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잘나가는 벤처 사업가와 장애를 극복한 검사의 결합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수영 씨(왼쪽)와 정범진 씨. |
게임업계 신데렐라로 명성을 떨치던 미녀 갑부 CEO와 장애를 이겨낸 인간승리 법조인과의 결혼은 당시 세간에 숱한 화제를 뿌렸다. 결혼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언론에 수차례 소개됐으며 국경과 장애를 넘어선 이들의 사랑에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눈물겨운 순애보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이들의 결혼생활은 7년 만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영원한 사랑을 서약했던 이들 부부에게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법원에 따르면 이들 부부의 파경은 정 씨의 이혼소송으로 이뤄졌다. 정 씨는 이 씨를 상대로 10억 원의 위자료와 20억 원의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는 6월 1일 정 씨가 제기한 이혼소송에서 “이 씨는 3억 원을 물어주라”며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결혼 후 장애인 남편을 방치하고 결혼 생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아 혼인을 파탄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이 씨는 2000년 창업했던 온라인 게임업체가 코스닥에 상장되면서 수백 억 원 상당의 주식을 보유한 벤처 사업가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이 씨는 예쁜 외모에 발레리나 출신이라는 특이한 경력까지 더해져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명성을 떨치던 그녀는 2004년 결혼발표로 또 한번 세상의 주목을 받는다. 이 씨의 결혼이 화제가 됐던 이유는 상대가 중증 장애를 딛고 성공한 정범진 당시 미국 뉴욕주 부장검사였기 때문이었다. 9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간 정 씨는 조지워싱턴대 법과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91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마비 장애를 안게 됐다. 하지만 정 씨는 어깨 아래를 쓰지 못하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법조인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33세의 나이에 쟁쟁한 동기들을 제치고 뉴욕 최연소 부장검사 자리에 오르는 인간승리를 보여줬다. 그리고 그는 2005년 뉴욕주 판사로 임명됐다.
이들의 인연은 2002년 8월 당시 KBS <리얼토크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에 정 씨가 출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중증 장애를 극복하고 1999년 미국 최연소 부장검사에 오른 정 씨의 인간승리 스토리는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마침 이 씨는 TV를 통해 정 씨를 눈여겨 봤고, 2003년 5월 이 씨가 정 씨를 이상형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기사가 한 신문에 실리게 된다. 기사를 접한 정 씨의 부친이 언론사 측에 연락을 해왔고 이를 계기로 둘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한 믿음을 쌓아갔다.
2003년 8월 드디어 뉴욕에서 첫 만남을 가진 두 사람은 이 씨가 한 달에 한 번꼴로 뉴욕으로 방문, 한번 갈 때마다 열흘씩 머물면서 데이트를 즐겼다. 그리고 그해 12월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태평양과 장애마저 뛰어넘은 ‘벤처 신데렐라와 한국판 오체불만족’의 눈물겨운 순애보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백년가약을 약속한 후 두 사람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당시 정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첫눈에 반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처음 보았을 때 검정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무척 멋있었다”는 말로 이 씨의 첫 인상을 설명한 정 씨는 “농구팀 정도는 만들고 싶다”는 자녀계획까지 얘기하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 씨 역시 “몸은 불편하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밝은 사람”이라며 정 씨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숱한 화제를 모으며 결혼한 이들은 결국 남남이 되고 말았다. 충격적인 것은 세간에 알려진 이혼사유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들의 결혼생활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던 순애보와는 전혀 딴판인 것으로 알려져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재판부에 따르면 교제 당시 이 씨는 웹젠의 초기 투자자들로부터 사기 및 횡령 혐의로 고소를 당하는 등 각종 송사에 휘말려 있었고, 초기 투자자들이 제기한 웹젠 주식 인도소송도 수행 중이었다. 당시 뉴욕시 검사였던 정 씨는 이 씨가 얽혀 있는 골치 아픈 일들을 처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의 결혼소식이 전해졌을 때 일각에서는 이 씨가 자신이 처한 복잡한 송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 씨를 이용하는 것이라는 곱지 않은 시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정 씨는 “이 씨가 재판을 받을 때마다 휴가를 내고 와 방청하고 친분 있는 한국의 검사들에게 사건 처리를 부탁하는 등 그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도록 적극 도왔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 씨는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혐의,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 씨의 순애보는 거짓이었던 걸일까. 정 씨는 이 씨가 민·형사 사건이 어느 정도 해결된 후 결혼 전과 달리 미국에 자주 오지 않았으며 장애인인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혼 얘기가 나오기 전 1년 6개월간 이 씨가 미국을 방문한 횟수는 단 다섯 차례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또 이 씨는 미국에 체류할 때도 집이 아닌 호텔에만 머물렀고, 심지어 정 씨를 추운 길에 방치하고 혼자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 씨의 무관심과 방치로 인해 정 씨는 도뇨관을 삽입해 소변을 배출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 처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정 씨는 이 씨에게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이에 이 씨는 정 씨에게 ‘이혼을 2~3년 정도 미루고 영주권 발급에 협조하면 10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1억 8400만 원만 지급하고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이혼 소송 과정에서 이 씨는 “정 씨는 내 재산을 노리고 결혼했으며 재산 획득에 실패하자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법원은 혼인파탄의 책임이 이 씨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들의 순애보는 서로가 서로를 이용했다며 물고 뜯는 진흙탕 이혼소송으로 7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한편 이 씨는 2004년 <일요신문>이 “이 씨에게 17세 아들이 있는데 남편이 사망하자 아들과 인연을 끊고 처녀 행세를 하며 살고 있다”고 보도하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나 패소한 바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