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2년 재창간한 <일요신문>이 지령 1000호를 맞이했다. 과연 지난 20여 년 동안 <일요신문>을 통해 가장 많이 소개된 연예인은 누굴까. 재창간호부터 1000호까지 <일요신문> 연예면을 모두 살펴본 결과 최고의 뉴스메이커로는 최진실이 선정됐다.
안타깝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떠난 최진실이 압도적인 차이로 지난 20여 년 동안 연예계를 거쳐 간 수많은 스타들 가운데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선정됐다. <일요신문> 연예부는 1호부터 1000호까지, 각 호마다 세 명의 연예인을 선정해 비중에 따라 3~1점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뉴스메이커를 선정했다. 그 결과 최진실이 162점의 점수를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 2위는 122점을 받은 심은하, 3위는 120점의 고현정이 차지했다.
1990년대 최고의 뉴스메이커는 단연 최진실이었다. 그만큼 1990년대 연예계에서 최진실은 압도적인 스타였다. 열애설과 결혼 등 커다란 이슈도 많이 양산했지만 톱스타로서의 왕성한 연예계 활동들이 다양한 형태로 기사화됐다. 1990년대 연예계가 2000년대와 가장 큰 차이점은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톱스타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톱스타가 매스컴 가까이에 있었고 톱스타와 대중의 거리도 좁았다. 또한 뉴스가 일부 톱스타에게 편중되는 경향이 강해 뉴스메이커로 분류되는 몇몇 연예인의 경우 사소한 사안도 기사화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진실 외에도 이승연 심은하 채시라 고현정 김희선 등이 90년대를 대표하는 뉴스메이커들로 꼽혔다.
연도별로 살펴봐도 최진실은 1990년대 최고의 스타였다. 1992년, 1993년, 1995년, 1998년 최고의 뉴스 메이커 역시 최진실이었다. 1994년은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를 통해 단박에 톱스타가 된 뒤 군에 입대하고 신애라와 결혼까지 한 차인표가 최고의 뉴스메이커였으며 1996년엔 지금까지도 의문사로 기록돼 있는 듀스의 멤버 고 김성재, 1997년엔 열애와 결별로 화제를 불어 모았던 채시라가 이슈의 중심에 섰다. 1999년엔 오현경, 2000년엔 심은하가 그 맥을 이어갔다.
2000년대 최고의 뉴스메이커는 고현정이다. 이혼과 연예계 컴백, 자살설 등 컴백 초기의 각종 루머들, 그리고 <선덕여왕>의 ‘미실’을 통한 정상 등극 등 다양한 이슈를 양산하며 1위에 오른 것. 다만 1990년대 최고의 뉴스메이커인 최진실이 1990년대에만 120점을 기록한 데 반해 고현정은 56점에 불과하다. 고현정 역시 대표적인 신비주의 연예인인 터라 1990년대 톱스타들처럼 평상시의 다양한 모습이 기사화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01년 은퇴를 선언했음에도 심은하는 2위에 올라 여전히 최고의 뉴스메이커임을 입증했고 최진실, 황수정, 유재석 등이 그 뒤를 이었다. 2000년대에는 연도별 뉴스메이커가 매년 달랐고 사건 사고 등 대형 이슈에 연관된 연예인이 그 주인공이 됐다. 인기 스타에게 뉴스가 집중돼 그해 최고의 인기 연예인이 최고의 뉴스메이커였던 1990년대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1990년대 최고의 뉴스메이커는 최진실 이승연 심은하 채시라 고현정 김희선 김혜수 서태지 오현경 엄정화 등이 선정됐고, 2000년대엔 고현정 심은하 최진실 황수정 유재석 고소영 신정환 이병헌 성현아 배용준 노현정 등이 이름을 올렸다. 1990년대와 2000년대 모두 이름을 올린 이들은 최진실 심은하 고현정뿐으로 이들이 지난 20여 년 동안 <일요신문>과 함께한 연예계 최고의 뉴스메이커 TOP3였다.
신민섭 기자 ksimany@ilyo.co.kr
최정아 기자 cja8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