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2억 원을 줬다”고 스스로 밝힌 뒤 사흘째인 8월 31일 오전 반나절 휴가를 내고 오후에 출근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곪을 대로 곪은 선거 뒷거래 관행이 드디어 터진 것이다.”
곽노현 교육감 사태를 지켜본 사정당국의 한 고위관계자가 던진 말이다. 최근 기자와 만난 이 관계자는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교육계에서도 과거 선거 때마다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검은 뒷거래가 관행처럼 이뤄져 왔던 게 사실”이라며 “검찰 수사 추이에 따라서는 교육계 전체가 선거비리 사건에 휩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검은 뒷거래는 어떤 식으로 이뤄지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정치권과 마찬가지로 주로 지분이나 선거비용을 보전해주는 명목으로 거액의 돈을 건네는 방식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곽 교육감도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박 교수와 검은 뒷거래를 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6·2교육감선거 당시 곽 교육감 측과 박 교수 측이 △7억 원을 주겠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도록 하겠다 △서울교육발전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하겠다 △서울교대 총장 출마시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한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곽 교육감은 당선 후 박 교수에게 교육발전자문위원장 자리 대신 부위원장 자리를 줬다. 또 7억 원의 전달 방식과 관련해서도 ‘후보 사퇴 일주일 내에 1억 5000만 원을 주고, 나머지는 2010년 8월까지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화가 난 박 교수 측은 지난해 10월 두 사람 간의 약속이 적힌 문건을 곽 교육감 측에 전달했고, 당황한 곽 교육감이 박 교수에게 돈을 건네기 시작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실제로 검찰 수사결과 곽 교육감은 올해 2∼4월까지 박 교수에게 2억 원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에 따르면 곽 교육감은 박 교수가 미국 연수를 다녀온 직후인 지난 2월 19일부터 4월 8일까지 친구 강 아무개 교수를 통해 박 교수 동생에게 2억 원을 전달했다. 박 교수 동생은 이 돈을 처남 부부에게 건넸다가 다시 자기 계좌로 돌려받아 형에게 건넸다. 곽 교육감→강 교수→박 교수 동생→처남 부부→박 교수 동생→박 교수로 돈이 세탁된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곽 교육감도 이를 시인한 상태다. 검찰은 곽 교육감이 나머지 5억 원은 연말까지 박 교수에게 건네기로 했다는 정황도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계 일각에서는 박 교수 측이 단일화 조건으로 너무 무리한 지분을 요구했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단일화에 따른 구체적인 지분은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박 교수 측이 곽 교육감 취임 이후 교육계 주요 인사 때마다 핵심 요직에 ‘자기 사람’을 임명해 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단일화 과정 및 당선 이후 여러 가지 정황에 미뤄 곽 교육감과 박 교수가 모종의 검은 뒷거래를 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곽 교육감은 박 교수에게 전달된 2억 원의 성격에 대해 ‘순수한 선의’에 따른 것이라며 대가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검찰은 단일화와 맞물린 검은 뒷거래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지난달 29일 박 교수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 검찰은 31일 곽 교육감의 부인을 참고인 자격으로 소환조사한 데 이어 곽 교육감도 조만간 소환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곽 교육감의 부인 정 아무개 씨를 상대로 박 교수에게 건너간 자금의 출처와 마련 경위, 대가성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돈을 받은 박 교수가 혐의 사실을 대부분 실토한 만큼 곽 교육감에 대한 사법처리를 자신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이번 곽 교육감 사건을 계기로 지난 6·2 지방선거 때 단행된 진보진영의 후보단일화 과정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교육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곽 교육감 측이 박 교수 외에도 1차 단일화 대상이었던 이부영·최홍이 서울시 교육위원에게도 지분이나 돈을 건넸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은밀히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찰은 또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선거 당시 후보단일화를 통해 당선된 교육감에 대한 수사 여부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전국 첫 동시 교육감선거에서 진보성향 후보들은 전국 16개 시도 중 서울 경기 강원 광주 전남 전북 등 6곳에서 후보단일화를 통해 진보교육감 시대를 열었다. 6곳 중 경기도는 아예 경쟁자가 없어 진보진영의 김상곤 후보가 단일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서울을 비롯한 나머지 5곳은 치열한 단일화 과정을 거쳐 진보진영 단일후보가 결정됐고, 이들 단일후보들이 모두 당선되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따라서 검찰은 곽 교육감의 사례처럼 전국 교육감선거 때 진보진영 단일후보를 이뤄낸 후보들 간에 검은 뒷거래가 오갔을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곽 교육감의 비리 정황이 드러난 만큼 우선 곽 교육감의 혐의 입증에 주력할 것이나 박 교수 외에 단일화를 이룬 다른 후보들과의 금전관계도 은밀히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곽 교육감이 사법처리될 경우 수사 칼날은 자연스럽게 전국 시·도 교육감들을 겨냥할 것이고, 그중 단일화로 당선된 진보진영 교육감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귀띔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검찰이 교육감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선거비리 혐의 외에도 일부 교육감들의 개인비리 혐의를 포착하고 내사에 돌입했다는 얘기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 6·2지방선거 때 당선된 일부 교육감들이 법정 한도액이 넘는 선거비용을 지출하고 허위·부실신고 한 정황을 잡고 내사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교육계는 지난 2009년 10월 공직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대법원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고 불명예 퇴진한 전례를 상기하며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공 전 교육감에 이어 곽 교육감이 비리 혐의로 퇴진할 경우 그 후폭풍은 교육계 전체로 확산돼 그야말로 패닉상태로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의 사법처리 의지와 맞서 곽 교육감은 후보매수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며 법정투쟁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는 9월 1일 직원 월례조회 연설에서 “저는 이미 총체적 진실을 이야기했다. 더욱 막중한 책임감과 신중함으로 교육감직 수행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사퇴 압박 및 검찰 수사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교육감직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과연 교육계는 물론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곽 교육감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검찰의 수사 추이와 맞물려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