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베트남을 방문한 386의원들이 SK텔레콤 등 대기업 법인들로부터 하롱베이 관광과 향응 등을 제공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사진은 하롱베이의 관광지와 유흥업소 합성.로이터/뉴시스 |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베트남 국회의장 초청 명목으로 재선인 송 시장을 단장격으로 초선 의원 5명이 방문단에 합류했다. 이들 의원단은 당시 보도자료 등을 통해 베트남 국회의장 초청으로 방문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일요신문>의 베트남 현지 취재결과 이들 386정치인들은 베트남 국회의장의 공식 초청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 되고 있다. 기자가 한국 국회와 베트남 국회에 확인한 결과 베트남 국회의장의 공식 초청장은 없었고, SK텔레콤을 주관사로 한 베트남 주재 대기업 법인들이 의원단을 의전하고 접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5월 10일 베트남 대사관에서 기자와 만난 금기형 주 베트남 한국문화원장(홍보관 겸임)은 2004년 당시 386의원단의 공식 방문 여부는 물론 베트남 일정 등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금 원장은 당시 의원단의 방문 목적과 일정 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의원단의 방문 목적이나 일정 등에 대해 아무런 답변을 해 줄 수 없다는 게 대사관의 공식 입장”이라고 답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국내 정부 고위직 인사들이 해외를 방문할 경우 해당 국가 대사관이 이들을 의전해 온 관례에 비춰볼 때 금 원장의 ‘모르쇠’ 입장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는 대목이다.
취재결과 송 시장을 비롯한 이들 의원단은 베트남 국회의장을 만나지 못했고, 대기업 법인들의 주선으로 베트남 정부 일부 관계 장관과 국회 상임위원장만 만나고 귀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신 이들 의원단은 SK텔레콤 등 대기업 법인들로부터 하롱베이 관광과 향응 등을 제공받았고, 일부 의원은 대기업 로비스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5월 11일 베트남 호치민에서 기자와 만난 전직 대기업 법인장 J 씨는 “당시 의원단이 국회의장의 초청을 받고 방문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베트남 주재 대기업 법인들이 의원들을 의전하고 접대한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J 씨는 이어 “정치인을 비롯한 국내 VIP급 인사가 방문할 경우 한국 본사에서 직접 의전 지시가 내려온다”며 “당시에는 SK텔레콤이 의전을 주도했고, 삼성 LG 포스코 등 대기업 법인들은 일부 의전과 관광을 담당했다”고 밝혔다.
당시 의원단의 역할 및 접대 비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J 씨는 “기업은 이윤추구가 목적인 만큼 의원들을 상대로 베트남 정부 관계자나 호치민 시장 등을 소개받고 각 기업들의 현안 문제를 어필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며 “접대 비용은 파트별로 주관 기업이 나눠져 있었던 만큼 구체적인 액수는 파악할 수 없지만 SK텔레콤의 경우 의원 한 명당 대략 2만~3만 달러 정도의 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해 ‘스폰서 정치인’ 의혹을 부추겼다.
J 씨의 말을 종합하면 당시 의원단은 대기업 법인들로부터 관광과 향응을 제공받은 대가로 대기업의 현안을 해결해주는 ‘로비스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검찰·경찰 스폰서 파문에 이어 ‘스폰서 정치인’ 논란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보당국 일각에서는 SK텔레콤과 참여정부 일부 실세 간의 검은 커넥션 의혹이 나돌기도 했다. 실제로 SK텔레콤은 참여정부 시절 베트남의 CDMA 사업진출을 위해 5억 달러를 투자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2009년 말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SKT는 투자금액 중 2억 7000만 달러 정도는 회수했으나 나머지 2억 3000만 달러는 회수하지 못하고 모두 손실을 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J 씨도 성접대 사건과 관련한 검찰 참고인 조서에서 “2009년 SK텔레콤 재무제표를 우연히 본 적이 있는데 누적손실이 2300억 원 정도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진술한 바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SK텔레콤 측이 사업 성공을 위해 참여정부 시절 핵심 실세를 비롯해 386정치인들을 로비스트로 활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송 시장을 비롯한 386의원들이 2004년 8월에 베트남을 방문한 배경에 대해서 의구심을 보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해 SK텔레콤의 관계자는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인 만큼 로비 창구가 다원화 돼 있지 않고 정부의 구조 또한 로비가 통하지 않는 체제다”며 “SK텔레콤이 베트남 사업진출에 실패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국회의원 등 여권 실세들을 동원해 로비를 시도하려 한 사실은 더더욱 없다”고 주장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