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임부부와 급전이 필요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불법 난자매매 실태가 밝혀져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브로커 일당은 난자 제공자의 학력·외모에 따라 등급을 매겨 가격을 흥정해 수수료를 챙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KBS 뉴스 캡처 |
지난 6월 14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인터넷을 통해 난자매매를 알선한 혐의로 브로커 구 아무개 씨(여·40)와 정 아무개 씨(29)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이들의 소개로 돈을 받고 난자를 제공한 송 아무개 씨(여·28) 등 13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제공자의 신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난자를 채취·이식 수술한 산부인과 의사 남 아무개 씨(49)를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브로커가 제공한 난자 제공자의 프로필을 보고 의뢰인이 마음에 드는 난자 제공자를 선택하면 즉석에서 ‘매매가’가 정해졌다. 생명탄생의 과정을 물건처럼 사고 판 난자매매 브로커 일당의 범행 전말을 취재했다.
불임이란 피임을 하지 않고 1년 이상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해도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 결혼한 부부 6~7쌍 중 한 쌍의 빈도로 불임이 발생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불임증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2005년 13만 명, 2006년 14만 명, 2007년 16만 명으로 꾸준히 증가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불임시장 규모가 커지고 소위 돈이 되는 사업이 되자 여기저기서 불임치료를 빙자한 불법 난자매매가 성행하게 됐다. 구 씨 일당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대리모 경험이 있던 구 씨는 불임으로 고통받는 부부들이 많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대리모가 아닌 불법 난자매매를 하기로 계획했다. 2009년 9월경 구 씨와 정 씨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불임정보 공유사이트를 가장한 카페를 개설했다. 카페 이름은 ‘아름다운 동행 365일’과 ‘아기가 왔다’였다. 카페 가입자를 여성으로만 한정한 뒤 난자 제공자들을 모집했다.
난자 제공자들은 주로 급전이 필요한 무직자, 자녀를 둔 가정주부, 학비 마련을 위한 대학생, 내레이터 모델, 영어 강사 등 다양한 직업의 여성들이었다. 평균 나이는 24세로 그 중 최연소 난자 제공자로는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여성도 있었다. 난자 제공자들은 구 씨 일당이 요구하는 프로필을 작성해야 했다. 이 프로필은 의뢰인들에게 보여지는 것으로 난자 제공 여성들의 얼굴사진, 나이, 키, 몸매, 출신학교, 혈액형, 생리주기 등이 기록돼 있었다. 경찰조사 결과 심지어 일부 여성들의 프로필에는 난자공여 경험이나 대리모 경험까지 기록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구 씨 일당은 이렇게 난자 제공자들이 확보되자 진짜 불임부부들이 찾는 대학병원 불임센터 게시판에 홍보글을 올려 의뢰인들을 모집했다. 홍보글에는 불임부부와 대리모를 연결해준다고 속여 경찰 단속을 피했다. 구 씨 일당은 그렇게 홍보글을 보고 문의해 온 의뢰인들을 직접 만났다.
절차는 간단했다. 먼저 구 씨가 난자 제공자들의 프로필을 의뢰인에게 제공하면 의뢰인은 꼼꼼히 따진 후 마음에 드는 난자 제공자를 선택했다. 의뢰인들은 요구사항이 까다로웠다. 서울 소재 대학교 출신은 기본이었다. 여기에 유전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병력도 없어야 하고 피부도 좋은 여성을 원했다. 특히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아들 형제가 있는 난자 제공자를 선호한 의뢰인도 있었다. 또 일부 의뢰인의 경우 임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출산 경험이 있는 주부 난자 제공자를 원하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제공자가 선택되면 그 자리에서 가격 흥정이 이뤄졌다. 기본은 250만 원에서 시작됐다. 키 165㎝의 늘씬한 몸매에 외모가 뛰어나면 플러스 요인이 붙어 550만 원으로 가치가 상승됐다. 위의 까다로운 조건들 중 상당 부분을 만족하는 소위 1등급 난자 제공자들은 700만 원에서 1000만 원의 매매가가 형성됐다.
가격이 결정되면 다음 절차로 인성이나 심성을 살피기 위해 의뢰인과 난자 제공자 간의 일대일 면접도 실시됐다. 이렇게 모든 절차가 끝나고 최종 선택이 이뤄지면 브로커는 선택받은 난자 제공자와 이행계약서라는 것을 작성했다. 계약서에는 난자 매매대금 지급날짜와 총금액이 적혀졌다. 또한 ‘친권 및 양육권 포기 각서를 준비한다’ ‘채취 기간 중에는 술과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 등의 계약 조항들도 적시됐다.
보통 난자매매대금은 분할지급됐다. 예를 들어 총 매매대금이 300만 원일 경우, 계약금으로 100만 원이 지급되고 첫 주사 맞는 날 50만 원, 난자채취 당일날 아침에 나머지 150만 원이 지급되는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구 씨 일당은 총 매매대금에서 알선 수수료 명목으로 보통 50~60%의 금액을 챙겼다. 1000만 원을 받게 되면 500만 원에서 600만 원을 가져간 셈이다. 경찰조사 결과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난자 제공자 13명을 통해 총 16회에 걸쳐 7000여 만 원 상당의 난자 매매를 알선했고, 구 씨 일당은 이 중 3500만 원 정도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난자 채취는 보통 의뢰인이 원하는 병원에서 이뤄졌다. 유명 대학병원에서부터 동네 산부인과 병원까지 고른 분포로 난자 채취가 이뤄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비용은 검사에서 채취·이식 수술까지 전체적인 비용을 의뢰인들이 부담했다.
이번에 적발된 대구의 A 산부인과는 2003년부터 2010년 12월까지 약 700여 차례에 걸쳐 난자를 채취·이식 수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사 남 씨는 이 과정에서 진료기록부를 작성하지도 않은 채 시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건당 비용이 최소 200만 원인 것을 감안할 때 총 14억여 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셈이다.
난자 제공자들은 이처럼 일부 병원에서 신원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는 점을 악용해 흐릿하게 복사된 타인의 신분증 사본을 병원에 제출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난자 제공자인 송 아무개 씨는 타인의 신분증을 이용해 8개월간 3번씩이나 난자 채취 시술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단기간에 여러 차례의 시술로 인해 송 씨는 기억력 감퇴 및 자궁 약화 등의 후유증을 호소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생명윤리법상 난자 채취는 평생 3번밖에 할 수 없고, 6개월 이상의 간격을 둬야 한다.
경찰은 난자 이식 수술은 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난자매매 행위를 지속적으로 단속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