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을 둘러싼 의혹의 핵심은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으로부터 부산저축은행 구명 청탁을 받아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여부다. 이런 의혹은 부산저축은행에 투자한 아시아신탁에서 김종창 전 원장이 사외이사를 지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특히 김 전 원장이 지난 2008년 3월 금감원장에 취임하기 직전 서울대 동문인 사업가 박 아무개 씨에게 부인 명의 아시아신탁 주식 4%를 명의신탁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김 전 원장과 아시아신탁과의 관계가 주목을 받고 있다. 아시아신탁은 지난해 6월 부산저축은행 유상증자에 90억 원을 투자했다가 수개월 만에 투자액의 절반가량을 회수했다.
김 전 원장이 금감원장으로 재직하면서도 아시아신탁 주식을 위장 보유했다면 사실상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맺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명의신탁이란 소유권을 그대로 둔 채 이름만 빌려 주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조세회피나 지분보유 상황 은닉 등의 목적으로 종종 악용된다. 결국 검찰 주변에서는 김 전 원장이 아시아신탁을 ‘연결고리’로 부산저축은행 구명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신탁은 지난 2006년 10월 부동산 컨설팅업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이듬해 8월 금융감독위원회에서 신탁업 허가를 받아 회사 목적을 부동산 신탁업무 등으로 변경했다. 이 업체에서 김종창 전 원장은 사외이사를 맡아 회사 경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아시아신탁은 게다가 김 전 원장이 금감원장으로 재직한 2009년 4월 15일 금융위원회에서 집합투자업 인가를 받았다. 이 때문에 아시아신탁의 관계사인 아시아자산운용이 인허가를 받는 과정에서도 김 전 원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부산저축은행과 아시아신탁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지난해 3월 말 기준으로 아시아신탁은 아시아자산운용 지분을 9.9%, 부산저축은행도 지분 9%(계열사인 대전저축은행 4.5% 포함)를 보유하고 있다. 아시아신탁이 부산저축은행 유상증자에 참여한 것도 이런 지분 구조를 기반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야권에서는 은진수 전 감사위원과 마찬가지로 김 전 원장 역시 현 정권 실세들과 가깝다는 점으로 미뤄보아 김 전 원장이 로비의 최종목적지가 아닌 창구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 전 원장은 이미 2001년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끝으로 금융감독당국을 떠났으나, 현 정부 출범 이후 금융감독원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는 경북 예천 출신의 TK 관료인 데다 정권 실세인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행시 동기(8회)로 막역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반면 여권에서는 김 전 원장을 ‘로비의 꼭짓점’에 두고 있다. 감독당국의 부패와 금융감독 시스템의 부실 쪽으로만 초점을 모아가고 있는 것이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지난 2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감사원장 재직시 저축은행 감사 과정에서 “오만 군데서 압력을 받았다”는 자신의 발언에 등장했던 압력 주체로 김 전 원장을 직접 언급했다. 김 전 원장이 ‘감사 자제’ 요청을 한 사실은 물론, 당시 김 감사원장에게 면담신청을 한 것까지 공개했다.
한나라당도 비슷한 분위기다.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전체적인 금융감독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저축은행 비리를 현 정부 출범 이전부터 정책을 만들고 집행해온 ‘관료’들, 즉 감독당국의 책임으로 한정한 것이다.
여야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번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여야를 구분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특히 이번 사건 수사에 대한 국민적인 지지가 높기 때문에 한동안 실추됐던 검찰의 명예를 만회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김 전 원장이 로비의 몸통인지 아니면 깃털에 불과한지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이번 사건이 권력형 비리로 확전될지 여부는 김 전 원장의 입에 달려 있는 셈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