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초 ‘편지 조작’ 폭탄발언으로 정국을 발칵 뒤집었던 신명 씨가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홍 의원은 지난 BBK 사건의 키맨 김경준 씨의 기획입국설을 최초로 폭로한 인물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홍 의원은 BBK 사건의 키맨인 김경준 씨의 기획입국설을 최초로 폭로한 인물이다. 홍 의원은 2007년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김 씨가 정치권의 부탁을 받고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흠집을 내기 위해 기획입국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당시 홍 의원은 이러한 기획입국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미국에서 김 씨의 감방동료 신경화 씨가 쓴 편지를 공개했다.
하지만 올 초 신 씨의 동생 신명 씨가 “문제의 편지는 형이 아니라 내가 썼다”는 ‘폭탄선언’을 함으로써 정치권은 한때 격랑에 휩싸였다. 신 씨는 편지 대필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해 “편지조작 을 지시한 이들로부터 형의 감형과 미국 이송 등을 약속받았다. 당시 형을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고민 끝에 조작된 내용의 편지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신 씨는 편지조작에 거물급 배후가 있음을 언급해 엄청난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신 씨의 폭로는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측근들이 정권을 잡기 위해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던 신 씨를 끌어들여 치졸한 정치공작을 감행했는지, 또 사실이라면 사건에 개입한 ‘윗선’은 누구인지에 대한 두 가지 핵심의혹을 증폭시키며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신 씨의 주장에 대해 홍 의원의 입장은 단호했다. 홍 의원은 기획입국 조작설 및 배후설과 관련된 신 씨의 주장에 대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형을 감해주지 않으니까 전과자 가족들이 나서서 뭐라고 하는 것”이라며 편지 조작에 ‘윗선’이 개입됐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홍 의원은 또 “우리가 법적으로 잘못한 게 있으면 책임지겠다. 전과자가 감형 안 해준다고 아마 엉뚱한 소리를 하는 모양인데, 거짓말 했으면 그쪽에서 했겠지 내가 했겠느냐”고 반박한 바 있다.
이번에 신 씨가 홍 의원을 고소하게 된 것은 홍 의원의 인터뷰 내용이 단초가 됐다. 홍 의원을 고소한 직후 신 씨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엄연히 자기네들이 계획하고 시킨 일이다. 덮는다고 덮어질 일도 아니고 진실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홍 의원은 누구보다 그 내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숨기고 있으며 급기야는 내가 엉뚱한 소리를 하는 양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신 씨가 홍 의원을 고소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신 씨가 문제삼은 혐의는 명예훼손이다. 고소장에 따르면 신 씨는 홍 의원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신 씨는 고소장을 통해 “홍 의원은 과거 자신이 주도했던 기획입국설 사건에 대해 내가 자신의 주장과 다른 진실을 폭로하자 내가 한 말의 신빙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언론에 의도적으로 나를 ‘전과자 가족’으로 지칭하면서 내 인격을 경멸·비하했다”며 고소 경위를 밝혔다. 즉 홍 의원이 자신의 주장을 아예 귀담아 들을 가치도 없는 사람의 ‘헛소리’로 치부함으로써 사건 자체에 대한 객관적인 진실규명 기회조차 차단시켰다는 것이다.
몇 달 전 신 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잘못이지만 범지를 저지르라고 시킨 사람은 죄가 없다고 하는 모양새”라며 편지조작에 관여한 이들에 대한 강한 배신감을 표출한 바 있다. 이번에 신 씨가 홍 의원을 고소한 것도 이에 대한 연장선으로, 신 씨의 주장에 대해 ‘전과자’라는 표현을 포함시켜 반격한 홍 의원이 우선 대상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나아가 신 씨는 홍 의원이 허위사실을 내세우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신 씨는 당시 ‘편지 대필’ 사실을 폭로한 것은 홍 의원의 말처럼 형의 양형을 감형해주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고 재차 강조했다.
신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리 쪽에서 먼저 형을 감형해달라고 요구한 적이 절대 없다. 나는 치과의사여서 정치에 대해 모른다. 내게 접근한 것은 그쪽이었고, 형의 감형이 아니라 ‘원상복귀’를 제시했다. 그 당시에는 형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런 내 절박한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분명히 말하건대 형을 감형해준다는 정도의 조건이었다면 편지대필에 응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 씨의 이번 홍 의원 고소는 어찌보면 예견된 일이었다. 실제로 지난 4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신 씨는 홍 의원의 ‘전과자 가족’ 발언에 대해 경악과 분노를 금치 못하면서 “잘못된 일이 있으면 법적으로 책임지겠다고 한 홍 의원에게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선전포고를 한 바 있다. 그는 또 “5장으로 된 편지 조작 지시 문건이 있다. 그쪽의 추이를 봐서 하나하나 밝혀나가겠다”며 추가 폭로를 예고하기도 했다.
신 씨는 홍 의원의 발언으로 인해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상당한 충격을 받았으며 정신적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신 씨는 지방의 한 치과에서 진료를 보던 생업마저 중단하고 지방에서 요양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씨는 “홍 의원은 내 주장을 마치 전과자 가족의 허튼 소리로 치부해버렸다. 치과의사로 성실히 생활해오던 내 자존심과 명예, 사회적 평가는 땅으로 추락하고 말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피소사실과 관련해 홍 의원 측은 6월 17일 기자와 통화에서 “내용은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 전당대회 출마 준비로 인해 그 부분에 대해서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뭐라 딱히 할 말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