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 등 로맨틱 사극 전연령 호응…19금 드라마도 포문 ‘OTT-지상파 춘추전국시대’
#‘사극 맛집’ 지상파의 저력
2021년 대중의 기억에 남는 지상파 드라마는 손에 꼽을 정도다. SBS ‘펜트하우스’와 ‘모범택시’, KBS ‘연모’, MBC ‘검은 태양’ 정도다. 그래서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을 두고 ‘그들만의 잔치’라는 뼈아픈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연말연시를 거치며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그 중심에는 로맨스 사극이 있다. 준호·이세영을 앞세운 MBC 금토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과 박은빈·로운이 호흡을 맞춘 KBS 2TV 월화드라마 ‘연모’는 사극에 판타지를 입혀 성공에 방점을 찍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전국 시청률 17.4%라는 빼어난 성적표를 받았다.
단순한 수치보다 의미 있는 것은 대중의 반응이다. 군 전역 후 복귀작으로 ‘옷소매 붉은 끝동’을 선택한 준호는 안정적인 사극 연기로 여심을 흔들었다. ‘지상파 드라마=중장년층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깨고 전 연령대의 지지를 받았다.
게다가 ‘옷소매 붉은 끝동’의 라이벌은 이영애가 이끄는 JTBC ‘구경이’, 송혜교와 전지현이 각각 버틴 SBS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와 tvN ‘지리산’이었다. 방송 전까지는 최약체로 분류됐으나 막상 뚜껑을 열자 상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나며 동시간대 1위 자리를 꿰찼다.
12월 중순 방송을 마친 ‘연모’ 역시 2021년 KBS를 대표하는 드라마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글로벌 콘텐츠 순위 차트 플릭스패트롤 기준으로 ‘TV쇼 부문 톱10’에도 포함됐다. 당시 ‘지옥’(1위), ‘오징어 게임’(6위)에 이어 8위에 올라 글로벌 팬심을 자극했다.
두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공교롭게도 아이돌 그룹 출신. 2PM의 준호와 SF9의 로운이다. 긴 기간 가수 활동을 하며 폭넓은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데다 다수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아 안정된 연기력까지 장착하며 폭발력을 얻었다. 이들과 사극이 결합하며 역사적 사건보다는 그 안에 상상력을 덧댄 로맨틱 사극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여기에는 오랜 기간 사극을 제작해오며 쌓인 지상파의 노하우가 단단히 한몫했다.
한 방송 관계자는 “최근 몇몇 사극이 역사 고증 논란에 휩싸이며 뭇매를 맞았다. 게다가 사극은 세트 및 소품 제작 과정에서 현대극에 비해 제작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신생 플랫폼일수록 제작을 꺼리는 편”이라며 “결국 ‘옷소매 붉은 끝동’과 ‘연모’는 성공한 사극을 꾸준히 제작해 온 지상파의 저력과 판타지를 곁들인 매력적인 스토리, 여기에 인지도와 연기력을 두루 갖춘 배우 등 삼박자가 들어맞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수위까지 높이며 정면승부
로맨틱 사극이 종방된 이후에도 지상파의 강세는 이어지고 있다. 프로파일러의 태동기를 다룬 SBS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방송 4회 만에 8%를 돌파했다. 동시간대 방송되는 MBC, 웨이브 동시 편성 드라마 ‘트레이서’의 시청률 또한 7∼8%를 유지하고 있다. 작품의 완성도도 높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지상파 드라마의 선전을 두고 방송가에서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고 평하곤 한다. 지상파 드라마의 위기론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제기됐다. 뻔한 소재에 매몰되며 케이블, 종편, OTT 드라마에 밀렸고 유명 제작사나 배우, 감독들도 지상파 편성을 후순위로 생각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 결과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 주말드라마를 따로 편성하던 지상파는 이런 띠 편성을 하나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주중 미니시리즈가 아예 실종된 기간도 있었다.
그 사이 방송사 드라마국에서 모든 작품을 만들던 체제는 점차 옅어지고, 스튜디오S나 몬스터유니온과 같은 외부 스튜디오 형태로 옮겨갔다. 무조건 내부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다는 자존심도 내려놓았다. 제작사에게 더 많은 권리를 인정해주고, 배우와 작가들의 개런티 역시 현실화하자 점차 능력 있는 이들이 지상파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표현 수위도 달라졌다. 전체 편성 중 몇 회를 ‘19금’(청소년 관람불가)으로 만들며 변화를 시도해왔는데,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아예 19금으로 포문을 열었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 플랫폼의 자극적이고 수위 높은 드라마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다.
하지만 최근의 결과가 장기적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미지수다. 플랫폼의 다양화와 더불어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지며 춘추전국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제 대중은 특정 플랫폼을 선호하기보다는 콘텐츠를 따라 이동하는 유목민과 같은 시청 패턴을 보이고 있다. 재미없으면 채널은 여지없이 돌아간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지상파 3사가 주도권을 쥐던 시절에는 재미가 없어서 채널을 돌려도 선택권이 많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케이블, 종편 채널을 넘어 스마트폰을 붙잡고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쿠팡플레이를 즐기고 유튜브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가는 시대가 됐다”면서 “그럼에도 지상파 입장에서는 최근 성과를 통해 ‘지상파에도 볼 만한 드라마가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만으로도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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