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중훈쇼>는 4개월 만에 막을 내렸지만 게스트들은 화려했다. 위 사진은 <박중훈쇼>에 출연한 김태희. |
섭외의 가장 큰 원동력은 ‘인맥’이다. 얼마 전 여배우 특집과 조연배우 특집으로 화제를 모은 KBS 2TV <해피선데이>의 ‘1박2일’. 지난해 12월에는 ‘6대 광역시 특집’을 선보이며 양준혁 이종범 이대호 등을 카메라 앞에 세웠다. 각 지역 프로구단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섭외한 셈이다.
이들의 섭외는 제작진이 사전에 조율한 것이 아니다. 모두 현장에서 멤버들의 인맥을 통해 직접 이뤄졌다. 12월은 프로야구 경기가 없기 때문에 가능한 섭외였다. ‘1박2일’의 관계자는 “‘여배우 특집’과 같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지 않는다면 제작진이 별도로 게스트를 섭외하지 않는 편이다. 멤버들의 재량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뤄지곤 한다”고 말했다.
인맥이 좋아 MC로 발탁되는 경우도 많다. 배우 박중훈 김승우 공형진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8년 12월 야심차게 시작된 <박중훈쇼, 대한민국 일요일밤>은 4개월 만에 막을 내렸지만 게스트의 면면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장동건 정우성 김태희 등 작품 밖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이들이 대거 출연했다. 제작진의 노림수였고, 박중훈은 기대에 부응했다.
박중훈의 황금 인맥은 올해 초 그의 집에서 열린 신년회를 통해서 새삼 확인됐다. 이 자리에는 안성기를 필두로 장동건 현빈 정준호 고수 유지태 황정민 등 총 13명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모였다. 한 방송 관계자는 “토크쇼의 생명은 게스트다. <박중훈쇼>는 실패로 끝났지만 여전히 그를 MC로 점찍고 있는 PD들이 많은 이유다”고 설명했다.
유명 배우들이 대거 속한 연예인 야구팀 플레이보이즈의 멤버이기도 한 김승우와 공형진 역시 연예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마당발’이다. 공형진은 자신이 진행을 맡고 있는 케이블채널 tvN <택시>의 녹화에 장동건을 참여시켰다. 올해 초에는 드라마 <시크릿가든>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현빈을 택시에 태웠다. 입대를 코앞에 두고 있던 현빈은 예능 프로그램 가운데 유일하게 <택시>에만 출연했다. <택시>가 케이블채널 프로그램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모두 공형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tvN 관계자는 “공형진은 입담도 뛰어나지만 섭외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장동건과 친분이 두터워 ‘장동건을 움직이는 사나이’로 불리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의외의 인물이 섭외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지난해 12월 MBC 예능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시청률 대박을 낸 ‘이장희편’이 대표적이다. 울릉도에서 더덕을 키우며 살고 있는 이장희는 지난해 조영남 송창식 등이 MBC <놀러와>의 ‘세시봉 친구들’ 편에 출연할 때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그를 움직인 주인공은 MBC 기자이자 현재 홍보국장을 맡고 있는 이진숙 국장이다.
이진숙 국장의 남편은 이장희와 절친한 사이다. 그는 이장희를 섭외하기 위해 제작진이 울릉도를 찾을 때도 동행했다. 제작진의 출연요청을 연신 고사하던 이장희도 먼 길을 찾아온 친구 아내의 부탁까지는 거절하지 못했다.
프로그램 제작진의 눈물겨운 노력이 ‘대어’를 낚기도 한다. 화제를 모았던 ‘1박2일’의 여배우 특집은 오랜 기간 각 여배우들에게 공을 들인 제작진의 노고가 가득 담겼다. 멤버 대부분이 개그맨 혹은 가수인지라 톱여배우들과 개인적 친분을 가진 이도 드물었다. ‘1박2일’의 또 다른 관계자는 “엄태웅과 직접 연관이 있는 배우는 같은 소속사에 속한 서우 정도였다. 김하늘 최지우 김수미 등은 제작진이 삼고초려한 끝에 출연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무릎팍도사’의 산악인 엄홍길 섭외 과정도 극적이었다. 당시 연출을 맡았던 임정아 PD는 무작정 히말라야 베이스캠프로 전화를 걸어 섭외를 시도했다. 통신 상태가 좋지 않은 터라 제작진이 “‘무릎팍도사’ 팀이다”고 밝히자 “도사가 왜 전화했냐”는 엄홍길의 답변이 돌아왔다. 긴 대화가 어려운 상황에서 제작진은 “가겠다”고 통보한 후 네팔행 비행기를 탔다. 결국 제작진은 히말라야 8000m 16좌를 완등하고 베이스캠프에 내려온 엄홍길과 만날 수 있었다. 예능 출연을 꺼렸지만 네팔까지 날아온 제작진을 보며 엄홍길도 어쩔 수 없었다는 후문.
고수(高手)를 섭외할 때는 제작진도 고수가 돼야 한다. 얕은 수를 갖고 접근했다가는 큰코 다치기 십상이다. 제작진이 자신의 이야기를 잘 풀어줄 만한 깜냥이 없다고 느끼면 여지없이 ‘퇴짜’다. ‘무릎팍도사’ 제작진은 황석영, 이외수 작가를 섭외하러 갈 때는 그들이 쓴 책을 모조리 섭렵했다. 황석영 작가는 그에 대해 완벽히 공부를 마친 담당 PD가 세 차례쯤 찾아갔을 때 비로소 ‘무슨 고민을 들고 나가면 될까’라고 물으며 출연 제의를 받아들였다.
방송 출연이 드문 안철수 교수를 섭외할 때는 괜한 부담을 줄까 걱정돼 “시간 되실 때 스튜디오에 한번 들르시겠냐”고 지나가는 인사처럼 한마디를 건네면서 눈치를 살폈다. 안 교수는 곧바로 스튜디오로 찾아와 ‘무릎팍도사’ 녹화를 구경하고 돌아갔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섭외가 이뤄졌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