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업체들이 ‘가족 같은 회사’를 표방하면서 좋은 인재들을 유혹한다. 기업 분위기는 직장인들이 가장 고려하는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가족들이 운영하는 회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직장인들이 꺼려하는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가족회사’다. 모든 가족회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공과 사가 구분되지 않아 사무실 내에서 가족끼리 호칭을 부르는가 하면 사방이 감시의 눈이라 숨도 크게 쉴 수 없고 불합리한 처사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기도 한다. 직장인들의 가족회사 경험담을 들어봤다.
가족회사의 매우 큰 단점 중 하나는 비밀 보장이 되지 않는 것이다. 속내를 함부로 털어놨다간 뒤탈이 생긴다. 중소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K 씨(여·29)는 최근 심각하게 이직을 고려 중이다.
“사장 동생이 회사에 있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회사에 이상하게 닮은 사람이 많고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서로 친근하게 굴더군요. 알고 보니 직원의 70% 이상이 가족과 친인척들로 구성된 회사였습니다. 동생은 부장, 아들은 과장, 딸은 경리팀장, 사위는 영업 차장이었고 다른 대부분의 직원들도 지인이나 친구 등이었어요. 사무실에서 입을 열기는커녕 메신저에서 살짝 ‘뒷담화’라도 하는 날에는 전 부서에 소문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예요. 사장실에서는 ‘아빠’ 소리도 종종 들립니다. 가족끼리 서로 흉보면서 저에게 넋두리를 하면 맞장구를 칠 수도 없고…. 가만히 들어주는 것도 이젠 지쳤어요.”
식료품업체에서 일하는 L 씨(31)는 같은 부서에 있는 동갑내기 동료를 볼 때마다 껄끄럽다.
“입사 초기 3개월간 해외 매장에 있었습니다. 도착했을 때 먼저 가 있던 동료 직원이 반갑게 맞아주고 이런저런 업무도 많이 가르쳐 줘서 금세 가까워졌어요. 게다가 동갑이라 사적인 자리에서는 친구처럼 지냈죠. 그러다보니 회사에 대한 처우라던가 비전,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스스럼없이 했고요. 그리고 3개월 뒤 거의 동시에 귀국해서 한국에 있는 본사로 출근했는데 며칠 뒤 그 동료가 사장 조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해외 매장에 있던 터라 귀띔해 주는 직원이 없어서 저만 몰랐던 거죠. 그 사실을 안 순간 아찔했습니다. 이제는 저도 모르게 어색해져서 슬슬 그 동료를 피하게 됩니다.”
가족회사는 특히 오너 부인, ‘사모님’이 함께 근무하는 곳을 피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많다. 여러 가지로 피곤한 일들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패션업체에 근무하는 O 씨(여·34)도 ‘사모님을 경계하라’는 조언에 크게 공감한다. 그녀가 전에 일했던 회사 이야기다.
“사장 부인이 실장 직급으로 같이 근무하던 회사였어요. 사모님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편하진 않겠구나’ 했는데 스트레스가 말도 못했어요. 업무를 볼 때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사건건 간섭을 해서 경력자들을 무안하게 만들었고요, 무엇보다 잔소리가 굉장했습니다. 물 아껴 쓰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청소, 커피 타는 것까지 일일이 간섭을 해서 못살겠더군요. 사장이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울 때가 많아 사모님이 사무실 실세였기 때문에 누구 하나 반기를 들지 못했습니다. 사모님은 직원들 회식비를 제일 아까워했고 연봉 인상은 어떻게든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렇게 인색한 사람이 비싼 명품만 들고 다녀서 직원들 불만이 많았습니다. 결국 저는 1년만 채우고 그만뒀습니다.”
컨설팅업체에 근무하는 D 씨(32)는 사무실에 출근하기만 하면 무겁고 조용한 분위기 때문에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사장 부인이 사무실에 같이 있습니다. 사장실은 따로 있고 나머지 직원들은 탁 트인 공간에서 근무하는데요, 그 한가운데 자리가 사모님 자리입니다. 도대체가 담배 한 대 피우러 갈 수가 없어요. 자리를 비울 때도 사모님 시선이 제 동선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 보통 직원들끼리 잠깐 쉬면서 농담도 하고 커피를 마시거나 하잖아요. 저희 사무실에는 눈치 보느라 잡담 같은 게 없습니다. 이러다 입에 거미줄 치겠어서 메신저라도 하고 있으면 사모님이 불시에 일어나 사무실을 돌아다녀서 그것도 잘 못해요. 사모님이 경리 책임자라 쓸데없는 비용처리는 꿈도 못 꾸고 한창 배고플 시간에 간식 한 번 사다 먹는 것도 눈치가 보이네요.”
가족이란 걸 쉬쉬해도 모자랄 판에 대놓고 티를 내서 다른 직원들의 눈총을 받는 경우도 있다. Y 씨(여·29)가 다니는 무역회사는 사무실에 사장 딸이 함께 일하는데 눈엣가시 같다고 투덜거렸다.
“회사에 들어온 지 이제 1년이 좀 됐는데 명색이 사장 딸이라고 대리 직급입니다. 보통 가장 일을 많이 하는 게 대리라지만 사장 딸에게는 남의 얘기죠. 중요한 일은 다른 직원들한테 떠넘기고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면서 월급은 저보다 훨씬 많이 받아갑니다. 대놓고 사무실에서 인터넷 쇼핑을 하는 건 일상이고요, 자리를 비울 때도 많아요. 금요일 오전에는 다 같이 사무실 청소를 하는데 그때마다 저한테 여기 좀 닦아라, 저기 좀 치워라 해서 짜증이 납니다. 나이도 어린데 사장 딸이라는 유세는 있는 대로 부려서 다들 싫어하지만 뭐, 본인은 개의치도 않죠.”
IT업체에서 일하는 J 씨(32)는 얼마 전 회사로 들어온 사장의 처남이 사장 부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고 말한다. 가족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그 사람은 대기업 계열 증권사에서 근무하다 크게 사고를 치고 퇴사한 뒤 낙하산을 타고 이 회사에 들어왔습니다. 사장 부인도 사무실에 나와서 이래저래 회사 일에 관여하는데 처남까지 합세했으니 완전한 가족회사가 된 거죠. 나오는 건 좋은데 너무 거만해서 다른 직원들을 무시하는 정도가 지나쳐요. 대기업 출신이라는 걸 은근히 강조하면서 체계가 없다는 둥 일하는 게 현명하지 못하다는 둥 때로 지나친 발언도 서슴지 않아요. 그렇게 사무실 분위기를 해치는데도 오너 인척이라는 것 때문에 속수무책 당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죠.”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가 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는 가족회사는 공과 사과 불분명하다는 것이 늘 문제다. 나름 객관적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팔은 안으로 굽고,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그래서 가족회사에서 일하지만 가족이 아닌 직장인들은 더 괴롭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