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할로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할리우드는 밝은 금발을 숫처녀의 순결함과 동일시했다. 하지만 진 할로는 뭔가 다른 느낌의 혈통이었다.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불꽃처럼 빛났던 그녀의 금발머리는 단순히 숫처녀의 순결함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진 할로의 금발머리는 마치 대공황의 가혹한 현실에 시달리는 대중을 위해 존재하는 듯했다.
할리우드에서 전통적으로 섹시 스타의 기준은 금발(블론드)이었고 그 신화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린 진 할로라는 이름을 만난다. <배트맨>의 원작자인 밥 케인에게 ‘캣우먼’ 캐릭터의 영감을 주었고, 마릴린 먼로의 우상이기도 했던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에 태어나 26년의 짧은 삶을 살다가 요절한 스타다.
10년 동안 36편의 영화에 출연했던 그녀의 영향력은 그녀가 거둔 흥행이나 시상식 트로피 같은 세속적인 가치로 따질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블론드를 넘어 ‘플래티넘 블론드’(백금발)의 전설을 남긴 진 할로. 그녀 이후에 등장한 수많은 섹스 심벌에게 기준은 항상 ‘진 할로’라는 이름이었다.
1911년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난 그녀는 부모가 이혼하자 어머니와 함께 할리우드로 갔다. 그녀의 어머니는 젊은 시절 배우 지망생이었는데, 자신의 못 다 이룬 꿈을 딸을 통해 이루려 했다. 하지만 5세 때 뇌막염을 앓았고 15세 때 성홍열로 고생했던 진 할로는 과연 배우가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병약한 아이였다.
16세에 집을 떠나 자신보다 일곱 살 많은 남자와 결혼한 진 할로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가끔씩 엑스트라 일을 한 건, 딸이 배우가 되길 원했던 엄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일일 뿐이었다. 진 할로에게 영화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워드 휴즈를 만나면서 모든 것이 바뀐다. 항공 산업계의 거물이자 야심 찬 영화 제작자였던 휴즈는 진 할로에게서 뭔가 특별한 것을 보았고 <지옥의 천사들>(1930)에 캐스팅한다. “통통하지만 얼굴은 조막만하고 음침한 구석이 있다”는 평을 얻었던 틴에이저는 이 영화로 일약 섹스 심벌로 부상했다.
엄청나게 빠른 말투로 위트 있는 대사를 퍼붓는 그녀의 모습에 대중들은 신선함을 느꼈다. 그러자 홍보 담당자는 재빨리 ‘플래티넘 블론드’라는 별명을 붙였고, 그녀는 매주 일요일마다 미용실에서 머리카락을 탈색시켰다. 물결치는 백금 빛 머리는 즉시 유행이 됐고 미국 지역 과산화수소 판매는 급속히 치솟았다.
이후 MGM 전속이 된 그녀는 좀 더 세련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8시의 디너>(1933)에서 코미디 연기의 절정을 보여주었고 딸을 통제하려는 엄마와 탐욕스러운 계부가 등장하는 진 할로 자신을 반영한 <밤쉘>(1934) 같은 영화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삶 자체가 행복한 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16세)과 이혼(19세)을 경험한 할로는 21세에 영화 제작자인 폴 번과 결혼했지만 2개월 후 남편은 자살했다. 다음 해 촬영감독인 해롤드 로슨과 결혼했지만 6개월 만에 헤어졌다.
물론 많은 연인들이 있었다. 로버트 테일러, 클라크 게이블, 제임스 스튜어트 등의 톱 스타와 데이트를 했고 벅시 시겔 같은 갱스터와도 어울렸다. 동료 배우였던 윌리엄 파웰은 그녀와 결혼하려 했고 진 할로도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았다. 여배우로는 최초로 <라이프> 잡지 표지 모델이 되며 절정을 맞이했던 1937년. 진 할로는 <사라토가>(1937)를 찍던 도중 병원에 실려 갔다. 어린 시절 앓았던 성홍열의 영향으로 생긴 요독증으로 인한 신장 질환이었다. 손과 발이 물에 차 퉁퉁 부었던 그녀는 그렇게 26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MGM의 루이스 B. 메이어 사장은 거대한 규모의 장례식을 주관하며 애도했고 수많은 팬들이 슬픔에 젖었다. 유작이 된 <사라토가>는 대역을 이용해 완성되어 그해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는데 이것은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관객들의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었다.
요절하지 않았다면 긴 시간 동안 스타덤에 올랐을 진 할로는 톡톡 튀는 대사와 그녀만의 의상으로 공황기에 활기를 불러일으켰던 스타였다. 156㎝의 작은 키에 귀여움과 섹시함을 겸비했던 진 할로. 촬영 전에 항상 얼음으로 유두를 문질러 섹시함을 강조했고 “남자들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브래지어를 안 하기 때문”이라는 ‘쎈’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그녀는 항상 왼쪽 발목에 행운의 발찌를 차야 마음이 놓이는 여린 여자이기도 했다.
그녀와 여섯 작품을 함께 했으며 한때 연인이었던 클라크 게이블은 진 할로의 진짜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유명해지길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행복하기를 원했을 뿐이다.” 과연 그녀의 짧은 삶은 행복했을까? 그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남긴 ‘블론드의 전설’은 이후 할리우드의 흐름을 바꾸어놓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