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은 대중문화 분야에서 ‘바이 코리아’가 한창이다. <겨울연가> <대장금> 등 드라마 시작된 ‘1세대 한류’를 넘어 아이돌(Idol) 위주로 재편된 ‘2세대 한류’가 범람하고 있다. 지금 유럽에서도 휘몰아치는 K-POP 열풍의 진원지가 바로 일본 현지의 2세대 한류인 셈. 도대체 일본은 왜 한국의 20대 연예인에 열광할까? 또 장밋빛으로만 보이는 일본 내 한류에 문제점은 없을까. 일본 현지 취재를 통해 한류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왜 한국 걸그룹에 열광할까?
걸그룹 티아라는 지난 5일 일본 도쿄 시부야AX홀에서 쇼케이스를 열었다. 아직 일본 공식 데뷔 전이었지만 이날 쇼케이스에 참가하기 위해 10만 명이 넘는 일본 팬이 응모했다. ‘간택’을 받아 쇼케이스장에 들어선 일본 팬들은 능숙한 한국어로 티아라의 히트곡을 따라 부르고 각 멤버들의 이름을 불렀다. 티아라의 멤버 함은정은 쇼케이스가 끝난 뒤 “우리의 이름뿐만 아니라 노래 가사까지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랐다. 일본에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4일 저녁엔 일본 NTV 토크쇼 <샤베쿠리 007>에 카라가 출연했다. 이들은 능숙한 일본어로 MC들과 대화를 나눴다. 기자가 묵은 호텔 관계자는 “카라의 높은 인기로 그들이 출연한 토크쇼는 수차례 재방송됐다. 멤버 별로 캐릭터가 분명해 팬 층이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걸그룹이 일본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이유 중 하나로 ‘현지화 전략’을 꼽을 수 있다. 티아라는 이 날 쇼케이스 대부분을 일본어로 진행했다. 티아라 멤버들은 “일본어를 공부하느라 전날 잠을 못 잤다”고 했을 정도. 쇼케이스 취재를 위해 방문한 일본 취재진들은 “서툴지만 일본어로 쇼케이스를 진행하는 것을 보고 감동했다. 대부분 걸그룹들이 완벽하게 준비된 모습을 보여준다. 노력하는 모습이 일본인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티아라의 소속사 코어콘텐츠미디어는 숙소에 전담 외국어 강사를 뒀다. 강사비만 한 달에 1000만 원에 이를 정도. 코어콘텐츠미디어 관계자는 “각 멤버들의 개인 활동이 많아 한꺼번에 수업을 받을 수 없다. 외국어 강사가 상시 대기하고 있다가 숙소로 복귀하는 멤버들에게 개별적으로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걸그룹은 향후 한류 시장에서 가장 효용가치가 높은 존재다. 기존 남성 아이돌을 ‘좋아했던’ 일본 여성 팬들은 한국의 걸그룹처럼 ‘되길’ 원한다. 단순히 팬으로서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걸그룹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한 일본 전문가는 “걸그룹을 좋아하는 일본 팬들은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때문에 그들의 액세서리뿐 아니라 의상 하나하나까지 MD 상품(MD는 Merchandiser의 약자로 상품기획자 상품, 기획상품을 의미)이 될 수 있다. 여기에 한류의 불모지였던 남성 팬까지 유입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근석 ‘포스트 욘사마’?
배우 장근석은 지난해 드라마 <미남이시네요>가 방송된 이후 한류의 ‘신성(新星)’으로 떠올랐다. 그는 일본에서 ‘근짱’으로 불린다. 한류의 시작이었던 ‘욘사마’의 뒤를 이을 만한 재목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류 관련 상점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일본 도쿄 신오쿠보. 이곳엔 한 블록 안에 10여 개의 한류 상점이 모여 있을 정도다. 취재진이 신오쿠보를 찾은 6일은 평일이었음에도 한류 상품을 사기 위한 일본 팬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신오쿠보에서 가장 큰 한류 상점인 H 플라자에 들어서면 입구에 각종 한류 잡지 당월호가 진열돼 있다. 약 15개의 한류 잡지 가운데 장근석을 표지모델로 쓴 잡지만 무려 6개. 상점 점원은 “지난 3월에는 장근석이 표지모델로 나선 한 잡지가 한 달 동안 무려 28만 부나 팔렸다. 요즘은 장근석을 내세우면 장사가 잘 된다”고 밝혔다.
장근석과 관련된 MD 상품은 종류도 다양하다. 최근작은 <미남이시네요> <매리는 외박 중>의 DVD와 책을 비롯해 과거 출연했던 드라마 <황진이> <베토벤 바이러스> 등과 관련된 상품도 볼 수 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매출의 50~60%는 장근석과 관련된 상품이 책임진다. 당분간 장근석의 인기는 식지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장근석의 인기는 배용준을 넘어섰을까? 이 질문에 대해 점원은 “아직은 아니다”며 “장근석은 아직 욘사마만큼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지는 않다. 최근 욘사마의 출연작이 없어서 뜸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배용준이 활동을 시작하면 숨어있던 일본 팬들이 대거 드러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콘텐츠 유출을 막아라!
일본에서 한류 콘텐츠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자리매김했다. 분명 콘텐츠를 잘 포장해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콘텐츠가 불법으로 유통되는 것을 막는 것도 못지않게 시급하다.
유명 한류 스타들은 현지 에이전시와 손잡고 보다 전문적인 관리를 받고 있다. 때문에 불법 콘텐츠 유통 방지나 초상권 수호가 수월해졌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CD나 DVD도 철저한 관리 하에 유통되고 있다. 여전히 불법 복제품이 존재하지만 조금씩 환경이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차기 한류 콘텐츠로 급부상한 예능 프로그램 콘텐츠에 대한 보호 노력은 부족하다. 한국에서 본방송이 끝나면 하루 이틀 사이에 복사 CD가 각 한류 상점에 진열된다. 또 다른 상점의 일본인 점원은 “<강심장> <해피 선데이> <무한도전> 등은 일본에서도 인기가 좋다. 때문에 한국에서 방송이 끝난 직후 일본어로 더빙된 CD가 시시각각 공급된다”고 밝혔다.
과거 예능 PD들은 새로운 프로그램 기획을 앞두고 일본으로 출장 가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돌아온다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한류의 발달과 함께 요즘은 예능 분야에서도 역전 현상이 두드러진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는 포맷 수출이 논의됐을 정도다.
하지만 예능과 같은 콘텐츠 수출 및 저작권 보호를 위한 노력은 부족하다. MBC 예능국의 한 PD는 “예능 한류도 신경 써야 할 시점이다. 정식 DVD나 VOD를 통해 유통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쿄=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