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예사병들은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나 무대에 오르는 고충을 감수한다. 사진은 이준기가 진행하는 국군방송의 라디오 공개방송 모습. 사진제공=국방홍보원 |
얼마 전 해병대에 입대한 현빈의 유료 화보집 추진 논란을 일으킨 국방부는 한류 스타들의 병영생활을 다룬 프로그램을 일본에 판매한 사실이 또 한 번 알려져 비난 여론에 시달려야했다. 국방부가 이준기와 토니안 이동건 등 한류 스타들이 출연한 국군방송의 한 예능 프로그램을 편당 300만 원에 일본에 판매한 것. 비난이 일자 국방부는 군 콘텐츠 판매를 무료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며 적극 진화에 나서야 했다. 기획사 소속의 민간 연예인이 아닌 국방부 소속 사병인 까닭에 연예사병들은 상부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을 사랑하는 팬들의 입장은 다르다.
최근 상병으로 진급한 배우 이준기의 팬들은 이준기의 입대 전부터 국방부와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사연인즉, 군에서 추진한 뮤지컬 <생명의 항해>에 이준기가 출연한다고 알려지자 그의 팬들이 반대 서명운동을 펼친 것. 당시는 이준기는 군에 입대하기도 전이었다. <생명의 항해>는 이준기가 군에 입대하고 50여 일 뒤 첫 공연을 가질 예정이었다. 팬들은 채 50일도 안되는 연습시간만으로 뮤지컬 경험이 전무한 이준기가 해당 공연을 무난히 소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국내 팬은 물론이고 해외 거주 팬들까지 가세해 서명운동을 펼쳤다. 그렇지만 이준기는 <생명의 항해>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며 생에 첫 뮤지컬 무대를 소화해야 했다.
문제는 개막 공연 첫날부터 다시 불거졌다. 리허설 도중 뜻하지 않은 부상을 입은 것. 결국 이준기는 이마를 50여 바늘이나 꿰맨 채 퉁퉁 부은 얼굴로 공연을 강행했고, 이후에도 별다른 휴식 없이 계속 무대에 서야 했다. 이로 인해 팬들은 국방부의 이준기의 인권을 침해가 아니냐며 혹사논란이 제기했다. 당시 국방부는 군의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해 공연을 강행했다는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발송했고, 실제로 공로를 인정받은 이준기는 이후 육군참모총장 표창까지 받았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 대한 이준기의 정확한 설명을 듣지 못한 팬들은 여전히 국방부를 향한 불신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국방홍보원 출신 연예사병들은 대부분 전역 후에도 말을 아끼는 분위기지만 내심 상부의 명령에 따라야만 했던 자신들의 처지를 회상하며 씁쓸해한다.
방송인 A는 군 시절 한 위문행사에 참가했다.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평소처럼 자신만의 레퍼토리를 준비해갔지만, 그날 자신이 참여한 행사는 병원 환자들을 위한 위문공연이었다. A는 “손뼉 칠 기력도 없어 보이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죄송스러웠고, 그 와중에 환자들을 웃겨서 분위기를 즐겁게 띄우라는 지시가 있어 상당히 난처했다”고 말한다.
아이돌 출신 연예인 B는 사회 시절보다 더 많은 사인회를 군에서 해봤다며 후일담을 들려줬다. B는 “군에서 진행되는 사인회는 어김없이 각종 행사의 전후로 진행되며, 연예사병들의 단체 사인회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그 양과 시간에 있어서 상상을 초월했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 늘 웃으면서 사인을 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전했다. 말년 병장 시절에도 두 다리 뻗고 쉬지 못하며 각종 사인회에 다녀야 했다는 B는 당시의 기억 탓일까? 전역 후엔 사인회를 극도로 꺼리는 스타가 됐다.
역시 아이돌 출신으로 연예사병으로 전역한 가수 노유민은 군 시절 각종 행사에 다니며 자신이 속해있던 그룹 NRG의 노래를 혼자 부르는 게 고역이었다고 말했다. “메인보컬 (이)성진이 형이 있어서 NRG 시절엔 라이브 무대가 크게 걱정되지 않았지만, 군대에선 혼자 모든 파트를 다 소화해야 했다”라며 “행여 실수라도 할까 초반에는 무대공포증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또한 “처음엔 서브보컬인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시키는지 원망도 많이 했지만, 전역을 앞두곤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는 그는 실제로 전역이 후 처음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전역을 앞둔 배우 이동욱은 연예사병으로서 미술관에 종종 등장해 과연 연예사병의 활동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팬들을 놀라게 한다. 이동욱은 미술관 등에서 열리는 각종 군 관련 사진전에 ‘도슨트’라고 불리는 사진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도슨트 활동을 지켜본 팬 한 명은 “오빠가 저 많은 양의 사진을 언제 다 공부했을까 놀랐다”며 “하지만 연기대본도 아닌 사진 관련 정보가 과연 쉽게 와 닿았을지 생각하면 안쓰럽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그러다 보니 연예사병이 아닌 일반 군부대 근무를 더 선호하는 연예인들도 늘고 있다. 수색대 근무를 자청해 화제가 됐던 가수 김태우는 전역 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국방홍보원이냐 수색대냐 갈등했던 시기가 있었다”며 “당시 정신적으로 고생할 것이냐 육체적으로 고생할 것이냐를 고민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군 생활조차 스케줄에 이끌려 살아가는 것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며 “연예인으로서 원치 않는 방송과 무대에 출연하는 게 자신이 없었다”는 소신을 밝혔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