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합동토론회에 참석한 대표경선 출마 후보자들. 오른쪽부터 서청원, 강재섭, 최병렬, 김덕룡, 이재오, 김 형오 의원. 경선을 얼마 남기지 않고 온갖 루머가 떠돌고 있으나 합종연횡 가능성 또한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역대 당내 선거전 중 가장 혼탁한 양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나라당 당권 레이스. 그만큼 수많은 음해성 소문과 상호 비방 그리고 음모론 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선두 자리를 놓고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강재섭 김덕룡 서청원 최병렬 등 유력 주자들 주변에는 근거와는 상관없이 온갖 루머들이 그칠 줄 모르고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당권 레이스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인사는 역시 불출마 선언을 번복한 서청원 전 대표다. 여전히 다른 주자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지만 서 전 대표측은 오히려 “대세론이 확산되는 중”이라며 조심스런 여유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당권 불출마 선언 번복 논란부터 시작해 지금까지도 가장 많은 ‘괴소문’의 포화를 맞고 있는 것이 사실.
서 전 대표를 향한 ‘포화’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대선자금 유용 논란이다. 서 전 대표가 당대표 겸 선대위원장으로서 지난 대선을 총지휘하던 당시 남은 선거자금 중 일부를 빼돌려 자신을 위한 선거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
실제로 다른 당권 주자 진영에선 “서 전 대표가 대선 때 쓰고 남은 돈을 지금 뿌려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력 주자 중 한 명인 최병렬 의원측의 한 인사는 “서 전 대표의 부인이 대의원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며 금품 향응을 제공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밝혔다.
지난 5일 당대표 출마선언 기자회견 자리에서 최 의원측은 서 전 대표측의 대의원들에 대한 금품 향응 제공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최 의원측 한 인사는 “지난 2일 당 선관위에서 당대표 출마 후보자들의 개별적 대의원 접촉을 금지시켰는데 바로 다음날 그런 접대 자리가 있었다더라”고 주장했다.
김덕룡 의원측도 “서 전 대표측이 돈으로 밀어붙인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라며 “조만간에 서 전 대표 진영은 돈 때문에 탈이 날 것이며 금권 선거 사례를 폭로하는 양심 선언 인사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서 전 대표측은 “대선 당시 자금 관계는 후보(이회창 전 총재)와 사무총장(김영일 의원)이 주관했다”며 “당시 서 전 대표는 ‘월급 사장’이나 마찬가지였다”고 밝혔다. 대선자금을 마음대로 집행할 수도 없었던 서 전 대표가 현재 남은 대선자금을 챙겨 사용한다는 의혹은 한마디로 터무니없다는 주장이다.
서 전 대표의 부인을 겨냥한 ‘대의원에 대한 향응 제공 의혹’에 대해 서 전 대표측 인사는 “대의원 접대 자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지난 2일 선관위가 개별 대의원 접촉을 금지시킨 다음날 사모님(서 전 대표 부인)이 부산 지역 대의원들에게 식사를 대접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리 일정에 잡힌 지역 행사라 취소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서 전 대표 부인의 금품 향응 제공 의혹을 제기하는 최 의원측에 대해서 서 전 대표측은 “우리도 최 의원 부인이 대의원들을 접대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되받아치고 있다.
지난 5일 당 선관위 인사들과 당대표직 출마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후보자 부인들의 대의원 접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알려진다.
서 전 대표측 한 관계자는 “당시 서 전 대표가 기자들을 물린 자리에서 최 의원 부인의 대의원 접대에 대해 제보가 들어온 내용을 최 의원에게 밝히자 최 의원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더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최 의원측 관계자는 “말도 안되는 얘기”라며 “지난 2일 선관위 결정 이후 우리는 대의원 접촉을 따로 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서 전 대표 진영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 전 대표와 최 의원 간의 이 같은 신경전은 당내 인사 영입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진영에서 조직책을 맡았던 이성희 전 특보가 서 전 대표측 일을 돕다가 얼마 전 짐을 꾸려 최 의원측 캠프로 옮긴 것이 당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이에 대해 서 전 대표측 관계자는 “내부적 갈등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컨셉트가 달라 이 전 특보 본인이 스스로 짐을 꾸리게 된 것”이라 전한다.
이 관계자는 “우리 조직은 서 전 대표의 개인적 지연과 학연 그리고 보좌진들의 여러 인맥 등을 기반으로 오래 전부터 쌓아온 인간적인 연결고리가 두텁다. 이 전 특보는 대선 당시 대통령 후보를 모신 입장에서 자금 집행이나 인력 차출에 대한 생각이 우리와 달랐다. 지방조직과도 마찰을 빚었다. 한마디로 우리와 맞지 않아서 본인 스스로 할 일을 찾지 못해 나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반목을 거듭하는 서 전 대표측과 최 의원측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광경을 볼 수도 있다. ‘보이지 않는 손’이 한나라당 당권 경쟁에 스며들고 있다는 일종의 ‘음모론’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 음모론은 최근 급부상한 김덕룡 의원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김 의원측은 오히려 이런 반응이 즐겁다(?)는 표정이다. 최근 한나라당 내에서 가장 표정이 밝아진 인사를 거론하라면 당내 인사들이 주저 없이 김덕룡 의원을 꼽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몇몇 언론사에서 행한 ‘한나라당 차세대 리더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김 의원이 1위로 나왔기 때문.
다른 후보들은 “한나라당 당권 향배를 묻는데 실제 투표인단인 대의원들이 아닌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1위는 의미가 없다”며 김 의원의 부상을 ‘평가절하’하고 있다.
오히려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서 김 의원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고 또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련의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 게 아닌가”라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훗날 김 의원이 탈당을 해서 여권 신당에 합류하더라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탈당 명분을 만들어주려 여권 일각에서 영향을 끼쳤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김 의원측은 ‘음모론’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한층 고무된 분위기다. 김 의원측 한 핵심 인사는 “김 의원이 뜨는 바람에 그동안 무미건조했던 한나라당 당권 경쟁에 재미가 붙었다. 언론도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운전중에 한 일간지 기자와 통화를 하다가 김 의원이 여론조사 1위를 했다는 말에 벅차고 흥분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고 밝힐 정도다.
한편 정가에선 한나라당 당권 경쟁 말미를 한층 달아오르게 만들 화두로 ‘합종연횡설’을 꼽는다. 현재의 박빙구도를 벗어나 어느 정도 우열이 드러나게 되면 선두 주자에 대한 반대 연합전선이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초 합종연횡 가능성은 김덕룡 의원이 처음 언급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가장 주목받게 된 인사는 바로 강재섭 의원이다. 다른 유력주자들에 비해 비교적 젊은 데다 대구·경북(TK)권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강 의원을 연합 파트너로 받아들인다면 선두 주자를 쉽게 추월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이에 대해 강 의원측은 “현재까지 합종연횡에 대한 제의도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응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단호하게 입장을 밝혔다.
강 의원측은 “우리는 차기 대권 후보를 염두에 두고 이 당권 경쟁에 참여한 것이며 설사 1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당원들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당대표 선거에서 패하는 주자들은 향후 지역구 보존도 힘들 정도의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며 “상당수 후보들이 최후의 안전판이 필요한 상황이라 후보간 연대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모든 후보들이 정치적 명운을 걸고 싸우는 만큼 한 후보가 앞서 나가게 되면 대표직과 원내총무직 그리고 정책위의장직을 나눠 갖는 식의 ‘합종연횡’ 물밑 시도가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