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멤버 구성을 살펴보면 어김없이 번듯하게 생긴 배우 한 명은 꼭 포함이 된다. ‘멀쩡하게 생겨서 저기 왜 나오는 거지?’ 시청자들의 의문 섞인 핀잔을 듣기도 하지만 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 멤버로 자리잡게 된다.
이들의 빛나는 외모와 의외의 예능감은 프로그램 속 다양한 캐릭터 내에서도 유독 빛이 난다. 그러나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했던가? 독한 예능 속에서 이들이 살아남기까지 그 고충은 아무도 모른다. 배우들의 험난한 예능도전기를 살펴본다.
최근 ‘1박2일’에 합류해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엄태웅. 그는 제작진의 섭외가 있을 당시 말도 안 된다며 수차례 손사래를 쳤을 만큼 애초부터 예능 프로그램과는 거리가 먼 사나이였다. 그의 팬들 또한 엄태웅이 예능만 나가면 ‘우물가에 어린아이 내놓는 기분’이라고 말할 만큼 그의 ‘1박2일’ 출연은 기대와 동시에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방송 이후 예능계의 숨어있던 진주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엄태웅. 그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얼마 전 그가 누나 엄정화와 함께 TV 광고를 찍던 날. 그는 한 연예정보 프로그램과의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1박2일’ 관련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프로그램의 고정 멤버로 합류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박2일’ 관련 질문에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첫 촬영 때 부담감은 말로 표현 못 할 정도였고, 지금도 많이 불편하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배우로서 그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무엇일까?
“제작진을 통해 제 캐릭터와 역할을 잘 전해 들었고, 때문에 웃겨야 한다는 부담은 없다”는 그는 가장 힘든 점으로 오프닝 촬영을 손꼽았다. “1박2일을 단체로 외칠 때 소외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아직 어색하다”고 전한 그는 “멋지게 폼 잡고 외쳐야 할지 망가지며 외쳐야 할지 여전히 감을 못 잡겠어 가끔 립싱크로 1박2일을 외칠 때도 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또한 그는 첫 촬영 당시 “메이크업을 언제 해야 하나 고민하다 촬영이 다 끝나버렸다”며 “노메이크업의 피부도 문제였지만 촬영의 시작점과 끝점을 예측할 수 없어 매우 당황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예상외의 빠른 적응을 멤버들의 공으로 돌렸는데 “영화나 드라마 현장에선 배우들이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려 애쓰지만 예능에선 서로 격려해주고 단점을 감싸주더라”며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리얼 버라이어티의 정(情)’에 흠뻑 빠져있음을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두 번째 촬영 직후 누나 엄정화에게 ‘누나. 나 이 사람들 진짜 좋아’라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고.
멤버들 사이에서 ‘구구단 블랙홀’로 떠오른 그에게 비책은 없을까? 그는 “구구단을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다만 예능 첫 촬영에 긴장한 상태에서 다짜고짜 구구단을 쪼아대듯 물어보니 잘 못한 것뿐”이라는 분명한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 휴대폰에 구구단표를 다운받아 수시로 보고 있다고. 예능에서도 여전히 ‘엄포스’의 면모를 뽐내고 있는 엄태웅이다.
엄태웅과 함께 1박2일에 출연 중인 가수 겸 배우 이승기는 얼마 전 한 행사장에서 예능에 출연하며 겪은 남모를 고충을 털어놓다. 그가 말한 고충은 바로 피부. “드라마와 예능을 병행할 때는 ‘1박2일’ 촬영장과 드라마 촬영장을 수시로 오가게 되는데 스케줄상 연결 신이 많아 피부 관리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 의상과 헤어는 코디네이터들의 도움을 받지만 피부가 새까맣게 타거나 트러블이 생길 경우 연결 장면에 상당한 지장이 생긴다는 것이다. ‘1박2일’에서 피부미남이라는 애칭을 얻을 만큼 유독 꼼꼼히 세안에 신경 쓰는 그의 모습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
그는 실제로 드라마 <찬란한 유산>과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를 찍을 당시 ‘1박2일’에서 선 캡과 마스크 등의 패션을 선보이며 유독 선 크림을 많이 바르는 모습을 보였고, 덕분에 당시 그가 사용했던 선 크림은 ‘이승기 선 크림’이라는 이름으로 날개 돋친 듯 팔리기도 했다.
한편 ‘패밀리가 떴다2(패떴2)’ 고정멤버로 출연한 바 있는 윤상현은 “드라마는 대본이 주어져 그것에 따른 철저한 분석을 하고 촬영에 임하지만 예능은 상황만 주어지기 때문에 ‘패떴2’ 촬영 초 상당히 헤맸다”며 예능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TV를 통해 볼 때는 나도 잘하겠지라는 생각을 으레 하지만 전문 예능인들의 순발력 앞에서 배우들은 기가 죽는다”며 “언제 어떻게 멘트를 치고 빠질지 고민하다보면 자신감을 잃게 되고 눈치만 보다 촬영이 끝나기 마련”이라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패밀리가 떴다1’에 고정 출연했던 김수로 또한 배우로서 예능에 적응 못해 신경성위장염에 시달렸던 아픈 사연을 갖고 있다. 그는 <상상플러스>를 통해 ‘꼭짓점 댄스’를 전국적으로 유행시키는 등 예능에 가장 기대되는 배우였지만 ‘패떴’을 통해 본격 예능에 진입한 후 생각처럼 만만치 않은 현실에 상당한 고생을 했다고 한다.
특히 정작 녹화 첫날 자신에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아 왕따에 시달리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예능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면 주인공이 돼서 질문에 답을 하면 됐지만 고정 출연진이 되자 분위기가 180° 달랐던 것. 자신을 향한 질문을 기다리다보니 촬영이 끝나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눈 깜짝할 새 상황이 바뀌어버리는 예능의 생리에 미처 적응을 못했던 그는 실제로 첫 녹화 당시 유재석과 윤종신 등에게 “예능은 나랑 안 맞는가보다”며 자책했고 딱 3개월만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패떴’ 출연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가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공교롭게도 그와 같은 배우 출신 이천희와의 ‘김계모&천데렐라’ 캐릭터의 탄생이었는데, 이 또한 예능인 사이에서 배우들의 의기투합이 만들어낸 캐릭터였다. 초반의 어려움을 딛고 여전히 예능 러브콜 1순위인 그는 “후배 배우들이 예능에 출연할 수 있도록 물꼬를 텄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오늘을 즐겨라(오즐)’에 고정 출연했던 배우 정준호는 예능을 병행하며 느낀 어려움으로 체력관리를 꼽았다. 드라마 <역전의 여왕>과 ‘오즐’에 겹치기 출연했던 그는 <역전의 여왕> 섭외를 받고 상당기간 고민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미니시리즈의 특성상 일주일의 대부분을 밤샘 촬영에 임해야 하고 이는 기존에 출연 중인 ‘오즐’에 민폐를 끼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매주 수요일 ‘오즐’ 촬영에 임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하루를 전부 비워야 하는 스케줄에 상당히 버거워했다고 한다.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예능프로그램 촬영에 본업인 드라마 출연까지 고사할 뻔했으니 그야말로 주객전도가 아닐 수 없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