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예조가 축소 개편되면서 가장 먼저 독립한 지부는 가수지부다. 우선 이름만 남아있던 대한가수노동조합이 부활했다. 지난 3월 29일 대한가수노동조합(대가조)은 총회를 갖고 박일준을 4대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박일준 위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노동부에 신고되어 있는 합법적인 가수 노동조합은 우리 대한가수노동조합이 유일하다”고 밝혔다. 대가조는 지난 99년 노동부로부터 설립 인가를 받아 김광진 박일서 정훈희 위원장 등 3대를 거치며 활동해오다 한예조를 중심으로 뭉치면서 명맥이 끊겼었다. 그러다 한예조에서 가수지부를 폐지하면서 박일준 위원장 체제로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가요계의 노조는 이뿐이 아니다. 대가조가 부활한 지 얼마 후 한예조의 가수 지부장이었던 이동기를 중심으로 또 하나의 노조인 한국방송가수노동조합(한가조)가 출범한 것이다. 이에 따라 가요계 노조는 현재 두 개가 됐다. 한가조의 이동기 위원장은 “한예조에서 분리 독립한 만큼 한예조의 정통성을 이어갈 것”이라며 취임 일성을 밝혔다.
양대 가수노조를 대표하는 박일준과 이동기 위원장은 모두 한예조 가수지부장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한예조 마지막 가수지부장 선거에서 맞붙은 전력도 있다. 전직 지부장이었던 이동기가 현직 지부장이었던 박일준에게 도전한 당시 선거에선 이동기가 승리해 지부장으로 선출됐었다.
현재 두 노조는 경쟁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조합원 수에서는 일단 한가조가 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가조는 이동기 위원장을 비롯해 한예조 가수지부 집행부가 대부분 그대로 옮겨온 탓에 기존의 지부 조합원의 상당수를 조합원으로 확보했기 때문이다. 반면 대가조는 (사)대한가수협회(회장 태진아)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며 조합원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6월 가수 김흥국이 MBC에서 삭발까지 감행하며 1인 시위를 벌였을 때 대가조가 이를 적극 후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가수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가 둘이나 된다는 점은 나쁜 일은 아니지만 두 노조 간의 불협화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서로 조합원을 많이 확보하려는 경쟁 등 적잖은 마찰이 예상된다”면서 “게다가 이동기와 박일준 두 위원장이 지난 지부장 선거 이후 껄끄러운 사이로 알려져 있어 주변에서 마음을 못놓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가수 노조가 두 개로 된 결정적인 계기는 한예조의 내부 변화 때문이다. 한예조 내부 변화는 한영수 위원장에게서 비롯됐다. MBC 공채 탤런트로 12대 위원장이 된 한 위원장은 취임하면서 한국방송예술인노동조합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취임 이후엔 모델, 무용, 기술, 효과, 연출, 분장, 미술, 가수 등의 지부를 정리하고 탤런트, 코미디언, 성우, 액션배우, 연극 지부 등으로 조직을 축소 개편했다. 그리고 최근 다시 명칭을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한연조)으로 바꿨다.
그런데 한예조 내부에서는 또 다른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탤런트, 코미디언, 성우, 액션배우, 연극 등 다섯 개 지부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13개의 각기 다른 지부가 모여 한예조로 활동하던 시절과 달리 ‘연기’ 관련 다섯 개 지부만 남은 만큼 지부를 나누지 않고 ‘연기자’로 통합 관리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지부 폐지안은 대의원 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코미디언 지부가 독립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새로운 진통을 겪고 있다.
엄용수 코미디언 지부장은 “코미디언 지부를 없앤다는 지부 폐지안과 통합시도가 알려지면서 원로 코미디언 선배들이 화가 많이 나셨다”면서 “아무리 한연조의 중심이 탤런트라지만 지부가 사라지면 ‘코미디언’이라는 간판도 내려지는 것 아니냐며 상당수의 코미디언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엄용수 지부장은 독립 노조 설립을 준비 중이다. 원로 코미디언들이 강하게 독립 노조 설립을 주장하고 있고 상당수의 코미디언들이 이에 동조하고 있다고 한다. 엄용수 지부장은 “기본적으로 코미디언이 독립노조를 설립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라며 “다만 한연조와 갈등을 일으키며 독립노조를 만들기보단 지금처럼 협력 체제의 큰 틀은 유지할 것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연조 측은 코미디언 지부가 독립 노조를 설립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가수 지부의 독립은 한예조가 연기자 중심의 한연조로 축소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연기자의 일부인 코미디언까지 한연조에서 탈퇴하는 것은 조합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보기 때문. 코미디언 노조 설립을 허용하면 다른 지부들까지 흔들릴 수 있고, 지부들이 제각기 독립한다면 한예조는 사실상 분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항간에선 자칫 코미디언 독립 노조와 한연조 코미디언 지부가 맞서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연조가 코미디언 지부의 명목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지부장 중심으로 코미디언 조합원 탈퇴를 막으려 하고, 엄용수 현 지부장 등이 독립 노조를 설립해 한연조 소속 회원들의 가입을 유도한다면 두 단체 간 조합원 쟁탈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 이렇게 되면 코미디언 노조마저 가수노조처럼 두 개로 분리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엄용수 지부장은 “연예계에서 코미디언들이 가장 단결력이 강한 만큼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이처럼 한예조가 한연조로 탈바꿈하면서 크고 작은 후유증을 앓으며 제 역할을 못하는 동안 한예조가 주도해왔던 출연료 미지급 문제는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연매협)가 대신 이끌고 있다. 그러나 조단역급 배우들의 생계형 권익문제를 연매협이 이끌고 있는 데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연매협은 아무래도 스타들의 권익 보호가 더 우선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