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 피플>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나스타샤 킨스키라는 배우가 지닌 유혹적인 야수성을 잊지 못할 것이다. 틴에이저 시절에 이미 성인 연기를 해냈던 그녀는, 1970~80년대의 섹시 아이콘 중 하나였으며 유럽과 할리우드 모두 그녀의 오묘한 분위기에 취했다. 광기의 상징과도 같았던 독일의 명배우 클라우스 킨스키의 딸인 나스타샤 킨스키. 어쩌면 그녀는, 연기자가 될 수밖에 없는 피를 타고났기에 한때 고통스러웠던, 마치 <캣 피플>의 ‘고양이 인간’과도 같은 운명의 배우다.
나스타샤 킨스키를 알기 위해선 그의 아버지인 클라우스 킨스키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1991년에 세상을 떠난 클라우스 킨스키는 기행과 독선과 광기의 배우였다. 오죽하면 자서전에서 독일 영화계를 지나치게 비판해 법적 분쟁에 이르렀을까. 직접 연출한 유작 <파가니니>(1989)는 포르노그래피로 몰리기도 했다. 유일하게 배포가 맞았던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와는 <아귀레, 신의 분노> 현장에서 피로에 지쳐 더 이상 영화를 못 찍겠다며 대들었다가 베르너 감독이 그에게 총을 겨누며 “영화를 찍을 건가, 아니면 여기서 죽을 건가”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개성적이면서도 강렬한 마스크, 정열적인 연기 스타일, 다양한 정체성을 소화할 수 있는 이미지 등 나스타샤 킨스키는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이 길지 않았다. 1961년에 딸이 태어난 후, 클라우스 킨스키는 1968년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새로운 연인이 생겼던 것. 나스타샤 킨스키는 10세 이후엔 아버지를 거의 만나지 못했고 어머니와 함께 궁핍한 생활을 해나갔다.
모델로 경력을 시작한 킨스키는 1975년에 빔 벤더스 감독의 <잘못된 동작>(1975)이라는 영화로 데뷔한다. 그리고 다음 해 15세의 나이로 첫 주연작을 찍는다. 영국의 호러 명가 ‘해머 스튜디오’가 제작한 <악마에게 딸을(To the Devil a Daughter)>(1976)이었고 당시 미성년자였던 킨스키는 정면 헤어 누드를 선보이며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파격은 이어졌다. <그대 머무는 곳에>(1978)에서 17세의 킨스키는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았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애정 연기를 선보인다.
이탈리아 영화 <그대 머무는 곳에>는 미국에 개봉되면서 킨스키를 대서양 건너편에 알렸는데 당시 저널의 환호는 대단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킨스키는 말 그대로 예쁘며, 노력하지 않아도 순수한 섹시함과 활발함이 자연스레 묻어 나온다”고 극찬했다. 이때 킨스키를 눈여겨 본 사람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었다. 그는 그녀를 <테스>(1979)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했고 그들은 촬영 전에 사랑에 빠졌고 영화가 완성된 후에 헤어졌다.
대서양 양쪽에서 그녀의 입지는 대단했다. 특히 <캣 피플>(1982)은 몸을 사리지 않는 그녀의 야수적 매력을 십분 드러낸 작품. 근친상간과 수간의 모티브가 뒤엉킨 이 영화에서 그녀는 인간과 표범 중간의 존재로 등장한다. 이런 동물적 느낌은 이 시기 그녀가 찍었던 사진으로 더욱 강화된다. 유명한 사진작가 리처드 아베든과 작업한 스무 살의 킨스키는 올 누드 상태에서 온몸에 비단구렁이를 감은 사진으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파리, 텍사스>(1984)의 킨스키는 20대 초반의 여배우로 보기엔 믿기 힘든 깊이를 보여주었고, <마리아스 러버>(1984)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원숙미는 틴에이저 시절부터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으로 단순한 육체적 성숙함을 떠나 넓은 스펙트럼의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연기력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애정 전선도 다국적으로 불타올랐는데 프랑스 배우인 제라르 드파르듀, 영국의 뮤지션인 존 테일러, 미국의 배우인 로브 로 등과 사귀었고, 1984년엔 이탈리아계 배우인 빈센트 스파노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는다(결혼은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 이집트의 영화 제작자인 이브라인 무사와 결혼한 킨스키는 1992년에 이혼했고 흑인 음악의 위대한 프로듀서인 퀸시 존스와 6년 동안 연인 관계였다(그들 사이엔 딸이 하나 있다). 이처럼 그녀에겐 유럽계 백인이라는 인종적 정체성을 지워진 마치 무국적자 같은 이미지가 있으며(웨슬리 스나입스와 공연했던 <원 나잇 스탠드>(1997)에 그녀가 괜한 이유로 캐스팅된 것이 아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도 한다.
킨스키는 성인 연기자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자 “나를 지켜줄 사람이 있었다면 혹은 나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좀 더 했다면 벗는 역할들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의 성적 이미지가 의도된 것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이국적 아름다움과 도발적 섹슈얼리티는 오로지 그녀만의 것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