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지선 아나운서는 떠났지만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공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사진은 고 송지선 아나운서의 영결식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5월 23일 오후 6시에 열린 공식 브리핑에서 서초경찰서 곽정기 형사과장은 “모친이 잠시 화장실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사이에 투신자살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지난 7일에도 고 송지선은 트위터를 통해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남겨 119 구급대가 출동하는 소동을 일으켰다. 당시 글에서 고인은 “뛰어내리려니 너무 무섭고, 목을 매니 너무 아파요”라고 말했다. 반면 실제 투신은 모친이 잠시 화장실에서 통화하는 사이에 벌어졌다. 해당 오피스텔은 창문이 그리 크지 않은 데다 고인은 온몸에 이불까지 감고 뛰어내렸다. 잠깐의 시간 동안 벌어진 일임을 감안하면 고인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투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뛰어내리려니 너무 무섭다’던 고 송지선에게 17일 사이 엄청난 심경의 변화가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상황에 대한 인근 주민들의 증언은 경찰 발표 내용과 다소 차이점이 있다. 주민들의 증언은 몇 가지로 나뉘는데 공통점은 투신 직전 고인의 모친이 오피스텔 지하에 있는 죽집에 잣죽을 사러 갔었다는 점이다. 잣죽을 사러 간 사이에 투신했다는 증언이 있고 죽을 사와서 현관문을 여는 순간 투신이 이뤄져 이를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다. 해당 죽집 사장은 기자와의 만남에서 “투신자살 직전인 1시 30~40분 사이 고인의 모친이 와서 죽을 사갔다”고 말했다. 투신자살 추정 시간은 1시 44분. 경찰 발표와 이웃 주민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투신은 죽을 사온 모친이 전화를 받으러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이뤄졌다. 채 몇 분이 안 되는 틈이다. 결국 모친이 죽을 사러 가느냐고 집을 비운 20~30여분의 틈이 아닌 화장실에 전화 받으러 간 몇 분의 틈에 투신이 이뤄진 셈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걸려온 전화가 투신의 직접적인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네티즌과 일부 언론에선 고인의 모친이 임태훈(또는 그의 모친)과 통화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 빈소에서 고인의 모친을 만난 <스포츠한국> 기자가 “고인이 투신할 당시 받은 전화가 임태훈의 모친에게 온 것이었냐?”라고 묻자 그는 울컥하며 “나중에 모든 걸 다 말하겠습니다”라고만 밝혔다.
@두사, 임태훈 측과의 물밑 접촉 있었나?
고 송지선의 자살 이후 항간에선 지난 며칠 사이 고인과 임태훈 측 사이에 사전 합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고인의 모친과 임태훈의 모친이 만나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는 것. 실제 고인의 모친은 빈소에서 만난 <스포츠한국> 기자의 “임태훈 모친과 전화통화를 했냐?”는 질문에 “언제를 말씀하시는 겁니까”라고 답했다. 실제로 사전 합의가 이뤄졌는지의 여부는 불분명하지만 그동안 고인의 모친과 임태훈 모친 사이에 최소한 전화 통화 정도는 이뤄졌었음을 알 수 있다.
고 송지선의 입장 변화도 이를 뒷받침한다. 사건의 발단이 된 미니홈피 게재 사생활 관련 글에 대해선 “내가 작성한 것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반면, 임태훈과의 열애 여부에 대해서는 ‘부인’에서 ‘1년 반 동안 열애 인정’으로 입장을 바꿨다. 지난 7일 미니홈피 글로 논란이 시작된 뒤 16일 만에 ‘1년 반 동안 열애’로 입장을 바꿨지만 다음날인 23일 두산측에서 열애설을 부인했고 바로 그날 투신자살이 이뤄졌다. 이를 두고 양측의 사전합의설이 대두했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설들이 난무한다. 열애를 인정하기로 한 합의가 깨져 충격을 받았다는 설부터 두산 구단이 일방적으로 열애 부인 입장을 밝혔다는 설까지 다양한 추측만 나돌고 있는 것. 두산 구단과 임태훈 측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억울함을 토로하며 나중에 모든 걸 말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던 고인의 유족은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았다.
25일 성남시 영생관리사업소에서 만난 고인의 유족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고인이 자살을 앞두고 두산 구단과도 접촉을 가졌다는 것. 고인의 유족은 “(송)지선이가 두산 구단 관계자와 전화통화를 한 뒤 많이 힘들어했다”면서 “할 말은 많지만 유족들이 회의를 거듭해 그냥 덮기로 했다. 이미 때늦은 일이고 대기업과 싸울 수도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두산 구단 측은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고인의 유족들을 통해 고인의 모친과 임태훈 모친 사이에 접촉이 있었으며 고인과 두산 구단 측과의 접촉도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그렇지만 이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이런 물밑 접촉이 고인의 열애 인정 발표와 투신자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의 여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는다.
