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14년 동안 철저히 감춰져 있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역시 문제는 돈이었다. 결혼에서 이혼까지의 전 과정을 ‘신비주의’라는 장막 안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치러낸 ‘환상의 복식조’가 결국 재산분할과 위자료 문제에서 파열음을 낸 것. 청구금액은 55억 원. 만약 이지아가 승소할지라도 100% 승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받게 될 금액은 이에 못미칠 것으로 보인다. 톱스타 입장에서 CF 몇 편이면 벌 수 있는 돈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연예계 활동에 치명타가 될지도 모르는 소송을 강행한 까닭은 무엇일까.
영화 <올드보이>에서 우진(유지태 분)은 대수(최민식 분)에게 이런 대사를 던진다. “왜 15년을 가뒀는지가 아니라 왜 풀어줬는지를 물어봤어야지.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서태지와 이지아의 사례 역시 비슷하다. 의혹의 핵심은 왜 지금 그들이 소송을 벌이고 있느냐다. 그동안 유지해온 신비주의가 깨지는 것을 감안하면 소송이 아닌 합의로 마무리할 수도 있었던 사안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이로 인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말았다.
소송을 제기한 이지아는 “원만한 관계 정리를 원했으나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재산분할청구소송의 소멸시효기간이 다 되어 더 이상 협의가 힘들 것으로 판단되어 지난 1월 19일 소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의문은 2009년 당시 두 사람의 관계다. 2009년 초 이혼이 성립한 것으로 보이나 이지아는 그해 3월 서태지의 콘서트장을 찾아 팬임을 자처했다. 당시 두 사람이 비록 이혼은 했어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2010년 들어 뭔가 양측의 사이가 멀어진 계기가 생겼다는 얘기가 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논란의 핵심 쟁점은 둘 사이를 적대적으로 뒤바꾼 사안이 무엇이냐가 된다. 항간에선 정우성과 이지아의 열애가 그 계기로 주목받고 있지만 열애 시작 시점과 서태지와의 분쟁 시점이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반면 2009년 콘서트장 방문이 무언의 시위였다는 해석도 있다. 이혼 성립이 된 뒤 재산분할 및 위자료 지급을 요구하던 이지아가 돌발적으로 서태지의 콘서트장을 찾았다는 것. 이지아와의 관계가 공개되는 것을 꺼려온 서태지 입장에선 콘서트장을 찾아 취재진에게 팬을 자처한 이지아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을 수 있다. 당시 서태지컴퍼니 역시 이지아가 사전에 콘서트 관람 협조를 구하고 온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2년 동안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결국 소송에 이르게 됐다는 얘기가 된다. 이 경우 앞서 언급했듯이 55억 원의 돈이 판도라의 상자를 깰 만큼 이지아에게 절실했는가가 의문으로 남는다. 반대로 이번 일로 당분간 이지아가 정상적인 연예계 활동을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그 피해액이 수십억 원대 이상이라는 예측도 있다.
법조 관계자들은 50억 원의 재산분할보다는 5억 원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이번 송사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재산분할의 경우 ‘재산 형성에 얼마만큼 기여를 했느냐’를 따지는 데 반해 위자료는 ‘이혼의 귀책사유’를 따진다. 5억 원이면 다소 이례적인 금액으로 가정 폭력 등의 남성 측 귀책사유가 크다고 보이는 경우에도 1억 원을 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이지아의 경우 스무 살에 결혼해 그 사실을 숨긴 채 오랜 세월을 베일 뒤에서 살아왔다는 점 등을 이유로 5억 원의 위자료를 청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외에도 뭔가 서태지에게 치명적인 귀책사유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만큼 5억 원은 위자료 청구에서 큰 금액이다. 양측 변호인단까지 마치 형사 사건처럼 쟁쟁한데 이도 가정법원에선 이례적이다.
연예관계자들은 반드시 이번이 아닐지라도 언젠가 두 사람의 관계가 공개될 때를 대비해 이지아 측에서 위험을 안고 소송을 진행했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한다. 높은 위자료를 받아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 연예계 생활의 지장을 최소화하려 했을 수 있다는 것.
현재까지의 법정에선 이혼 시점을 두고 공방이 치열하다. 서태지의 주장처럼 2006년에 이혼한 것이라면 위자료 및 재산분할 청구 소송은 성립조차 되지 않는다. 국내 민법상 위자료 청구 소송은 3년, 재산분할 청구 소송은 2년 이내에 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는 이지아 측이 이혼 성립이 2009년 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공판의 주요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지아 측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본격적인 위자료 및 재산분할에 대한 공판이 시작된다. 이때부터는 이혼의 귀책사유가 공판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이는 매스컴을 통해 그대로 지상 중계될 전망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