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문경의 폐채석장에서 50대 남성이 예수의 처형을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은 시신이 발견된 장소의 전경.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경찰조사 결과 남자는 창원에 거주했던 김 아무개 씨(58)로 드러났다. 사체가 발견된 궁기리 둔덕산의 폐 채석장은 궁기리 마을에서도 차로 무려 40분을 들어가야 하는 오지다. 가장 가까운 민가와도 1㎞ 이상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휴대폰 수신조차 잡히지 않는 곳으로 토봉이나 고로쇠수액 채취 작업을 하기 위해 드나드는 이들 외에는 인적이 거의 없는 곳이다.
김 씨는 돌과 풀만 가득한 이곳에서 세로 187㎝, 가로 180㎝ 크기의 십자가에 양 손발에 대못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옆구리에는 흉기에 찔린 10㎝ 크기의 상처가 있었으며 신체 특정 부위에도 현장에 있는 채찍으로 맞은 흔적이 발견됐다. 특히 김 씨 우측 편에는 매달린 모습을 볼 수 있게끔 해놓은 작은 거울이 매달려 있었으며 사체 앞에는 손드릴, 망치 등 공구가 놓여 있었다.
주목할 것은 현장 주변 모습이었다. 사체 근처에서 발견된 텐트 안에서는 십자가 제작도면 2장과 십자가에 매다는 순서를 적어놓은 실행계획서 1장이 발견됐다. 실제로 사체 주변에서는 제작도면에 따라 십자가를 제작한 흔적이 남아있었으며 김 씨 역시 ‘허리를 줄로 묶는다. 손에 구멍을 낸다. 팔꿈치를 십자가에 걸친다. 기둥에 목을 매단다’는 식의 순서가 적힌 실행계획서에 따라 십자가에 매달려졌을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우선 ▲3장의 문서가 ‘김 씨의 필적’이라고 유족들이 진술한 점 ▲허리와 목을 감은 노끈의 매듭이 앞쪽에 있는 점 ▲옆구리 상처각도 ▲반항흔이 없는 점 등으로 볼 때 자살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자살이라면 어떻게 자신의 몸에 못을 박아가며 스스로 십자가에 매달릴 수 있었을까.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 경찰의 얘기다. 확인결과 김 씨는 무릎은 못이 박힌 양발에 닿을 듯 굽혀진 상태였는데 몸이 완전히 펴진 상태가 아닌 점으로 보아 김 씨가 계산된 절차에 따라 스스로에 대한 ‘십자가 처형’을 감행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경찰 검안결과에 따르면 김 씨는 양발을 전기드릴로 뚫은 뒤 ㄱ자 형 못을 박았고 미리 구멍을 뚫은 손을 십자가에 박아둔 못에 끼웠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말 이런 식의 자살이 가능한 것일까. 자살이라면 김 씨는 왜 이런 엽기적인 ‘십자가 처형’을 감행한 것일까. 1995년 이혼한 김 씨는 창원에서 혼자 살면서 1년 전까지 개인택시 영업을 해왔다. 하지만 이후 가족이나 주변인들과 사실상 교류를 끊고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 씨가 종교관에 따른 그릇된 판단으로 이런 끔찍한 일을 벌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사건이 부활절 무렵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경찰은 김 씨가 평소 종교세계에 대해 고뇌를 해왔던 정황 등을 근거로 사건발생이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씨가 이단 등 잘못된 신앙관을 갖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김 씨는 과거 교회에 다녔던 적이 있으나 언제부턴가 혼자 성경공부를 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주변인들에게 종종 천국과 유체이탈, 부활과 관련된 얘기를 했던 것도 확인됐는데 그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 경찰의 얘기다.
실제로 그가 ‘비장한 최후’를 준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텐트 안에서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성경구절이 적힌 종이와 함께 “예수는 우리 왕이라”는 히브리어 문건도 발견됐다.
