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산을 홈으로 하는 10구단 창단 작업이 결국 사기로 드러났다. 사진은 백지화된 안산 돔구장 조감도. |
지난해 12월 경남 창원시와 KBO는 프로야구 제9구단 창단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KBO 유영구 전 총재는 “야구계의 숙원이던 9구단 창단이 눈앞에 다가왔다”며 “여세를 몰아 이참에 10구단 창단까지 이끌어내겠다”고 큰소리쳤다.
9구단 창단은 창원시의 적극적인 지원 약속과 거대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의 창단 의지가 확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10구단 창단은 가시화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창단을 공표한 기업도, 프로야구단 유치에 나선 지자체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때 10구단을 창단하겠다며 나선 이가 있었다. 미국인 사업가 케네스 영이었다.
메이저리그(MLB) 및 미국프로농구(NBA),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미국풋볼리그(NFL) 구단과 구장에 식음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 오베이션스의 대표인 영은 4개의 마이너리그 프로야구단을 소유한 구단주였다.
영은 대리인을 통해 “그간의 구단 운영 노하우와 선진적인 구장 마케팅을 통해 한국프로야구에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려 10구단 창단을 추진하기로 했다”며 “경기도 안산시에 돔구장이 건설되면 이곳을 홈으로 삼아 프로야구단을 창단하고 싶다”는 뜻을 KBO에 전달했다.
확인 결과, 영은 그해 8월 3일 이미 같은 뜻을 담은 창단의향서를 KBO에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야구계는 10구단 창단 추진 소식을 듣고 큰 관심을 나타냈다. 10구단이면 양대리그 운영이 가능한데다 야구 저변 확대에도 호재로 작용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KBO의 반응은 냉담했다. KBO 이상일 사무총장은 “영의 의도가 무엇인지 자세히 살필 필요가 있다”며 “수천억 원의 안산 돔구장을 힘들이지 않고 통째로 갖겠다는 심산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실제로 영은 안산 돔구장 건설이 백지화하자 10구단 창단 작업을 중단했다. 이때만 해도 미국인 사업가의 10구단 창단은 해프닝으로 끝나는가 싶었다.
5월 초 <일요신문>에 한 통의 제보가 들어왔다. ‘영의 대리인이 10구단 창단을 확정 지은 것처럼 속여 여러 사람에게 안산 돔구장 완공 시 수익시설을 주겠단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기고서, 창단이 무산되자 돈을 돌려주지 않고 미국으로 달아났다’는 것이었다. 덧붙여 제보자는 ‘피해자들이 이 대리인을 경찰서에 고소해 조만간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알렸다.
취재 결과, 제보는 사실로 드러났다. 피해자들은 영의 대리인을 사기죄로 경찰서에 고소한 상태였다. 고소 내용은 제보 내용과 일치했다.
피해자 C 씨는 “안산 돔구장 건설이 백지화하고, 10구단 창단 작업도 지지부진해 영의 대리인에게 ‘투자금을 돌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영의 핑계를 대면서 돈을 돌려주지 않았다”며 “3개월 전 미국으로 떠난 대리인이 지금껏 귀국하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영의 대리인은 J 씨다. J 씨는 2005년 구대성의 뉴욕 메츠행을 주선한 에이전트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10구단 창단 주체가 영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창단 작업을 주도한 이는 J 씨였다. 영을 찾아가 “한국에 돔구장이 생기니 그곳을 홈구장으로 활용해 10구단을 창단하자”고 제의한 것도 J 씨였고, 영을 앞세워 KBO에 창단 의향서를 직접 제출한 이도 그였다.
J 씨는 지난해 12월 <일요신문>의 “10구단 창단에 필요한 300억 원 이상의 실탄이 준비돼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10구단 창단을 위해 한 해 100억 원 아니 200억 원 가까이 쏟아 부을 자신이 있다. 10구단을 창단하면 오베이션스의 자금이 바로 투입될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아울러 “영을 국외 투기자본으로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며 “조만간 영이 직접 방한해 창단 계획을 설명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입수한 이메일을 보면 J 씨와 영이 처음부터 창단 자금을 오베이션스의 자금이 아니라 메인스폰서를 통해 확보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영은 J 씨에게 보낸 메일에서 “해마다 1500만~2000만 달러를 투자할 메인 스폰서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메일 어디에도 자신이 얼마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은 명시하지 않았다. 여기다 J 씨의 귀띔과 달리 영은 단 한 차례도 방한하지 않았다.
영이 경영하는 오베이션스도 창단 자금으로 300억 원 이상을 동원할 만한 회사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재미교포 에이전트 A 씨는 “오베이션스는 미국에서도 고만고만한 식음료사로, 한해 300억 원은 고사하고 100억 원을 동원하기도 어려운 회사”라며 “영이 마이너리그를 운영하며 대단한 재력가로 알려졌지만, 마이너리그 구단은 개인이 운영할 만큼 운영비가 많이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영이 대기업 오너인 것처럼 잘못 알려졌다는 뜻이다.
J 씨는 사기죄로 경찰에 고소되기 전부터 물의를 빚었다. 지난해 2월 부산 모 호텔에 9일간 투숙했던 J 씨는 소리없이 잠적한 바 있다. 이 호텔 관계자는 “J 씨가 자신을 ‘미국에서 활동하는 야구 스카우트’로 소개했다”며 “숙박기간에 직원 서비스를 문제 삼아 수차례 불만을 제기해 호텔 관계자 가운데 J 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문제는 J 씨가 숙박비를 미정산한 채 호텔을 떠났다는 데 있다.
호텔 측은 J 씨에게 연락을 취해 숙박비 정산을 요구했지만, 그때마다 J 씨는 “아파서 병원에 있다”, “한국에 없다”는 이유를 들어 차일피일 정산을 미뤘다. 해당 호텔은 200여만 원의 숙박비를 아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J 씨와 영과의 접촉을 시도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전화를 하겠다”고 말하고선 일체의 연락도 주지 않았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