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면 마냥 기대고 싶으면서도 막상 부모님의 안부를 챙기는 전화는 혹시 귀찮아 해본 적 없는지. 평생을 되갚아도 모자란 게 부모님의 은혜다. 자식들에게 주는 무한한 사랑을 그 어디에 비교할 수 있을까. 연예계에는 소문난 효자 효녀들도 많지만, 바쁜 스케줄로 인해 또는 철부지여서 가슴에 씻을 수 없는 응어리를 갖게 된 이들도 많다. 그 애끓는 사모곡, 사부곡을 정리해본다.
드러머 겸 방송인 남궁연의 트레이드마크는 뭐니 뭐니 해도 빡빡머리다. 데뷔 후 줄곧 한결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수하는 그는 남들의 걱정처럼 탈모가 있는 것도 아니며 두상이 예뻐서 자랑하고 싶어 머리를 미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한다. 그의 빡빡머리에 숨은 비밀은 바로 불효에 대한 자책이다. 청소년기 방황할 때 그는 소위 문제 학생이었다고 한다. 오죽하면 대학교수였던 그의 아버지가 그를 경찰에 신고했을 정도란다. 아버지와의 불화로 가출도 여러 번 했지만 다행히 뒤늦게 시작한 음악에 푹 빠져 소위 ‘밥벌이는 하는 아들’이 될 수 있었다.
신인 가수들의 반주 세션을 맡던 시절 그는 어머니가 직장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었다. 그동안 말썽만 피우며 어머니에게 무관심했던 불효를 뒤늦게 깨달은 그는 자책감으로 힘겨워했고 이때부터 머리를 밀고 다니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독특한 스타일을 눈여겨본 한 방송관계자에 의해 DJ로 발탁돼 지금의 유명세를 갖게 됐다. ‘(머리를 밀게 했으니) 돌아가신 어머님이 아들 먹고살 길을 마련해주셨네’라는 주위의 핀잔에 그는 더 이상 머리를 기를 수 없었다며 앞으로도 머리를 기르는 일은 절대 없을 거라 못 박는다.
‘줌마테이너’로 활약중인 개그우먼 이경애. 그는 지난 2005년 마흔둘의 나이로 시험관 시술에 성공해 꿈에도 그리던 늦둥이 딸을 얻었다. 그런 그가 어린 딸에게 절대 하지 않는 말이 있으니, 바로 “엄마는 괜찮아”다. 사연인즉 이렇다. 지난 2000년 간경화와 신장염으로 투병 중이던 그의 어머니가 병세가 악화돼 하루에 한 번씩 배에 찬 물을 빼내야 하는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죽을 고비를 넘긴 것도 수차례.
하지만 정작 이경애는 어머님의 임종을 지킬 수 없었다고 한다. 하루는 그가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에게 “엄마, 나 바람 좀 쐬러 태국에 좀 다녀오려는데, 엄마랑 같이 가긴 힘들겠지?”라고 물었고, 어머니는 “괜찮으니 다녀오렴”이라며 딸의 여행을 허락했다. 아버지까지 몸져누워 병간호에 지친 딸이었기에 어머니의 허락은 당연했다. 이경애는 그게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태국 여행을 다녀오자 그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던 것. 임종은 물론 빈소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자신의 모습이 그는 아직도 눈물이 앞을 가릴 만큼 후회스럽다고 전한다. “나는 괜찮다”란 말은 그가 생각하는 우리 부모님들의 가장 흔한 거짓말이다.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도 정해진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게 연예인들의 숙명이다.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슬픔을 참고 카메라 앞에서는 그들의 이야기는 눈물겹다. 지난 2005년 KBS 라디오 <김구라의 가요광장>을 진행하던 김구라. 평소처럼 정오 생방송을 앞두고 오전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던 그에게 아버지의 별세소식이 전해졌다. 그렇지만 그의 발걸음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KBS 라디오 스튜디오로 향했다. 제작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생방송은 어떻게든 마치겠다”며 방송을 강행한 것. 게스트도 눈치 못 챌 만큼 완벽한 진행을 끝낸 뒤에야 아버지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시청자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그가 이날 생방송을 진행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루게릭병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가 아들의 방송, 특히 라디오만큼은 꼬박꼬박 챙겨들었기 때문. 당시의 일 때문에 자신은 평생 불효자일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시청자와의 약속도 아버지와의 약속도 지킨 그는 현재 인기 MC가 돼 생전에 못다 한 효도를 다하고 있다.
가수 인순이 또한 지난 2005년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무대에 서야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혼혈아 딸을 향한 편견에 맞서 늘 세상과 싸워야 했다는 그의 어머니는 인순이가 조PD와 ‘친구여’ 듀엣 활동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을 무렵 지병인 뇌출혈로 쓰러졌다. 당시 인순이는 스케줄을 접고 간병에 힘써야 했지만 후배 가수의 무대에 폐를 끼칠 수 없다는 생각에 스케줄을 강행했다. 이 와중에 어머니의 병세가 악화돼 병원에서도 손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 것.
어머니를 집으로 모신 뒤 임종을 기다리던 어느 날, 그에게 <국악축전>의 피날레 무대를 맡아달라는 섭외가 들어왔다. 병원에서 예상한 임종일과 날짜가 겹쳐 무척이나 망설였다는 인순이는 TV에 나오는 딸의 모습을 어머니께 한번이라도 더 보여드리겠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운명도 이런 운명이 또 있을까. 공연을 위해 행사장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인순이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소식을 전해들은 인순이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정해진 무대를 취소할 순 없었다. 그는 시청 앞에 모인 수만 관중 앞에서 웃음 지으며 자신의 노래를 열창했고 관중들 역시 그의 무대를 기립박수로 보답했다. 살아생전 자신의 가장 큰 팬이었던 어머니를 위해 그는 여전히 신곡을 발표하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