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아이·사망한 모친 등 가리지 않고 치료 기록…조직적 범행과 은폐 의혹 당국 조사 착수
산둥성 단현 췌이커우에 거주하는 천스융은 지난 7월 급성 맹장염 수술을 받았다. 퇴원 후 마을 보건소에서 수액 치료를 받으려던 천스융은 자신의 지역 의료보험 계좌에 돈이 없다는 사실을 듣고는 귀를 의심했다. 지난 2년간 집을 떠나 생활했기 때문에 지역 의료보험을 단 한 번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족들 모두 각자의 의료보험 계좌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계좌로 약을 사거나 병원을 가지 않았다.
단현의 의료보장국을 찾아가 확인해보니 의료보험 계좌가 여러 차례 도용당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뇌졸중 판명을 받아 병원 치료를 받은 흔적과 함께였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그는 자신이 가입한 개인 건강보험 회사에 전화를 걸어 문의한 결과 ‘뇌졸중 의료보험 기록 때문에 향후 보험 배상이 어려울 수 있다’는 답을 들었다. 천스융은 뇌졸중 치료로 인해 추가 보험 가입도 불가능했다.
의료보험 결제기록에 따르면 천스융은 2016년 2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16차례 뇌졸중 치료를 받은 것으로 돼 있었다. 이 과정에서 천스융은 기가 막힌 사실을 알게 됐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 대부분 뇌졸중 치료로 인한 보험 지급 기록이 있었던 것이다. 천스융의 아내와 동생들 모두 수십 차례 뇌졸중으로 치료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동생인 천스껑의 경우 이미 오래 전 마을을 떠나 얼굴조차 보지 못했던 사이다.
천스융은 이런 내용들을 공론화했고, 마을은 발칵 뒤집혔다. 주민들은 의료보험 결제 기록을 조회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0명가량이 뇌졸중 치료를 위해 3만 7000건가량의 보험을 적용한 것으로 나왔다. 이 중 실제 뇌졸중에 걸린 주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마을 주민 장둥비아오는 “가족 12명 중 8명이 뇌졸중 치료를 받았다고 나왔다. 2015년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췌이커우 보건소에 간 일이 없다. 그런데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뇌졸중 처방전을 받아간 것으로 돼 있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 50대 여성 사례도 공분을 샀다. 이 여성의 딸은 5세부터 뇌졸중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생인 여성의 딸은 2016년 3월 22일 뇌졸중 처방을 받았다. 이 여성은 딸과 자신을 포함해 가족 구성원 9명 모두 뇌졸중 치료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면서 결제 명세서들을 취재진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믿기 어려운 일은 또 있었다. 마을 주민 천스민의 모친 순푸메이는 2021년 3월 사망했다. 그런데 그 후인 4월부터 6월 사이 뇌졸중 투약으로 수십 개의 의료보험을 결산한 기록이 있었다. 천스민은 “생전에 뇌졸중을 앓으신 적이 전혀 없다. 심지어 췌이커우 보건소엔 가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은 의료보험 결산 기록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보험배상, 새로운 보험 가입에 지장이 불가피하다. 또 진학과 취업, 군 입대 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20대 남성은 “뇌졸중 치료 기록이 있다면 어느 회사가 좋아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허위 기재인 만큼 국가 차원에서 조속히 삭제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민들 일부는 당국의 관리 소홀을 질타했다. 30대 여성은 “뇌졸중은 쉽게 걸리는 병이 아니다. 또 전염병도 아니다”면서 “작은 마을에서 2000명이 뇌졸중 판명을 받았는데 의료‧보험 당국이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단현 의료보장국 책임자는 “촌급 단위 의료보험 데이터를 구체적으로 심사하지 않는다. 촌급 보건소에서 올린 의료보험은 향진위생원이 초심을 한다. 우리는 향진위생원으로부터 총액만 보고받는다”고 해명했다.
췌이커우 보건소 측은 최초로 이 사실을 인지했던 천스융의 항의에 “보험 시스템상 오류”라고만 했다. 하지만 보건소 책임자가 천스융 집을 찾아가 선물을 주며 “소문을 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보건소 상급 기관의 한 간부도 여러 차례 천스융을 만나 사적으로 해결하길 바란다고 종용했다고도 한다. 이를 두고 마을 주민들은 보건소뿐 아니라 상급 기관들이 조직적으로 가담했을 뿐 아니라 사태를 은폐하려 했다고 의심한다.
논란이 커지자 단현 기율위원회 감독위원회는 공안당국과 함께 신속히 조사단을 꾸려 진상 파악에 나섰다. 조사 결과 비위가 드러난 당원과 공직자들에 대해 엄정 대처하기로 했다. 췌이커우 보건소 관계자들에 대해선 업무 허가증을 압류 조치했다. 또한 췌이커우 보건소의 의료보험 청구 자격도 정지시켰다. 당국은 허위로 기재된 병명의 경우 삭제 또는 수정하기로 했고, 이를 주민들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사회과학원 건강사업 발전연구센터 부주임 천치우린은 보건소 일부 인력만으로는 이 정도 범위의 범죄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수사의 관건은 대규모 의료보험 조작의 배후에 숨겨진 세력, 또 이로 인해 조성된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라면서 “중대한 질병에 대해선 마을 의사 혼자서 처방전을 쓸 수 없다. 상급 기관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개인 일탈이 아니다. 공안당국이 이 부분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배경화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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