여·31)를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밝힌 박 씨의 범죄 수법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했다. 박 씨는 2003년 3월경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개설했고, 메인 화면에 인터넷 상에서 구한 미모의 20대 여성 사진을 올렸다. 그리고는 채팅을 통해 알게 된 김 아무개 씨(31)에게 미니홈피를 공개하며 ‘실제 나의 사진’이라고 속여 교제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나지는 않았지만 매일 통화와 채팅으로 인연을 이어왔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박 씨는 김 씨에게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한다” “엄마가 아픈데 병원비가 없다” “만나려고 하는데 차비가 없다” 등 갖가지 거짓말로 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박 씨는 적게는 1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까지, 김 씨로부터 3년 동안 636차례에 걸쳐 3350만 원을 뜯어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당연히 그녀의 실제 사진으로 알았고, 사진이 예뻐서 호감이 갔다”며 “2~3년간 통화와 채팅을 이어왔기 때문에 실제로 사귀는 줄 알고 돈을 송금해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씨에게 당한 사람은 비단 김 씨뿐만이 아니었다. 박 씨는 같은 수법으로 남성 3명을 유혹해 4000여만 원을 뜯어내기도 했다. 이들은 2~3년 동안 박 씨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만나기를 미루는데도 박 씨의 다정한 태도에 속아 넘어가 금품을 계속 건네줬다. 이로써 사기를 당한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만 갔고, 피해자들은 실제로 만남을 가진 후에야 속은 것을 깨달았다.
사이버 수사대 관계자는 “피해자들은 처음에 ‘아픈 과거를 들추고 싶지 않다’고 진술을 거부해 애를 먹었다”며 “경찰이 끈질기게 설득해 진술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씨 사건처럼 미모의 여성과 만남을 가지려는 단순한 호기심에 채팅을 했다가 피해를 보는 남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성매매’를 빙자한 ‘꽃뱀 보이스 피싱’은 남성들이 사기를 당하더라도 신고를 꺼린다는 점을 악용해 최근 더욱 활개를 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1일 새벽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 접속한 장 아무개 씨(34)는 ‘지금 당장 번개팅 가능해요!’라는 제목의 대화방에 들어갔다. 그를 맞이한 것은 자신을 20대 초반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며 다정하게 말을 건넨 한 여성회원이었다. 그녀는 한눈에 봐도 뛰어난 미인임을 증명하는 사진과 자신의 전화번호를 공개하며 “비교적 싼 가격에 성매매가 가능하다”며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는 “가격 흥정도 가능하다”며 자신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 것을 요구했다.
장 씨는 호기심에 별 의심 없이 전화를 걸었고, 그의 전화를 받은 사람은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다. 모 회사 사장이라고 당당하게 자신을 소개한 이 남성은 “우리 업체 이용료는 아주 저렴하다”며 “한 번도 경찰 단속에 걸린 적이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어 그는 장 씨에게 “조건 만남의 계약금 10만 원을 입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어눌한 말투 때문에 혹시 사기일이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장 씨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입금을 했다. 그리고는 여성에게 전화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전화는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았고, 알려준 전화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없는 번호라는 안내 멘트만 흘러나왔다. 장 씨는 성매매를 시도한 것 때문에 자신도 처벌을 받을까봐 경찰에 신고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장 씨보다 더 큰 금액을 잃은 안 아무개 씨(44)도 비슷한 경우를 당해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지난 2월 17일 역시나 채팅 사이트의 한 여성 회원에게 ‘조건 만남’ 비용으로 20만 원을 건네준 안 씨는 동료들이 만류하자 환불을 요청했다. 그러자 상대 여성은 “처음 보낸 금액이 너무 적어 계좌이체를 할 수가 없다”며 “80만 원을 더 보내 100만 원이 채워지면 한꺼번에 이체하겠다”고 말했다. 안 씨는 서둘러 80만 원을 입금했고, 다시 전화를 기다렸지만 여성은 내부 규정에 ‘환불 요구는 200만 원이 넘어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차일피일 환불을 미뤘다.
결국 안 씨는 다시 100만 원을 입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후에도 상대 여성은 갖가지 핑계를 대며 환불을 미뤘고, 안 씨는 결국 추가 입금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안 씨는 20만 원을 돌려받기 위해 일주일에 걸쳐 800만 원을 입금해 줄 수밖에 없었다. 안 씨는 3월 4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경찰에 알릴 수도 없으니 아내가 알기 전에 돈을 되돌려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마음이 급했다”고 털어놨다.
한동안 주춤하던 보이스 피싱의 변종 사기 수법인 ‘꽃뱀 피싱’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일까. 기자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성매매 남성을 가장해 몇몇 사이트에 직접 접속해 보기로 했다. 클럽○○○에 가입해 접속하자마자 여성 회원들의 쪽지가 쏟아졌다. “저랑 만남하실래요” “지금 당장 번개 가능해요” “저랑 접속 지역이 가까우시네요” 등의 쪽지와 함께 보내온 여성들의 사진은 한결같이 ‘미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눈길을 끌었다.
몇몇 여성에게 “얼마냐”고 묻자 비슷한 대답들이 돌아왔다. 10만~20만 원 선에서 계약금을 보내면 당일 만남이 가능하고, 만나서 잔금을 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해당 여성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하자 남성이 받아 흥정에 들어갔다. ‘직접 만나서 전액을 그 자리에서 지급하면 안되냐’는 질문에 이 남성은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을 잘랐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한동안 주춤하던 보이스 피싱의 변종이라고 보면 된다”며 “지난해 말부터 피해 신고가 증가하고 있는데 성매매 남성이 신고를 꺼린다는 점을 생각하면 피해 사례는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들의 IP 주소는 거의 중국이다. 통장도 대포 통장인 경우가 많아 피해 금액을 되돌려 받기가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