@회사 관계자와 통화? 왕따설의 실체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해당 전화가 임태훈이나 두산 구단 측이 아닌 회사에서 걸려온 것일 수도 있다는 것. 지난 23일은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고인의 거취를 결정하는 날이었고 투신이 이뤄진 시간엔 고인이 진행해온 <베이스볼 투나잇 야>가 재방송되고 있었다.
지난 25일 수서경찰서는 고인의 오피스텔에서 ‘경위서’라는 A4용지 두 장짜리 문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고인은 ‘가슴이 쩡 깨질 것 같은 우울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의 괴로움 심경을 토로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곧 직장인 MBC 스포츠플러스의 거취(징계 여부) 결정, 다시 말해 <베이스볼 투나잇 야>에서의 완전 하차 여부와 직결된다. 고인은 스포츠 아나운서라는 일에 상당한 재미와 보람, 긍지 등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대다수의 야구인이 이 대목에 동의한다. 너무 방송 욕심이 심해서 회사 동료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할 정도였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고인의 이모 역시 “아나운서가 꿈이었는데 결국 스포츠 아나운서가 돼 너무 행복하게 지내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 꿈이 깨질 위기에 봉착한 것 역시 고인에겐 상당한 압박이 됐을 수 있다. 게다가 임태훈과의 열애설 등 사생활 관련 사안으로 물의를 빚은 터라 다른 방송사로 이직해 방송을 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 아나운서들은 잦은 방송 노출로 연예인 비슷하게 보이지만 대부분 계약직으로 낮은 연봉을 감수하면서도 온종일 야구장을 누비고 있다. 고인 역시 MBC 스포츠플러스 계약직 직원이었다. 게다가 지인에 따르면 최근 들어 신용카드 결제금이 연체될 정도로 경제적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지만 갑작스럽게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다만 빈소 분위기를 놓고 보면 자살의 직접적 원인이 된 마지막 통화의 주인공이 MBC 스포츠플러스 관계자는 아닌 듯하다. 빈소 앞 주차장에는 보낸 이(회사)의 이름이 잘려나가고 꽃에는 파란색 라카 칠이 된 조화 세 개가 버려져 있었다. 이 가운데 하나가 MBC 스포츠플러스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지만 확인 결과 MBC 스포츠플러스에서 보낸 조화는 빈소 중심부에 놓여 있었다. 또한 안현덕 대표 등 회사 관계자들이 조문을 다녀갔고 발인 당시 만난 유가족도 회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원망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최정아 기자 cja87@ilyo.co.kr
너무 침착한 부친 ‘두 아들이 밟혀서…’
역시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이들은 고인의 유가족이다. 특히 모친은 지난 7일 자살 암시 소동이 벌어진 뒤 제주도에서 올라와 딸과 함께 기거하고 있었지만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투신자살이 벌어져 더 큰 충격을 받았다. 화장터에서 만난 고인의 이모는 “(송)지선이 어머니가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라며 “그 상처가 어찌 지워지겠느냐”며 울먹였다.
고인의 부친은 고인의 자살 소식이 알려진 직후 <일간스포츠>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서울에 가고 안 가고를 정하는 것보다 지금은 남은 두 아이들을 보살피는 게 우선인 것 같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발인 당시 울먹이던 부친의 모습을 감안하면 자살 소식을 접한 직후엔 최대한 침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항간에선 고인의 친아버지가 아닌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인의 이모는 “막내가 이제 대학교 1학년인데 누나(고인)를 많이 따랐다”면서 “소식을 듣고 막내가 너무 큰 충격을 받아 형부(고인의 부친) 입장에선 막내를 챙기는 것도 중요했을 것이다. 결국 막내는 서울에 차려진 누나 빈소에도 오지 못한 채 제주도에서 이웃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유족에 의하면 서울 빈소에 온 아들(고인의 첫째 남동생)도 몸이 좋지 않다고 한다. 결국 당시 고인의 부친은 몸이 안 좋은 아들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아들을 보살피는 걸 게을리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애초 고인의 부모는 “나중에 말하겠다”는 입장을 보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고인의 이모는 “억울하지만 덮기로 했다. 우리가 세상을 상대로 싸울 순 없지 않은가. 또 우리가 기자들에게 진실을 말한다 해도 그대로 기사화되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유족들끼리 많은 얘길 나눴는데 형부는 가족들이 더 힘들어지는 것을 가장 걱정했다”는 얘길 들려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