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할리우드의 위대한 천재인 오손 웰즈의 아내였으며 1940년대 최고의 핀업걸이었던 리타 헤이워드. ‘사랑의 여신’이라는 점잖은 닉네임으로는 그녀가 지닌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늠하기 힘들다. 40대 초반부터 앓기 시작한 알츠하이머병으로 조용히 쓰러졌지만, 올드 팬들에게 그녀가 남긴 명장면들은 영원하다.
<쇼생크 탈출>(1994)을 봤다면 잊지 못할 명장면이 있을 것이다. 교도소 내 극장에서 죄수들이 영화를 보는 장면이다. 화면 속에 긴 머리를 출렁이며 등장한 한 여성이 머리를 뒤로 젖히며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볼 때 죄수들은 환호성을 지른다. 그 영화는 <길다>(1946). 긴 머리의 여배우는 바로 리타 헤이워드다. 주인공 앤디(팀 로빈스 분)의 방에 걸린 핀업걸 포스터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당대 그녀의 위력을 증명하는 에피소드는 많다. 1946년에 비키니 섬에 원자폭탄 실험이 있었을 때 군인들은 폭탄에 그녀의 사진을 붙였고 ‘리타’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런 일도 있었다. 일군의 탐사대가 캐나다 오지를 탐험하던 중 사냥꾼들의 임시 거처였던 낡은 오두막을 발견했다. 그 안엔 딱 세 가지 물건만 있었다. 어둠을 밝힐 양초, 최소한의 허기를 달래줄 콩 통조림 그리고 리타 헤이워드의 사진. 그녀는 단지 사진만으로도 남자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존재였다.
리타 헤이워드는 핀업걸의 대명사였다. 스페인 댄서였던 아버지와 아일랜드와 영국의 피가 섞인 어머니 사이에서 1918년에 태어난 그녀는 이국적이면서도 스튜디오에 의해 잘 가공된 세련된 이미지가 공존했다. 사실 그녀는 댄서가 꿈이었다. 12세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무대에 섰던 헤이워드는 20세기폭스에 의해 픽업되었고 16세에 <단테의 지옥>(1935)으로 데뷔했다.
이후 그녀는 정체기였고 남편이자 매니저였던 에드워드 저드슨(그녀는 열아홉 살 때 결혼했다)은 재빨리 그녀의 전속을 콜럼비아 스튜디오로 바꿨다. 이곳에서 헤이워드는 대변신을 한다. 리타 칸시노라는 라틴계 이름은 어머니 성을 따 리타 헤이워드로 바꾸었다. 검은 머리는 붉게 염색했고 좁은 이마는 전기 분해 요법으로 2년 동안 앞머리를 제거하는 고통을 겪은 후에 매력적인 헤어라인으로 거듭났다. 다이어트를 하자 광대뼈의 윤곽이 드러나며 섹시함을 더했다.
그녀는 여신이 되었다. <천사만이 날개를 가졌다>(1939)의 하워드 혹스 감독은 “리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동화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미모는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따스함과 함께 유혹적인 생기를 동시에 풍기는 그녀의 이미지엔 날것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마저 있었다. 핀업걸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다.
<길다>는 20대 후반 절정에 달한 그녀를 만날 수 있는 영화였다. 장 루이가 디자인한 어깨가 드러나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Put the Blame on Mame’라는 노래를 부르며 장갑을 하나씩 벗어던지는 헤이워드. 여기에 할리우드 최고의 다리로 칭송받았던 각선미가 더해졌고, 그녀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중요한 건 스타덤보다는 행복한 가정이었고 무슬림의 왕족인 알리 칸 왕자와 1949년에 세 번째 결혼을 한다(두 번째 결혼 상대가 오손 웰즈였다). 모나코의 왕비가 되었던 그레이스 켈리 이전이었으니 헤이워드는 할리우드 최초의 왕족이었던 셈. 하지만 알리 칸 왕자는 리타 헤이워드 같은 아찔한 미녀를 곁에 두고도 숱한 바람을 피웠고 그들의 결혼 생활은 4년 만에 막을 내린다. 이후 그녀는 두 번 더 결혼했지만 그다지 행복하진 않았다.
마릴린 먼로에게 베스트 핀업걸의 자리를 물려준 1950년대부터 그녀는 하락세였다. 그리고 1960년부터 알츠하이머병을 앓기 시작한다. 불과 42세의 나이였다. 다섯 번째 남편이자 영화제작자였던 제임스 힐은 그녀의 코미디적인 재능을 알아봤지만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역할의 비중은 점점 축소되었고 그녀는 1981년에 삶을 마감했다.
그녀는 실생활에선 부끄럼 많고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카메라만 돌면 섹슈얼한 카리스마를 터트리는 핵폭탄 같은 존재이자 남성을 파멸시키는 팜므 파탈이었다. 마릴린 먼로부터 캐슬린 터너와 샤론 스톤까지 롤 모델로 삼았던 배우 리타 헤이워드.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30년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