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리킥을 잘 차는 선수들에겐 호날두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사진은 ‘월미도 호날두’로 불리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유병수가 상무와의 경기에서 슈팅을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
역시 축구를 거론하면 ‘종가’ 잉글랜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스트라이커 웨인 루니를 빼놓을 수 없다. K리그 골문을 노리는 공격수들 상당수가 ‘루니’란 타이틀을 가졌다. 소속 팀 연고지도 덩달아 부각된다는 게 흥미롭다.
요즘 새로이 부각되고 있는 전남 드래곤즈 신예 이종호의 별명은 ‘광양 루니’다. 울산에 둥지를 튼 고창현은 대전 시절 ‘계룡산 루니’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골 감각이 유달리 뛰어나거나 프리킥을 기가 막히게 잘 차는 선수들에게는 호날두(레알 마드리드)가 따라붙는다. 인천 유나이티드 유병수는 ‘월미도 호날두’로, 놀라운 무회전 프리킥 실력을 자랑한 전북 현대 김형범은 ‘완산벌 호날두’로 지칭된다.
수원 삼성 염기훈도 종종 맨유의 살아있는 레전드 라이언 긱스를 따 ‘염긱스’로 불린다. 전남 소속으로 1월 카타르 아시안컵을 통해 국내 최고 에이스 중 하나로 부각된 지동원은 ‘광양 즐라탄’으로 불리운다. 하지만 지동원은 이름 때문에 때로는 참치로 통할 때가 있다. 이른바, ‘동원 참치’. 좋은 플레이를 하면 즐라탄이 되고,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면 캔 속의 참치가 되는 셈이다.
스타일과 생김새가 별명을 좌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개 연예인이 대상이 된다. 지난 시즌 K리그 신인왕을 수상한 경남FC 윤빛가람은 현빈을 따라 ‘윤빈’이 됐다. 국가대표팀 선수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드라마 <시크릿가든> 남자 주인공 현빈과 헤어스타일이 같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윤빛가람은 또 다른 별명도 지니고 있다. 바로 ‘윤 뽀로로’다. 만화 캐릭터 뽀로로를 닮았다는 게 발단이 됐다. 경남 팬들은 윤빛가람에게 종종 뽀로로 인형을 선물하는데, 최근 윤빛가람은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자꾸 보니까 닮은 것도 같다. 팬들이 주는 뽀로로 인형을 안고 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본래 포지션이 수비형 미드필더였지만 상주 상무에서 공격수로 활약 중인 김정우는 마른 체형 탓에 ‘뼈정우’가 됐다.
닉네임 열전에 간혹 할 리우드 배우가 등장하기도 한다. 삭발한 듯 바짝 짧게 깎은 스포츠 머리가 검투사 글래디에이터를 닮았다는 이유로 포항 스틸러스 중앙 수비수 김형일은 ‘검투사’로 지칭된다. 물론 거친 몸 싸움을 마다하지 않고 투지를 발휘하는 플레이 모션에서 김형일은 검투사와 다를 바 없다.
지금은 바뀌었지만 질끈 동여맨 말총머리를 빗대 경남의 노장 골키퍼 김병지는 ‘꽁지’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생활 습관이 별명을 만들어줄 때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 J리거 이천수(오미야). 독특하고 남다른 습성에 ‘악동’으로 낙인찍혔다. 지금은 수원 산하 고교팀 매탄고에서 코치로서 제2의 인생을 열어가는 고종수도 ‘천재’와 ‘악동’을 동시에 오간 적이 있다.
종교가 주를 이룰 때도 많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최태욱은 동료들로부터 ‘전도사’ 혹은 ‘목사님’으로 통한다.
지난해 서울을 우승시킨 뒤 올해 상주 상무에 입대한 최효진은 생김새 탓에 둘리 만화에 ‘또치’로 불리지만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마징가Z’가 되기도 한다.
전북 미드필더 김상식은 걸죽한 입담으로 ‘식사마’ 캐릭터로 지칭되고, 밝고 경쾌한 인상을 심어주는 FC서울 이승렬은 ‘피터팬’이 됐다. 서울은 서포터즈를 대상으로 닉네임 공모까지 해 이승렬에게 별명을 붙여줬다.
이밖에 수원 염기훈은 머리를 짧게 치고 나왔을 때, 선명한 땜통 자국 탓에 ‘염(영)구’로 각인되기도 했다.
벤치의 사령관들도 팬들의 시선을 피해갈 수 없다. 성남 일화 신태용 감독은 현역 시절 별명을 그대로 쓰고 있다. 남다른 재치로 시선을 사로잡는 모습에 ‘그라운드의 여우’로 통하지만 종종 독특한 지휘 스타일로 ‘신PD(프로듀서)’가 될 때도 있다.
대전 왕선재 감독은 ‘왕쌤’이다. 말 그대로 선생님의 줄인 말로 대전 선수들이 붙여준 것으로 전해진다.
전북 최강희 감독은 두 가지 닉네임이 있다. 이름을 따 만들어진 ‘강희대제’와 전북 선수단 클럽하우스가 위치한 지역을 딴 ‘봉동이장’이 그것이다. 그러나 최 감독은 “강희대제라는 별명보다는 친근하고 편안한 ‘봉동이장’이 더 좋다”고 한다.
포항 지휘봉을 잡은 황선홍 감독은 ‘황새’로, 수원 윤성효 감독은 ‘스라소니’가 됐다. 물론 윤 감독은 하위권에서 허덕이던 팀을 금세 중상위권까지 끌어올린 공을 인정받아 유럽 명장 무링요를 따 ‘무링효’로 불리기도 했다. 부산 아이파크 안익수 감독은 학구파 이미지로 ‘안교수’가 됐고, 강원FC 최순호 감독은 점잖은 태도와 외형에 ‘최젠틀’로 통한다.
대개 사령탑들이 나름 나쁘지 않은 별명을 가진 가운데 반면 서울 황보관 감독은 부진한 성적 탓에 그저 웃어넘기기는 어려운 닉네임이 따라붙었다. 이름을 따 행보관(군대에서 행정과 보급을 담당한 부사관 직책 행정보급관의 줄임말)으로 불리기도 하고, 때론 ‘항복왕’이 될 때도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차두리의 히트 CF송 “간~때문이야” 때문에 “관~때문이야”라고 의미 심장한 지적을 받기도 한다.
좋은 별명을 얻기 위해서라도 역시 축구는 잘하고 볼 일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