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25일 산업증권 강제퇴출 피해대책위원회가 IMF 당시 산업증권을 퇴출시키던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금융감독원이 탈법적 수단을 동원해 사기 파산시켰다고 주장하며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IMF 당시 산업증권이 강제해체되는 과정에서 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위원회 측은 “청산기간 중 일어난 불법행위를 감추고 파산신청이 이뤄졌다”며 사기파산 의혹을 제기하는 동시에 당시 산업은행과 금감원이 공모해 벌인 범법행위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강제퇴출당한 공기업 1호인 산업증권, 그 해산을 둘러싸고 의혹들을 파헤쳐봤다.
1991년 산업은행이 자본금 1500억 원(100% 주주)을 출자해 설립한 산업증권은 총자본금 4000억 원의 중대형 증권사였다. 1997년 8월부터 1998년 1월까지 산업증권은 산업은행의 강력한 구조조정 요구에 따라 800여 명이던 직원을 반으로 줄이는 동시에 급여의 10%를 반납하고 대규모의 점포 정리를 단행했다. 98년 3월 산업은행은 이러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산업증권에 대해 1500억 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했으나 그해 5월 돌연 산업증권에 대한 경영지원 약속을 뒤엎고 정상영업 중이던 산업증권의 연내폐쇄를 공표했다. 그리고 그해 7월 25일 산업은행은 산업증권 강제해산을 결의했고, 429명의 산업증권 직원들은 자동해고됐다.
문제는 산업증권이 해체되는 과정에 엄청난 비리와 불법행위가 있었고, 이러한 행위들이 금감원과 산업은행 측의 공모와 결탁하에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위원회 측은 “1998년 당시 산업은행이 산업증권을 퇴출시키면서 온갖 탈법적 수단을 동원했다. 98년 7월 25일 산업은행은 증권거래법 제37조에 따라 30일 전 공고도 하지 않고 산업증권 자체 이사회도 없는 상황에서 산업증권 주주총회를 소집해 산업증권을 강압적으로 해산하고 청산을 개시했다. 당시 산업증권은 청산가액 기준으로 자산이 부채를 1000억 원 정도 초과하는 등 우량한 재무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산업증권 청산을 개시하면서 은행과 증권감독원 직원들로 구성된 인력을 산업증권에 투입, 회사 자금과 전산 등의 업무를 장악했다고 한다. 위원회 측은 “청산개시와 동시에 산업은행은 산업증권 발행 약속어음 1041억 원을 교환회부하여 고의로 부도를 유발했다”고 주장했다.
산업은행이 약속어음 결제일인 98년 7월 27일 산업증권 자금을 금감원 직원 개인 이름으로 빼돌려 산업증권의 고의부도를 유발했고, 교환회부 어음이 부도가 나자 산업은행에서 파견한 직원에게 지시해 산업은행에 1041억 원의 대지급을 허위로 요청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산업은행은 실제 현금 수수가 없었음에도 대지급을 하였다며 산업증권의 청산채권, 파산채권을 신고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산업은행은 98년 7월 25일 당시 콜론(초단기 대출금)이 존재했다고 주장했지만 콜거래 내역과 증빙을 첨부해 신고하지 않아 실제로 콜자금이 있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산업증권 강제해산과 관련해 위원회 측은 “정상영업 중이었던 산업증권을 폐쇄공표한 산업은행은 근로자 고용승계와 다른 채권자에 대한 전액 변제 책임을 져야 함에도 이를 회피하기 위해 산업증권을 불필요하게 해산하고 산업증권의 부도를 유발해 영업정지를 신청했으며 해산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산업은행과 금감원의 공모하에 범법행위가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위원회 측은 “98년 7월 27일부터 산업증권의 자금과 유가증권을 빼돌려 증권감독원 직원과 산업은행 직원 개인 명의로 관리했다. 일례로 98년 8월 11일 산업은행의 자회사인 산업선물에게 법원허가 없이 약 54억 원이 산업은행 직원 개인명의의 통장에서 지출됐는데, 무려 4000억 원이 넘는 산업증권 자금이 개인 명의로 거래됐다. 당시는 산업은행 직원들이 파견되어 산업증권 전산업무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산업은행과 금감원은 이러한 거래 내역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등 심각한 국기문란행위를 범했다”고 폭로했다.
