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에로 영화를 꼼꼼히 챙겨본 마니아들에겐 잊을 수 없는 이름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오혜림. 당대의 많은 여배우들처럼 그녀도 배우로서는 오직 1980년대만을 살았다. 그 시절 여배우의 트렌드였던 글래머 노선과는 거리를 두었던, 김진아와 함께 가장 도시적이며 세련된 이미지를 지녔던 배우, 바로 그가 오혜림이다.
지금도 활동한다면 50대 초반의 중견배우일 오혜림(본명 김채연)은 1979년에 지금은 없어진 TBC 방송사의 탤런트에 합격했다. 당시 미대 1학년. 비록 화가의 꿈은 접었지만 연기자로선 힘찬 시작이었다. 이후 언론 통폐합을 거치며 KBS에서 활동하던 ‘탤런트 김채연’은 조연급 연기자로 조금씩 이름을 알렸을 뿐 확실한 존재감은 없었다.
이 시기 그녀를 유혹한 것은 <애마부인>(1982) 이후 한참 에로티시즘으로 달아오르던 충무로다. 지금은 고인이 된 김성수 감독(<비트>의 김성수 감독과는 동명이인)은 <여자와 비>(1982)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1983) <여자는 남자를 쏘았다>(1983) 등 ‘여자’ 시리즈로 유명했던 연출자다. 그는 <탄드라 부인>(1985)을 위해 새 얼굴을 찾던 중 김채연이라는 탤런트를 발견했고, 이 영화의 작가인 이문웅은 ‘영화배우’가 된 그녀에게 ‘오혜림’이라는 이름을 선사했다.
이 영화에서 그녀가 맡은 역할은 성불구 남편을 둔 여성. 마흥식, 임성민 등 당대 에로티시즘 영화의 굵직한 배우들과 공연했는데 채울 수 없는 욕망을 현대 무용을 연상시키는 몸짓으로 승화시킨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특히 판타지 속에서 거의 나체로 들판을 달리던 장면은, 오혜림을 사랑했던 관객이라면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글래머보다는 각선미를 강조했던 그녀는 165㎝의 훤칠한 키에 34-23-35의 완벽한 몸매를 지녔던 모델급 여배우였다. 진하고 매서운 눈매와 작은 입, 그리고 뚜렷한 광대뼈와 오똑한 콧날의 마스크는 기존의 한국 여배우와 구별되는 서구적이며 도시적인 느낌이었다. 그녀는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하는 강리나의 직계 선배이자 오수미로 정점에 올랐던 악녀 이미지의 계승자였다. 그리고 김진아, 민복기 등 동시대 배우들과 함께 충무로에 새로운 여배우 이미지를 제시했다.
다시 김성수 감독과 만나 오수미 임성민 오경아 등의 굵직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었던 <색깔 있는 남자>(1985)는 오혜림의 섹스어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 초반부엔 주변부에 있지만 점점 영화의 중심부로 접근해 마지막 장면에서 화끈한 반전을 만들어낸다. 검은 슬립 가운을 입고 임성민과 에로틱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그녀는 이 영화의 진정한 팜 파탈이며, 당시 한국영화에선 접하기 힘들던 레즈비어니즘의 주인공이 된다.
<탄드라 부인>의 SM 콘셉트와 침대 위에서 검은 안대를 하고 달아오르던 마스터베이션 장면, <색깔 있는 남자>의 동성애 관계처럼 오혜림은 당시 한국 에로티시즘 영화의 아방가르드를 달리고 있었다. 이 시기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그녀는 자신의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꼭두각시처럼 흉내 내는 배우가 아니라, 본능과 예술로서의 에로티시즘을 멋지게 연기해보고 싶어요.” 자신의 연기력이 부족함을 절감하고 연극(극단 광장의 <루브>)에 도전했던 것도 이 시기였다.
하지만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너무 쉽게 사그라진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느슨하게 각색한 <무진 흐린 뒤 안개>(1986)를 계기로 에로 이미지를 벗고 변신하려 했지만, 그런 시도는 당대 핑크빛으로 물들던 충무로에서 여배우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는 다시 ‘그 세계’로 돌아왔고, <서울의 탱고>(1986) <여자가 밤을 두려워하랴 2>(1986) 등의 작품활동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그녀의 시크하면서도 도도하고, 사나운 암고양이 같은 이미지를 거의 살리지 못했던 작품들이다. 하지만 오수미 김부선 등과 함께 나이트클럽 댄서로 등장했던 <토요일은 밤이 없다>(1986)는 오혜림의 매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1987년 <풍녀> <엄마는 외출중> <푸른 계절의 열기> 등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은막을 떠난다. 5년 남짓한 기간 동안 열 편 정도 출연한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그녀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떠올려 본다면 아쉽기 짝이 없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