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평문씨세거지의 광거당. 문중 자제들을 위한 수양공간이다. |
이번에 찾아갈 곳은 대구 달성군 화원읍 본리에 자리한 남평문씨세거지다. 대구민속자료 제3호에 이름을 올린 이 세거지(양반가문의 집성촌)는 18세기 초부터 남평문씨 문중이 들어와 살면서 집성촌을 이룬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9채의 한옥과 2채의 정자 등 총 11호 54동의 건물이 세워져 있다. 문화재해설사가 상주하며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남평문씨는 문익점이 조상인 가문이다. 문익점은 알다시피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고 1363년 좌정언으로 원나라에 유학을 가서 붓대 속에 목화씨를 감추어 들여와 우리 땅에 전파한 인물이다. 이곳 화원읍 본리에는 1715년 처음 들어왔고, 문익점의 18대 손인 문경호라는 인물이 터를 닦았다고 전한다.
이 마을은 각각의 집터들이 반듯반듯하게 나눠져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정확한 측량에 의거해 논밭을 구획한 것 같은 모양새다. 약 1m50㎝ 높이의 토석혼축담으로 나눠진 집집마다 사람들이 실제 거주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일족의 집들이므로 위계와 항렬에 따라서 그 규모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다. 형의 집보다 큰 동생의 집은 없다. 당연히 조카의 집은 숙부의 집보다 작다.
눈여겨볼 건물들은 수봉정사와 인수문고, 광거당이다. 수봉정사는 남평문씨세거지에 갔을 때 만나는 첫 집에 있다. 손님을 맞거나 가족모임을 하던 큰 건물이다. 주위는 잘 가꿔진 정원이다. 수봉정사의 대문에는 문빗장 둔테(문장부를 끼는 구멍이 뚫린 나무)가 거북형상을 하고 있다.
인수문고는 문중의 서고다. 1300여 종 9000여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 문집류가 800질 가까이 된다. 책의 숫자가 1만 권에 육박해 만권당이라고도 부른다. 인수문고는 우리나라 전체의 가문 서고 중에서 가장 많은 고서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장서가 많기로 소문난 도산서원도 보유량이 4400여 권에 지나지 않으니 인수문고가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특히 이곳의 책들은 ‘이빨 빠진’ 전집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수집과 보관에 만전을 기했다는 뜻이다. 인수문고는 1910년경 설립됐다. 경술국치 무렵이다. 나라를 빼앗겨도 공부하고 도모하면 주권을 찾을 것이라는 결의가 인수문고에 담겨 있다.
광거당은 세거지 서북쪽 끝에 자리하고 있다. 1873년 세워진 건물로 문중의 자제들을 위한 수양공간이다. 평소에 대문은 닫혀 있으나 문화재해설가에게 요청하면 열어준다.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정면에 다섯 이파리를 지닌 꽃이 담벼락에 피어 있다. 오후가 되면 이곳 담벼락에 햇살이 드는데, 그 빛을 받아 꽃이 더욱 따스하고 밝게 핀다.
광거당 앞으로는 대나무밭이 작게 조성돼 있고, 뒤편으로는 솔숲이 푸르다. 건물을 돌아가면 굴뚝 곁으로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다. 여름이 다가오면 붉은 꽃을 피워낸다.
남평문씨세거지에서는 긴 골목을 따라 걷거나 솔솔 부는 바람을 맞으며 어느 집 툇마루에 앉아 쉬노라면, 새삼 그곳에 깃들어 있는 여러 삶들이 부러워진다. 다소 불편할지도 모르지만, 진정으로 여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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