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말 논란이 된 ‘쥐식빵 사건’이 자작극이었다고 시인한 빵집 주인 김 아무개 씨가 수서경찰서로 출두해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뉴시스 |
지난 5월 9일 경찰은 한 블랙컨슈머를 적발하면서 범인의 치밀함에 혀를 내둘렀다. 당시 경찰에 붙잡힌 블랙컨슈머 민 아무개 씨(41)는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중국집만을 집중적으로 노렸다. 민 씨는 명동과 강남 등지의 고급 중국집에 들어가 음식을 시킨 뒤, 미리 준비한 수세미를 넣었다. 그리고 마치 수세미를 먹다 목에 걸린 것처럼 식당 안에서 생생한 구역질 연기를 감행했다. 업주들은 민 씨의 기막힌 연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민 씨는 보다 치밀한 연기를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뒤 병원을 다녀왔다며 준비한 진단서를 들이밀기까지 했다. 업주들 대부분은 놀란 마음에 돈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경찰 조사 결과 민 씨가 지난 6개월간 범죄를 저지른 중국집만 50여 군데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같은 달 19일, 성남에서는 식품회사를 상대로 제품에 이물질이 나왔다며 보상을 요구한 김 아무개 씨(31)가 경찰에 붙잡혔다. 김 씨는 지난해 1월부터 최근까지 빵과 과자, 아이스크림, 훈제류 등 각종 식품에 이쑤시개 등 이물질을 첨가한 뒤, 108곳의 식품업체에 보상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조사 결과 김 씨는 마땅한 직업이 없이 블랙컨슈머를 업으로 삼아 돈벌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블랙컨슈머의 활동은 업계 특성상 대개 식품업과 요식업계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 기자와 통화한 한 요식업단체 관계자는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는 수두룩하다. 우리 회원사 중에서도 바퀴벌레가 빠졌다든지, 갑자기 음식을 먹다 이빨이 부러졌다든지 황당한 이유를 들어 과도한 보상을 요구당한 사례가 많다. 손님과 법정까지 간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블랙컨슈머의 주요 타깃으로 활용되는 패스트푸드점들도 마찬가지였다. 기자와 통화한 한 패스트푸드업체 관계자는 “본사 고객 서비스센터에서 문제를 담당하고 있지만, 일부 규정을 벗어나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는 악덕 소비자들 때문에 애로사항이 많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토로했다. 블랙컨슈머의 활동이 ‘먹을거리’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블랙컨슈머의 활동은 전자업계에서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5월, 이 아무개 씨(28)는 자신의 휴대폰이 충전 중 폭발했다며 삼성전자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했다. 당시 삼성전자가 이에 응하지 않자 이 씨는 언론에 자신의 사례를 제보하고 무려 47차례의 1인 시위를 벌인 끝에 500만 원을 챙겨갔다. 하지만 경찰 수사결과 이 씨의 폭발한 휴대폰은 전자레인지에 고의적으로 돌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얼마 전 이 씨는 법의 철퇴를 맞고 징역 1년 형에 처해졌다.
실제 블랙컨슈머로 인한 업계의 피해지수는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2007년 소비재를 생산하고 있는 중소제조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업체 120개 중 69개 업체가 한 달에 한 번꼴로 ‘악성클레임’에 시달리고 있다고 답했다. 약 60%에 달하는 수치다.
또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2008년 300개의 국내기업을 대상으로 한 ‘소비자 관련 애로 실태’ 조사에서는 무려 87.1%가 소비자로부터 부당한 요구를 받아본 바 있다고 답했다. ‘악성클레임’ 유형으로는 53.7%가 과도한 보상금액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무리한 환불 및 교체를 요구한 경우도 32.4%로 그 뒤를 이었다. 또한 상당수 블랙컨슈머는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 허위피해 사실을 유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최근 전문 블랙컨슈머들이 이렇게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과거보다 향상된 소비자 권리의식을 첫 손에 꼽는다. 소비자권이 향상되면서 기업들도 추세에 맞춰 보상 및 환불책 등 소비자 배려정책을 체계화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와 같은 환경을 악용한 전문 블랙컨슈머들이 비집고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블랙컨슈머들이 극성을 부려도 업체들이 대응할 방안은 마땅치 않다. 기자와 통화한 한 대형 유통업계 관계자는 “블랙컨슈머와 실질적인 피해고객들의 구분이 쉽지 않다. 대부분 원하는 대로 합의해준다. 우리는 당할 수밖에 없다”라고 답했다. 기자와 접촉한 대부분의 업체들도 이와 비슷한 답을 내놨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제대로 된 ‘소비자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블랙컨슈머를 근본적으로 퇴출하기 위해선 결국 법적·제도적인 대응책을 구비하는 것과 함께 체계화된 ‘소비자교육’을 통한 건전한 소비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억대 연봉도 가능
블랙컨슈머 대부분은 결국 보상금을 노리는 경우다. 최근에는 블랙컨슈머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까지 등장하면서 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 5월에 108곳의 식품업체를 상대로 악덕 클레임을 걸다 붙잡힌 김 아무개 씨(31)는 그야말로 ‘블랙컨슈머’가 직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5개월 동안 업체들을 상대로 1600만 원을 뜯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하면 지난 4월에는 중고TV를 이용해 돈벌이에 나선 문 아무개 씨(36) 등 일당 5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들은 중고TV를 이용해 일부 부품을 고의적으로 파손시킨 뒤, A/S센터에 수리를 의뢰했다. 수리를 마친 TV는 다시 문 씨 일당에게 돌아 갔지만 일당은 다시 고의적으로 부품을 파손시킨 뒤 재차 A/S를 요구했다. 이들은 3회 이상 A/S센터에 제품을 의뢰해도 수리가 불가능할 경우, 제품 정가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는 규정을 악용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지난 3년간 번 돈은 3억 5000만 원에 달했다. 억대 연봉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사례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블랙컨슈머가 요구하는 보상금액은 천차만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10만 원 이하의 소액에서 해결하지만, 심할 때는 정신적 피해를 들어 500만 원 이상의 고액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