산업은행이 98년 7월 25일 산업증권의 해산을 결의하여 청산을 시작했고 동시에 증권감독원의 감사가 8월 11일까지 진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증권감독원 직원 개인 명의로 산업증권 자금을 관리하는 불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 위원회 측의 주장은 2008년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정무위원회 소속인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문제삼은 내용이기도 하다. 당시 공 의원은 산업은행이 의원실에 제출한 해명자료를 근거로 이를 기정사실화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고객들의 가압류 등으로 인한 청산업무의 차질을 염려하여 증권감독원 파견직원 명의로 산업증권 자금을 관리했다”고 시인한 바 있다. 또 산업은행 측은 54억 원과 관련해서도 “산업선물이 산업증권에 맡겼던 예탁금을 반환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실사를 담당했던 ○○회계법인의 자산실사보고서에는 98년 7월 25일 당시 이 금액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의혹을 키웠다. 98년 10월 31일 이러한 불법행위가 은닉된 상태에서 산업증권에 대한 자산부채 실사가 있었고, 그 결과 부채가 자산을 240억 원이나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공 의원 측은 “자산 실사 당시 ○○회계법인이 이러한 불법행위를 고의로 누락시켰다. 그 결과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게 되고 이를 근거로 산업증권 파산을 신청했기에 조작된 파산이 분명하다. 산업증권뿐 아니라 DJ정부 초기 금융기관 구조조정 당시 퇴출된 5개 은행과 장은증권, 기타 강제 구조조정으로 퇴출당한 금융기관들 대부분이 자산을 현저히 낮게 평가해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게 만든 후 퇴출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 의원은 “이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 투입의 원인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비자금이 조성되었다면 이는 천인공노할 국기문란행위”라며 비자금 조성 개연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결국 1999년 2월 산업은행은 회계법인의 보고서를 기초로 산업증권에 대한 파산을 신청, 같은해 3월 법원으로부터 산업증권에 대한 파산선고를 받았다.
주목할 점은 거액이 오간 개인명의 통장거래내역이 존재하지만 거래원인을 알 수 없다는 점, 중요 자금거래 등 회계정보가 내장된 전산서버가 파산선고 후 매각파기 됐다는 점, 거액이 현금으로 인출됐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금감원이 파견한 직원 명의로 금융기관 자산을 전환·관리했다는 것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제3조를 위반한 셈이다.
국감 당시 공 의원은 직원 개인이 쌈짓돈 다루 듯 산업증권의 자금과 주식을 관리한 통장 원본 일부를 제시하며 “입출금 거래 규모가 무려 4000억 원을 초과한다. 당시는 정권의 과도기여서 일부 금액이 비자금으로 활용됐을 개연성도 충분하다”며 검찰수사를 통해 진상이 규명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특히 98년 7월 25일부터 산업증권에 대한 파산신청 전까지의 불법부당행위를 감추고 파산선고 신청이 되었고, 실제 파산선고가 났다는 점에서 산업증권의 사기파산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위원회 측은 “산업증권에 대한 파산선고 신청을 실제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진행한 것이므로 파산신청의 신청자격에 위법성이 있으며 부채 초과도 회계장부조작에 의한 것이었다. 산업은행이 고의로 산업증권에 대한 부도를 유발했을 뿐 아니라 거액을 개인통장을 빼돌려 관리하다가 이를 감추고 법원에 파산신고를 신청했다”며 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해 관계자들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검찰도 법원도 ‘시큰둥’
산업증권 직원들은 2004년 12월 산업은행장에게 ‘산업증권 강제퇴출 문제점’을 담은 탄원서를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의혹 규명 및 피해보상’에 대한 힘겨운 투쟁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진실규명은 물론이고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조치도 논의되지 않았다. 또한 검찰에 탄원서를 전달하기도 했지만 특별한 이유도 없이 수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2008년 국감에서 문제가 제기된 것에 힘입어 해직자들은 2008년 12월 산업은행 이근영 총재 등 불법행위에 관계된 이들을 검찰에 고소했지만 결과는 허무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공소권 없음’으로 기소하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도 재정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위원회 측은 “산업은행은 산업증권을 해산하고 청산하는 중 심각한 불법행위를 저질렀다. 이를 숨기고 이뤄진 산업증권의 파산선고 신청은 그 자체로 사기다. 산업은행과 금감원은 공권력을 악용하여 산업증권 근로자들의 생존권을 침탈하고 범죄행위로 비자금을 조성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이는 국감에서도 제기된 문제지만 아직까지 진실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강제해고당한 산업증권 근로자들은 이혼과 파산, 결혼포기, 장기실업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당했고 인생 막장으로 몰린 이들도 수두룩하다. 그간 국회와 감사원 등에 수차례 탄원했으나 진전이 없었고 현재까지도 힘겨운 소송이 진행중이다”고 울분을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