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는 누굴까? 다른 건 몰라도 ‘다작’을 기준으로 한다면 단연 론 제레미다. 2000편이 넘는 작품에서 2000명이 넘는 여배우와 공연했던 그는 ‘어덜트 비디오 뉴스’(AVN)가 선정한 ‘포르노 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 50인’ 중 당당 1위를 차지했으며, 60세가 가까운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정력가다.
1953년 뉴욕 롱아일랜드의 유태인 가족에서 태어난 론 제레미 하이엇. 아버지는 물리학자였고 전직 정보요원이었던 어머니는 출판사 에디터였다. 지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퀸스 칼리지에서 특수교육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고등학교에 재직하던 교사였다. 밤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배우 일로 부업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연기력은 시원찮았다.
역사는 우연에서 시작됐다. 당시 <플레이걸>이라는 잡지엔 ‘Boy Next Door’라는 일상 속의 훈남을 발굴하는 코너가 있었다. 론의 여자친구는 심심풀이로 그의 사진을 보냈고 잡지에 사진이 실리자 여기저기서 팬레터가 날아왔다. 이때 론을 눈여겨 본 사람은 포르노 업계 관계자들이었다. 포르노 산업이 한창 기지개를 켜던 1970년대, 론은 제안을 받아들였고 1978년에 첫 포르노를 찍는다. “벌거벗고 뒹구는 그 미친 짓을 하고 싶으면 맘대로 해라. 하지만 ‘하이엇’이라는 성을 사용한다면 널 죽여 버리겠다”는 아버지의 불호령 때문에 그의 이름은 ‘론 제레미’가 됐다.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평범한 외모였다. 168센티미터의 키에 80킬로그램의 땅딸막한 체구였고 등에 털이 많아 별명이 ‘고슴도치’였던 론 제레미. 큰 키에 멋진 얼굴에 식스 팩을 장착한 ‘몸짱’이 아닌, 평범한(혹은 평범 이하인) 모습의 론 제레미가 늘씬한 미녀들과 격한 섹스를 나누는 장면에 일반적인 남성 관객들은 강한 동질감을 느꼈고 그것은 격한 판타지로 이어졌다. “평범한 남성 관객들은 자신들과 나를 연관시키면서 영화를 본다. 나는 그들에게 어떤 희망을 주는 셈이다.”
여기에 절륜한 정력은 화룡점정이었다. 발기시 25센티미터에 달하는 그의 물건은 카메라 앞에서 거의 지루 증세에 가까운 놀라운 지속력을 보여주었다. 오죽하면 당시 업계에선 이런 조크가 돌 정도였다. “포르노 여배우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 세 가지. 그건 ‘수간’과 ‘사도마조히즘’과 ‘론 제레미와 섹스하는 것’이다.” 1981년 <인사이드 세카 Inside Seka>에서 최초로 오토펠라치오(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물건을 펠라치오 하는 것)를 선보인 론 제레미는 코미디와 포르노의 결합에 능수능란했고 섹스 연기만큼이나 하드코어한 입담에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단지 그가 배우에 머물렀다면 ‘포르노 킹’(The Porn King)이라는 영예로운 닉네임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1980년부터 직접 포르노를 연출했던 그는 지금까지 300편 가까이 감독했다. 1980년대엔 퍼블릭 엑세스(시청자가 시간대를 맡는 TV 프로그램)를 통해 심야 누드 토크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의 오지랖은 정말 대단한데 포르노가 아닌 일반 주류영화에도 60편 가까이 출연했고 <제리 스프링어 쇼>를 비롯해 수많은 TV 쇼에 게스트로 등장했다. <부기 나이트>(1997) <나인 하프 위크>(1986) 등엔 컨설턴트로 참여했고 빌보드 차트에 그의 랩 싱글 ‘Freak of the Week’가 27주 동안 머물기도 했다. 뮤직비디오와 광고도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고 2006년부터는 ‘안티-포르노’로 유명한 크레이그 그로스 목사와 함께 논쟁 투어를 펼치기도 했다. 뛰어난 피아노 연주 솜씨를 지녔고 파이프 오르간도 연주한다는 사실은 조금은 의외. 한편 백만장자임에도 엄청난 ‘짠돌이’로, 여행 중엔 쓰레기봉투를 가방으로 쓸 정도라고 한다.
“난 아직도 특수교육 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아이들과 함께 있는 걸 부모들이 본다면, 아마도 즉시 911에 전화할 것”이라며 씁쓸한 조크를 던지기도 하지만,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이 포르노보다 나쁘다”는 확고한 철학의 소유자인 론 제레미는 엄청난 활동력으로 ‘포르노 전도사’를 자청하는 액티비스트다. 20년 넘는 기간 동안 2000편이 넘는 포르노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으며, 50대 후반의 나이에도 왕성한 전방위적 활동을 펼치는 론 제레미. 그가 쓴 자서전의 부제가 ‘업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나이’(The Hardest Working Man in Showbiz)인 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