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미모’ 그 굴레를 끊다
1932년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그녀의 부모는 모두 미국인이었다. 2차 대전이 터지자 테일러의 가족은 미국으로 돌아왔고 LA에 터전을 잡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어릴 적부터 동네에서 유명했던 ‘예쁜이’였다. 이웃 사람들은 스튜디오에서 카메라 테스트를 한 번 받아보라고 부추겼고, 어린 시절 테일러는 손쉽게 아역 배우가 된다.
열 살 때 데뷔한 테일러는 곧 MGM의 스카우트를 받으면서 아역 스타로 발돋움한다. 이후 틴에이저 시절을 거쳐 테일러가 성인 연기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영화는 <젊은이의 양지>(1951).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호흡을 맞춘 이 영화로 그녀는 단숨에 1950년대 할리우드의 ‘미의 기준’이 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보면, 한 명의 여배우에 ‘타고난 미모’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신의 선물일까 아니면 족쇄일까? 테일러에겐 둘 다 해당되었다. 그녀는 분명 위대한 미모로 각광받았지만, 그 숭고함을 조금씩 파괴함으로써 비로소 배우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스튜디오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를 벗고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변신을 추구한 건 20대 중반. 그녀는 좀 더 섹슈얼한 캐릭터를 시도한다. 그 시작은 첫 오스카 노미네이션의 영광을 안았던 <레인트리 카운티>(1957). 이 영화부터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1958) <지난 여름 갑자기>(1959) <버터필드 8>(1960)까지 4년 연속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고 <버터필드 8>로 드디어 트로피를 거머쥔다. 이 기간 동안 그녀는 내면적 붕괴와 성적 문란함을 지닌 캐릭터들을 꾸준히 맡았다.
1950년대에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후 제인 폰다나 조디 포스터 같은 배우가 창녀 역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가긴 했지만 검열이 시퍼렇게 살아 있던 시기에 섹슈얼한 캐릭터로 오스카의 주인공이 되는 건 그녀의 섹슈얼리티가 드러나지 않는 그 무엇이었기에 가능했다. 금발이 아닌 흑발이었고, 바이올렛 빛의 무채색 눈동자였으며 짙은 눈썹과 밝은 혈색을 지닌 그녀의 모습은, 단아함과 정갈함을 지닌 섹시한 매력이었다.
그런 면에서 동시대의 배우였던 마릴린 먼로는 여러 면에서 테일러와 반대 지점에 있었다. 금발, 백치미, 정치인과의 스캔들, 비극적 죽음…. 먼로가 불꽃처럼 순간을 살았다면, 테일러는 어떤 아이콘으로 얽매이지 않았다. 그리고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1966)에서 그녀는 34년 동안 자신을 덮고 있던 미모의 사슬을 끊고, 추레하고 뚱뚱한 중년 여성으로 변신하며 두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가져간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 7명의 남편과 8번의 결혼식일 것이다(다섯 번째 남편 리처드 버튼과는 이혼 후 재결합하면서 두 번 결혼식을 올렸다). 열여덟 살에 만난 첫 남편 콘래드 힐튼 주니어는 힐튼 호텔 체인의 창립자인 콘래드 힐튼의 아들. 결혼 생활은 9개월 동안 이어졌다. 두 번째 남편은 영국 배우 마이클 와일딩. 그와 두 아이를 낳았다. 와일딩과 이혼한 지 3일 만에 세 번째 남편인 영화제작자 마이크 토드를 만났지만 그는 1년 만에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네 번째 남편은 에디 피셔. 당시 데비 레이놀즈라는 여배우와 결혼 상태였지만 테일러가 빼앗으면서 커다란 스캔들로 번졌다.
테일러가 가장 길게 결혼 생활을 한 남자는 리처드 버튼이었다. <클레오파트라>(1963) 현장에서 만난 버튼과 10년을 함께 산 테일러는 이혼 후 재결합하며 애정을 이어나갔지만 결국은 다시 헤어졌다. 이후 두 번의 결혼이 더 있었고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선 프랭크 시내트라부터 데이비드 보위까지 다양하고 많은 남자들과 연인 관계였다. 그녀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캔들 메이커였으며, 결혼과 이혼 스토리는 대중들에게 그녀의 영화 스토리만큼이나 흥미로운 그 무엇이었다.
할리우드 고전기의 마지막 ‘위대한 스타’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세상을 떠남으로써, 이제 그 시대의 생존자는 킴 노박과 로렌 바콜만이 남았다. 하나둘씩 사라지는 ‘클래식 뷰티’들…. 다시 한 번 테일러의 명복을 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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