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화산 등성이를 돌아가는 숲길. 잣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때로 자작나무와 참나무군락을 만나기도 한다. |
매화산은 홍천읍과 남면에 걸쳐 있는 해발 747m 높이의 산이다. 그런데 사실 이 산은 등산보다는 허리를 둘러가는 임도가 매력적이다. 무려 18㎞에 걸쳐 임도가 나 있는데, 전체적으로 거의 평지나 다름없어 걷기에 수월하다.
임도는 홍천읍 장전평리 계곡산장에서 남면 월천리 며느리고개까지 이어진다. 한 번에 다 걸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18㎞는 다소 먼 거리다. 부지런히 걸어도 5~6시간은 걸린다. 하지만 그것은 매화산의 봄을 제대로 즐기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매화산 임도는 적당히 게으름을 피우며 걷는 길이다. 길에 천착할 것이 아니라 봄빛에 관심을 기울이며 오래 즐기다 오는 길이 바로 매화산 임도다. 그러므로 얼마나 걸었느냐에 의미를 두지 말자. 단 1㎞를 걸었더라도 거기서 봄의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그것으로 된 것이다.
매화산 임도를 걷기 위해 장전평리로 향한다. 계곡산장 뒤편으로 매화산 임도가 나 있다. 양평과 홍천을 잇는 44번 국도에서 장전평리로 곁가지처럼 뻗은 도로는 예상 외로 차들이 꾸준히 지난다. 마을이래야 그 위로 삼마치리가 전부지만 중간에 골프장이 있어서 그렇다. 계곡산장은 골프장을 바로 지나자마자 오른쪽에 있다.
그런데 왜 매화산일까. 매화가 많아서 그런 것일까 싶기도 했지만, 이 산에서 매화나무는 찾아볼 수 없다. 어딘가 숨어 있는 몇 그루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매화 때문에 생긴 이름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서 농사준비에 한창인 장전평리의 한 노인에게 물으니 아주 오랜 옛날 천지개벽할 때 이 일대가 모두 바다였단다. 그런데 딱 하나 매가 앉을 만한 봉우리가 꽃처럼 솟아올랐는데 그것이 곧 매화산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계곡산장을 지나쳐 200m쯤 올라가자 매화산 임도 입구가 나온다. 차량출입을 통제하는 차단기가 설치돼 있다. 자동차를 그 앞에 두고 임도에 든다. 매화산 임도는 20여 년 전 조성된 산길이다. 때로 콘크리트로 포장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은 비포장도로다. 길은 끊임없이 휘고 돌며 나아간다. 초입에서 조금 걸어가다 보면 왼쪽 절벽에 벌통 서너 개가 보인다. 봄꽃이 한꺼번에 피는 이 계절은 벌들의 움직임이 가장 바쁠 때다.
매화산에는 잣나무와 참나무, 소나무, 자작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잣나무가 압도적으로 많다. 지난 가을에 잣나무의 그 침 같은 이파리들이 떨어져 수북이 쌓인 길은 카스테라처럼 부드럽고 푹신하다. 걷는 맛까지도 달콤하다.
매화산 임도에는 요즘 진달래꽃이 한창이다. 오후가 되어 햇빛이 비탈면으로 스며들면 진달래꽃이 등불처럼 환하게 빛난다. 길가에는 들꽃들이 만발했다. 언뜻 보면 보잘 것 없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볼수록 정이 가는 꽃들이다.
주말이라면 그나마 이 길을 걷는 사람이나 산악자전거를 타는 동호회원들을 간혹 만날지도 모르지만, 평일이라면 이 길은 온전히 혼자만의 차지일 가능성이 크다. 한적함과 고요를 넘어 적요하기까지 한 이 길을 걷노라면, 작은 바람도 태풍처럼 부는 듯하고 계곡물 소리도 폭포처럼 떨어지는 듯 들린다. 평소라면 들리지도 않았을 소리들이 너무도 적나라하고 과장되게까지 들려 살짝 두렵기까지 하다.
분위기를 더욱 조장할 생각은 아니지만 이 길에서는 휴대폰도 잘 안 터진다. 통화권을 이탈했다가 잠깐 들어오기를 반복하는데, 차라리 꺼두는 편이 배터리 소모를 막는 길이다. 비로소 상오안리 작은골의 매화산 산림경영모델숲 방문자센터 부근에 이르러서야 안테나가 잡히니 이 점 알아두는 것이 낫다.
출발지점에서 8㎞가량 떨어진 방문자센터는 매화산이 2008년 국유림 가운데 최초로 산림경영모델숲 사업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지은 것이다. 산림경영모델숲사업은 단순히 나무를 심고 보호하는 숲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숲으로서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프로젝트다. 모두 30억 원의 예산이 투입돼 토종벌과 표고버섯, 산나물 채취 등 상오안리 주민들의 소득창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방문자센터에서 약 800m 떨어진 곳에는 매화산 전망대인 5층 높이의 숭림대가 설치돼 있다. 그리 힘들지 않은 오르막 산행길로 약 15분이면 숭림대까지 갈 수 있다. 홍천읍과 가리산, 양평의 용문산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경우가 아니라면 원점회귀를 해야 하므로 방문자센터까지 다녀오는 것도 사실은 힘들다. 다음을 기약하며 적당한 지점에서 체력과 돌아갈 시간을 염두에 두고 걸음을 돌리는 것이 낫다. 더 멀리 가지 못 했다고 아쉬워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앞으로 남은 길의 풍경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걸어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길도 다시금 새롭게 다가온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숲의 색깔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늦은 오후라면 연초록 신록의 나뭇잎에 부드러운 햇살이 가미되면서 가을철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할 때처럼 나뭇잎 색깔이 바뀐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서울-춘천간고속도로→춘천분기점→중앙고속도로→홍천IC→44번 국도→오안초교사거리에서 좌회전→홍천CC→매화산입구(계곡산장), 또는 양평 방면 6번 국도 이용→44번 국도→오안초교사거리에서 우회전→홍천CC→매화산입구(계곡산장)
▲먹거리: 매화산 숲길 끝지점(기점으로 삼아도 되는 지점)인 상오안저수지 아래에 장원막국수(033-435-5855)가 있다. 순수하게 메밀을 갈아 만든 면인데도 불구하고 색깔이 하얗다. 껍질을 완전히 제거해서 그렇다. 보통 순메밀면은 너무 쉽게 뚝뚝 끊어지는 편인데, 손으로 반죽을 오래 치대어서 찰기가 있다. 진한 사골육수도 일품이다.
▲잠자리: 계곡산장(033-435-8023), 높은터펜션(033-435-6452) 등이 매화산 입구 근처에 있다.
▲문의: 홍천군 문화체육과 관광팀 033-430-2358, 홍천국유림관리소 033-433-7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