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시즌이 한창이지만 출근 도장을 매일 찍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휴가 없이 일하는 것도 서러운데 폭우와 찌는 더위까지 참아내야 한다. 일단 대형 건물 실내 적정온도 제한으로 에어컨을 수시로 끄거나 온도를 높이는 곳이 많아졌다. 큰 건물이 아닐지라도 에너지 절약을 외치는 사장님 때문에 마음껏 냉방기기를 사용하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외근이 많은 직장인들은 더 고역이다. 8월의 폭염은 이들을 더욱 지치게 한다. 한여름 사무실 풍경을 들여다봤다.
여름철이 가장 곤혹스런 직장인들 중 하나가 ‘신입’이다. 옷차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들은 한여름에도 정장 스타일을 고수해야 할 때가 많다. 기계장비 회사에 근무하는 K 씨(29)는 입사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올 여름 휴가도 없이 업무 파악에 집중하고 있다. 영업부서라 주로 사무실보다는 외부 거래처를 돌아다닌다.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오면서 그의 고통이 시작됐다.
“신입에다 영업팀이니 늘 정장을 입고 다닙니다. 넥타이까지 매고 거래처 몇 군데만 돌아도 등이 축축해요. 옷이 쩍쩍 달라붙는 느낌 때문에 참을 수가 없습니다. 생각 끝에 차에다 여분의 러닝셔츠랑 수건, 세안도구를 갖다놨습니다. 거래처 돌다가 못 참겠다 싶으면 화장실에 가서 반 샤워를 하죠. 웃통 벗고 찬물로 세수하고 수건 적셔서 등이랑 배도 닦고요.”
교육관련 업체에 근무하는 S 씨(여·25)도 ‘신입 고행’을 하고 있다. 갓 입사한 상태라 역시 휴가를 가지 못하고 일한다. 그는 사무실에서 꽉 끼는 정장 치마에 답답한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하이라이트는 스타킹이다.
“신입사원 지침에 복장 규정이 있더라고요. 일일이 검사하진 않겠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 하잖아요. 정장까지는 어떻게 참겠는데 한여름에 스타킹은 정말 힘드네요. 치마도 끼는데 스타킹의 허리 고무 밴드가 배를 압박해서 더 덥거든요. 출퇴근할 때는 벗고 다니다가 회사 건물에 들어가기 전 지하철 화장실에서 신고 들어갑니다. 하루 종일 옷 때문에 불편한 자세로 일하다보면 진땀이 난다니까요. 친구 회사는 짧은 반바지에 슬리퍼 신어도 뭐라 하는 사람 없다는데 부러울 따름이죠.”
물류회사에 다니는 H 씨(여·38)는 휴가가 없다. 부모님 생일 때 가족여행으로 휴가를 5월에 당겨쓰는 바람에 한여름 더위를 사무실에서 견뎌야 한다. 이젠 조금만 더워도 지치고 허해져서 일에 집중이 안 된다고.
“아침에 복잡한 지하철을 탈 때부터 더위가 시작되는데 사무실에 오면 오전에 반짝 에어컨을 틀고 말아요. 오후에는 외부에 나가는 직원이 많아서 사람이 별로 없거든요. 컴퓨터에 연결하는 미니 선풍기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얼굴 쪽만 살짝 바람이 와서 큰 효과는 없어요. 점심 먹고 오후 3시쯤 되면 더위 때문에 몸이 축 늘어지죠. 기운도 없고 해서 먹는 걸로 이겨보려고 여름 더위 나는데 좋다는 양파 즙을 먹고 있어요. 사무실 냉장고에 시원하게 쟁여놨다가 오후에 마시면 더위가 좀 가시는 것 같더라고요.”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L 씨(39)도 “잘 먹어야 더위를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업무가 많아 휴가를 못 가는 그는 최근 공공기관 에너지 절약 방침으로 더위와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다. 동료들은 각자 나름대로 여러 가지 방법을 강구하지만 L 씨는 퇴근 후 몸에 좋은 보양식으로 더위에 축 난 몸을 달랜다.
“사무실 근처에 맛있다는 보양식 집은 다 순회했죠. 요새는 꽤 멀리까지도 갑니다. 땀 흘리면서 보양식 먹을 때 몸은 덥지만 먹고 나서 기운이 좀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먹습니다. 보통은 복날에만 먹지만 저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먹으러 가요. 따로 약을 먹거나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먹는 거라도 잘 먹어야지, 더위에 지쳐서 사무실에서는 집중도 잘 안되더라고요.”
젊은 직장인들은 더위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인터넷을 통해 더위 탈출에 도움이 되는 각종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는 W 씨(여·28)는 밀린 일 때문에 휴가를 가을로 미뤘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있어야 하는 그의 여름나기 전략을 소개한다.
“에어컨을 틀었을 때도 엉덩이 쪽은 더울 때가 많아요. 그런데 온라인 쇼핑몰에 알아보니 시원한 방석을 팔더라고요. 깔고 앉기만 하면 시원해진다고 해서 구입했어요. 특수 냉매가 방석 안에 들어있어서 엉덩이가 시원하더라고요. 한 20~30분 지나고 미지근해지면 냉장고에 잠시 넣어두거나 그늘진 데 두면 다시 차가워져요. 냉매가 들어있는 아이스 스카프는 목이랑 손목에 두르고 ‘쿨방석’을 깔고 미니 선풍기를 틀어서 중무장을 하면 더위가 얼추 가시네요.”
건설회사에 다니는 J 씨(32)는 역시 일 때문에 휴가를 미뤘다. 그러나 지금은 나중에 일이 밀려 고생하더라도 휴가를 신청했어야 한다고 후회하고 있다. 일주일라도 한창 더울 때 사무실에 없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나 주변 사람들을 위해서도 더 나은 것 같단다.
“제가 유난히 땀이 많은 편이어서 매일 잘 씻고 신경을 쓰는 편이에요. 하루는 아침에 출근했는데 동료 여직원이 땀 냄새 난다고 면박을 주더라고요. 가벼운 농담이었는데 좀 충격 받아서 그 뒤로 조금만 더워지면 조심스러워집니다. 회사에서 샤워를 할 순 없어서 고민 끝에 사무실 책상에 물티슈나 방향제, 뿌리는 섬유유연제 등 각종 ‘장비’들을 가져다 놓고 수시로 사용해요.”
통신관련 업체에 근무하는 O 씨(30)는 사무실에 앉아있으면 에어컨이 무용지물이라 더위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막내라 에어컨 사각지대에 책상이 자리 잡고 있다. 냉방기기의 혜택을 보는 사람은 추워서 얇은 겉옷을 입고 있는 반면 O 씨는 더워서 땀을 흘린다.
“회사 장비에다 컴퓨터까지 사람이 없어도 열 내는 기계들로 가득이거든요. 여기에 사람까지 있어요. 에어컨 가까이 있는 직원들은 춥다고 온도도 못 내리게 하고요. 심지어 저는 더워 죽겠는데 에어컨을 꺼버립니다. 책상에 앉아서 부채질하다보면 더 더워요. 더위에 대처하는 방법이란 게 별거 없습니다. 그저 참아야죠. 엉덩이 붙이기 무섭게 물 계속 떠다 먹고, 화장실 갈 때마다 세수하고, 손수건 적셔서 목에 두르고 책상 아래로 신발 벗고 있는 거죠.”
휴가를 잊은 직장인의 한여름나기 비책. O 씨의 말처럼 그저 버티는 게 상책인 듯싶다. 무더위, 제 아무리 길어봐야 이제 한 달도 안 남았다.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