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년 이광재 의원 결혼식 있던 날 노래방에서 함께한 이호철 전 민정비서관, 서갑원 의원, 노무현 대통령(왼쪽부터). |
친노 인사들, 즉 ‘노무현의 사람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기점으로 친노계에도 한 차례 굴곡점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들이 모시던 주군이 떠났음에도 상당수 인사들은 여전히 ‘노무현 정신’을 기리기 위한 활동에 힘을 같이하고 있었다. 소식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몇몇 친노 인사들의 근황을 살펴보았다.
지난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에 대한 대대적인 특검이 벌어졌을 당시 수사대상에 올랐던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그는 당시 청와대 인사들과도 연락이 잘 닿지 않을 정도로 두문불출하며 지냈었다. 고향인 광주로 내려가 산행을 하거나 사찰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2005년부터 호남대학교 경영대학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한다. 노무현재단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지난 3월 한 인터넷 매체를 통해 2002년 3월 16일 노무현 바람을 일으켰던 광주 경선 당시를 회고하는 글을 올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함께 이른바 ‘부산팀’의 초기 멤버로 불렸던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역시 노무현 재단 일을 돕고 있다. 이호철 전 수석에 대해 안희정 충남지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생행로를 백팔십도 바꿔놓은 인물”이라고 표현한다. 노 전 대통령과 이호철 전 수석의 만남은, 1981년 부산지역 대학생 21명이 불온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영장 없이 체포돼 고문당했던 ‘부림사건’ 당시 부산대생이던 이 전 수석의 변호를 노 전 대통령이 맡으면서 시작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이 전 수석의 몸에 난 고문의 흔적을 보고 충격을 받아 안락한 변호사의 길을 포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 전 수석은 ‘국회의원 노무현’의 첫 보좌관으로 일하며 인연을 이어가게 됐다. 이 전 수석은 최근 부림사건 피해자들과 함께 당시 자신들을 불법으로 체포·감금·폭행한 혐의로 전 부산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에 대한 고소장을 부산지검에 제출하기도 했다.
과거 대선 때 ‘부산팀’의 일원으로 활동했던 멤버들 중 상당수가 정치권과 멀어진 상태나 민주당, 국민참여당 소속으로 정치활동을 하고 이들도 적지 않다. ‘부산대 총학생회장 3인방’이었던 최인호·송인배 씨는 내년 총선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청와대 의전비서관을 지냈던 정윤재 씨는 노무현재단의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
친노 인사 중 근황이 눈에 띄는 이 중 한 명은 ‘노사모’의 핵심멤버였던 이상호 씨.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양말장사를 하다 2001년 ‘열혈 노사모’로 정치에 입문한 그는 인터넷에서 ‘미키루크’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명계남 씨와 함께 국민참여연대를 주도하기도 했던 그는 지난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정동영 후보 캠프로 영입된다. 이후 지지조직인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의 핵심멤버로 당시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정동영 의원을 도왔고, 지난 1월엔 정 의원의 지원으로 민주당 청년위원장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이상호 씨가 ‘친노계’를 떠난 이유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에 대한 반감 때문으로, 친노계 내의 노선 대립양상을 보여준 한 사례였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