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7년 김영삼 전 대통령 자택을 찾아 큰절을 올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홍준표 의원. 국회사진기자단 |
“왜지금 출간됐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노태우 회고록>이 공개된 후 대부분의 정치권 인사들은 그 ‘시기’에 주목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수년 전 초안이 완성됐다는 회고록을 노 전 대통령 측이 왜 최근 ‘전격적으로’ 펴냈는지 시선이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사정기관의 한 고위 인사는 “담겨 있는 내용을 감안했을 때 (노 전 대통령 측이) 사전에 파장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을 ‘적기’로 판단한 이유가 궁금해진다”고 말했다.
또한 몸도 추스르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 누가 회고록 출간을 주도했는지도 ‘관심사’다. 이는 출간 시기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은 “올해 팔순을 기념해 출간한 것일 뿐이다. 김옥숙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의 뜻이기도 하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YS에게 건네준 대선자금이 부각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한 5공 인사는 “언론에서 그쪽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맞추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회고록 전체를 봐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기록을 남기는 데 주안점을 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의도 정가에선 이번 노 전 대통령 회고록에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해석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노 전 대통령 측이) YS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회고록에서 YS에 대한 평도 나쁘게 내리고 있다”면서 “그렇게 도와줬는데도 자신을 구속시켰던 YS에게 섭섭한 감정을 전달하고자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포함해 YS계로 꼽히는 몇몇 정치인들이 내년 총선 출마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것과 연관 지어 바라보기도 한다. 벌써부터 민주당은 “한나라당은 YS와 함께 진실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 사실이라면 비자금을 국가에 되돌려 놓아야 할 것”이라며 공세를 가하고 있다. YS 라인들이 내년 총선에 나와 이 문제가 정치 쟁점화 될 경우 당락에 변수가 될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노 전 대통령 측에 따르면 이번 회고록 출간은 아들 재헌 씨가 깊숙이 관여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던 5공 인사는 “(재헌 씨가) 정치할 것도 아니고…. 단지 아버지가 생존해 있을 때 최소한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 의도라면 의도일 수 있다. 6·29선언처럼 평가받아야 할 부분도 있지 않느냐. 그러기 위해선 비자금 문제 등 민감한 부분도 담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재헌 씨는 노 전 대통령이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되던 지난 1996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92년 대선 때 노 전 대통령이 김영삼 민자당 후보에게 쓸 만큼 줬다”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청와대가 발끈하자 재헌 씨는 “수감 중인 아버지가 축재 차원에서 비자금을 마련한 파렴치범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재계에선 노 전 대통령 사돈그룹 SK가 회고록 출간으로 수혜를 받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은 최태원 회장 친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의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해 수사하고 있다. 지난 5월 주가조작으로 구속된 B 사 김 아무개 대표가 가지고 있던 수표 175억 원 중 120억 원이 최 부회장 돈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금 성격을 쫓고 있는 것. 또한 SK건설이 시행사를 통해 조성한 석연치 않은 자금이 최 부회장에게로 흘러 들어갔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이름이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중 일부를 최 부회장이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검찰도 이 부분에 대해 은밀히 확인 작업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이번 회고록에서 노 전 대통령이 YS에게 거액의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여권 핵심부 역시 검찰의 SK 수사를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YS를 통해 정치권에 입문한 ‘YS 키즈(KIDS)’가 현 이명박 정부 요직에 포진해있기 때문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이재오 특임장관, 김문수 지사, 안상수 전 한나라당 대표, 등이 대표적인 ‘YS 키즈’들이고 핵심측근으로는 김덕룡 국민통합특별보좌관이 있다.
회고록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입방아에 오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겐 검찰 수사가 부담으로 다가올 듯하다. 따라서 SK에 대한 검찰 수사 강도가 약해질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SK그룹으로선 뜻하지 않게 회고록 출간의 ‘효과’를 누릴 수도 있게 된 셈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노태우-YS 녹음테이프 있다던데… “자신 있으면 공개해보든가”
노태우 전 대통령 회고록이 출간된 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YS 차남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에게로 쏠렸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지방에서 보내고 있는 김 부소장과 간단한 전화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중 주요부분을 간추린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YS에게 3000억 원을 줬다고 했다. 어떤 입장인지.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사실관계가 다르다.
―(사실 관계가 다르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대선 자금을 당을 통해서가 아닌 후보에게 전달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뜻이다.
―청와대 금고에 100억 원을 넣어 놓고 갔다는 내용이 있다.
▲사실이 아니다.
―박철언 전 장관이 노 전 대통령과 YS가 나눈 대화 녹음테이프를 공개한다고 했다.
▲자신 있으면 공개해보든가.
―이번 회고록 출간에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보는가.
▲20년도 더 된 일을 왜 이제 와서 다시 꺼내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긴 하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