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경찰의 대대적인 연예계 비리 수사는 인천지방경찰청, 경기2청 광역수사대, 서울광역수사대 등이 투입돼 140명 검거, 5명 구속이라는 큰 성과를 이뤄냈다. 특히 인천지방경찰청의 수사 내용이 눈길을 끈다. 가요순위검색 인터넷사이트 운영자를 검거했는데 그는 가요 순위표를 조작하고, 조작된 순위표를 위해 선곡표를 허위로 작성하도록 방송국 PD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게다가 가수들로부터 방송 출연 알선 대가로 4억여 원을 받기도 했다.
문제의 가요 순위 사이트는 방송을 모니터링해 순위를 작성하는 사이트로 특히 성인 가요계에서 유명한 곳이다. 한 인기 성인가요 가수 매니저는 “성인가요뿐 아니라 대중가요까지 총 망라한 방송 모니터링 순위 사이트지만 대중가요보다는 성인가요 관계자들이 주로 보는 곳”이라며 “성인가요의 경우 이곳을 제외하면 딱히 순위 사이트가 없고 방송에서도 따로 성인가요 순위를 발표하는 곳이 없어 나름 공신력이 있는 곳이었다”고 설명한다.
실제 해당 사이트를 들여다보니 그 곳은 성인가요계의 메카였다. 각종 돌출 광고와 배너 광고 등이 성인가요계와 연관돼 있었다. 여전히 몇몇 인기 가수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무명인 성인가요계의 현실에선 딱히 광고를 할 공간조차 없을 정도다. 이런 현실을 감안할 때 해당 순위 사이트가 성인가요계에서 얼마나 막강한 파워를 가진 곳인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인기 성인가요 가수 매니저는 “해당 사이트가 사실상 유일한 성인가요 순위를 발표하기 때문에 업계 관계자들은 그곳을 참조할 수밖에 없다”면서 “공중파 라디오 PD들도 이 사이트에서 선곡할 곡을 찾고 밤업소나 지방 행사 관계자들도 그곳 순위를 참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다.
이번 경찰 수사를 통해 해당 사이트 순위표가 조작됐다고 밝혀지면서 성인가요 업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유일하다시피 하던 성인가요 관련 순위가 조작됐다고 알려지면서 해당 사이트의 공신력에 커다란 상처를 입게 된 것. 오히려 “그 사장님이 그럴 분이 아닌 데 뭔가 오해가 있었을 것”이라며 경찰 수사 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는 성인가요 관계자도 있었다.
순위를 조작한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신인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창구였다. 성인가요의 경우 노래 한 곡이 히트하기까지의 기간을 최소 3년으로 보고 있다. 심지어 10년 넘게 인기를 끌지 못하다 뒤늦게 히트곡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홍보할 방법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당 사이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홍보 수단이 된다. 방송 모니터링을 통한 순위인 터라 여기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곧 최근 방송에서 자주 소개됐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이를 보고 공중파 라디오 PD나 작가가 해당 곡을 선곡한다면 손쉽게 공중파를 타고 전국적으로 노래가 소개될 수도 있다.
밤업소나 행사 출연과도 연관이 있다. 해당 사이트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 마치 최근 방송에 많이 소개된 곡으로 알려질 경우 밤업소와 행사 섭외가 늘어나고 출연료 협상에서도 유리해진다.
반면 성인가요 매니저들은 가장 큰 이유가 자존심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 한 매니저는 “노래 순위가 높을수록 관심을 받고, 방송에 출연할 기회도 생기기 때문에 자신이 데리고 있는 가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선 자존심을 걸고 순위를 올리려고 안간힘을 쓴다”라고 설명한다.
이번 경찰 수사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지역공동체 라디오방송국 PD들이 신인가수들에게 금품을 받고 노래를 틀어줬다는 점이다. 지역공동체 라디오방송국은 소위 소출력라디오 방송국이라 불리는데 동네 이름 뒤에 FM을 붙여 ‘○○FM’이라 불리는 곳들이다. 무명 성인가요 가수들의 경우 공중파나 케이블 방송에서 자신들의 노래가 소개되는 것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비교적 접근이 쉬운 소출력 라디오 방송국을 찾아가 앨범을 건네며 곡 소개를 부탁하곤 한다. 소출력 라디오 방송국은 반경 5㎞ 정도를 방송권역으로 정해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공중파 방송국과는 그 차이가 크다. 그렇지만 공중파에서 외면당한 무명의 성인가요 가수들은 유명 소출력 라디오 방송국을 직접 방문해 자신의 노래를 홍보한다. 그런데 이런 일부 소출력 라디오 방송국 PD들이 최소 주 1회에서 최대 일 4회까지를 조건으로 내걸고 신인가수들에게 금품을 받아온 것이 경찰 수사를 통해 적발된 것이다.
성인가요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비리가 성인가요계의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공중파 방송과 언론이 대중가요에 집중하며 성인가요를 외면하는 까닭에 새 앨범이 나와도 홍보 수단이 거의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결국 제한된 영역 안에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어 결국 이런 비리 사건까지 불거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성인가요 가수 매니저는 “MBC에서 <나는 트로트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는데 잘나가는 일부 성인가요 가수가 아닌 무명의 성인가요 가수들에게도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조금이라도 만들어주면 고맙겠다”는 말을 더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