이를 근거로 짐작해볼 때 혼자 성경공부를 해온 김 씨가 성경을 잘못 해석했고 마치 자신이 예수의 명을 받았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끔찍한 결단을 했을 가능성도 유추해볼 수 있다. 특히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연상케 하는 죽음을 택한 것은 ‘예수부활’에 심취한 나머지 비이성적인 판단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김 씨의 단독자살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가장 원초적인 의문은 과연 김 씨가 가공할 만한 고통을 견뎌낼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해 전기드릴로 양발을 뚫고 대못을 박았다 해도 그 상태로 다음 수순을 진행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의료진들의 얘기다. 광적인 종교관에 심취해 시작했다 해도 정신을 잃거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중간에 포기했을 것이란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실행순서도’에 따르면 김 씨는 발바닥이 관통당해 일어서기도 힘든 상태에서 한 손에 구멍을 내고 그 손으로 다른 손을 뚫은 셈이 된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 예수의 십자가 처형장면을 완벽하게 재현해냈다. 특히 김 씨의 양 손은 직접 돌려 뚫는 수동드릴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후 김 씨가 목을 매다는 것까지의 모든 과정을 단독으로 실행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문경에 연고조차 없는 김 씨가 현지 주민들조차 접근하기 힘든 외진 현장을 찾았다는 것도 의문이다. 실제로 현장은 4륜구동 차량으로 1시간 가까이 올라가야 하는 외진 곳으로 외지인이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곳이다. 생업과 관련된 주민이 아니라면 일부러 찾을 일도 없는 곳이라는 것이 경찰과 주민들의 얘기다. 김 씨가 해발 970m 8부 능선에 위치한 폐광산을 어떤 경로로 찾았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오죽하면 사건현장 주민들은 “창원에 산다는 사람이 어떻게 알고 거기까지 올라가서 그런 끔찍한 일을 벌였을까. 사체가 부패되기 전에 발견된 것만도 기적”이라며 혀를 내두르고 있을 정도다.
누군가 김 씨의 자살을 도왔거나 방조했을 가능성도 열려있다. 누군가 김 씨에게 그릇된 종교관을 주입시켰거나 그로 인해 위험한 행동을 감행하도록 ‘사주’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종교에 심취한 김 씨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시키고자 하는데 일조한 인물이 있으며 자필편지 작성부터 실제 행위가 이뤄지는 것을 도왔을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종교적 의식으로 자행된 사실상 타살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유서가 없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장소물색과 물품구입을 비롯해 십자가 도면설계와 제작 등 김 씨가 치밀한 준비 끝에 감행한 자살이라면 유서나 심경을 담은 메모 하나쯤은 남겨놓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또 정신병력도 없는 김 씨가 광적인 신앙 혹은 ‘영웅심’에 휩쓸려 이처럼 무서운 일을 감행했을지도 의문이다. 현장에서는 평소 김 씨가 복용한 것으로 보이는 심장질환 및 복통·설사약만이 발견됐다.
김 씨와 종교적 갈등관계에 있거나 원한관계에 있는 인물, 광기에 사로잡힌 사이코패스에 의한 타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은 외관상 특별한 구타흔적이나 반항흔은 없다고 밝혔지만 내상 여부를 비롯해 김 씨의 눈 두덩이가 심하게 부어있는 점 등에 대한 정확한 소견이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김 씨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전에 교사 혹은 질식사 한 것으로 드러나면 누군가 김 씨를 살해한 후 광신도의 엽기자살극으로 위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핵심은 ‘그날’ 현장에 누가 있었는지 여부다. 경찰은 시신에 대한 부검을 의뢰한 동시에 현장에서 발견된 물품들에 대해 국과수에 DNA 분석을 의뢰해 놓은 상태다. 물품에서 타인의 DNA가 발견될 경우 자살방조나 타살로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사체가 발견되기 전날 문경에는 폭우가 쏟아져 혈흔과 지문 등 중요한 단서가 소실됐기 때문에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평화롭던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엽기적이고 미스터리한 사건을 두고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