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측은 즉각 ‘방사선 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반박 성명을 내고 영국 FSA에 해명서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영국이 농심 제품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다는 일부 보도내용에 대해 영국대사관측은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 적이 없다”며 “제품의 재료가 방사선 처리됐다고 포장지에 명시되기만 하면 언제든지 판매를 재개할 수 있다”고 뒤늦게 밝혔다. 그러나 농심측은 방사선 처리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며 이 문제의 조기 매듭과 영국 현지 판매 재개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 문제의 핵심 키워드는 ‘농심이 방사선 처리를 했느냐 안했느냐’로 볼 수 있다. 영국 FSA에 내용 증명서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농심측은 ‘방사선 처리 의혹’에 대해 강한 손사래를 치고 있다. 농심측 관계자는 “방사선 처리한 제품은 절대 없다”며 “영국측에 해명서를 보내면 즉각 현지 판매가 재개될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농심이 방사선 처리 논란으로 이런 일을 겪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독일 보건당국은 지난 1월과 3월, 5월 세 차례에 걸쳐 농심이 제품에 방사선 처리 표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거 조치를 내렸던 바 있다. 농심은 그 때마다 ‘방사선 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증명서를 만들어 독일에 보냈고 현재는 정상적인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에 앞서 지난 2003년엔 스위스에서 같은 이유로 농심 제품 수거 조치가 이뤄졌으며 스위스에선 아직까지 농심 제품이 유통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농심 관계자는 “제품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독일에선 판매가 다시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며 “스위스에 대한 수출 규모는 미세했기 때문에 증명서를 보내는 것 같은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농심측 해명대로라면 농심 제품엔 전혀 하자가 없는데 유럽에서 계속 트집을 잡는 셈이 된다. 이에 대해 농심 관계자는 “유럽의 식품 관련 규정이 무척 까다롭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부분이 발견되면 곧바로 경보를 내고 수거조치를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국내 업계 일각에선 유럽국가들이 자사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산 제품에 대해 ‘깐깐하게’군다고 보기도 한다.
농심측이 유럽에 보내는 증명서가 설득력을 갖는다 해도 농심의 대응과정에 논란의 소지가 남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스위스 수출품 물량이 적다해도 방사선 처리를 했다는 현지의 주장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은 점이나 독일에서 똑같은 내용의 수거조치를 여러 차례 겪은 점 등은 농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게 한다.
이번 영국 FSA의 수거 조치 이후 농심 제품 국내 판매율이 감소하고 농심 주가도 떨어졌다. ‘방사선 처리를 안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온 농심측이 결국 영국 당국의 조치로 인해 손실을 입은 셈이다.
이번 파문은 농심 제품 수입업체인 영국 ‘G Costa & Com pany’라는 회사가 농심이 방사선 처리한 원료를 제품에 사용하고도 포장지에 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세워 일부 농심 제품을 시장에서 수거한 것 때문에 영국 FSA가 식품 경보를 발동해 일어난 일이다. 만약 농심이 방사선 처리를 하지 않았다는 증명서를 보낼 수 있다면 손해 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을 ‘G Costa & Company’측에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농심측은 영국 당국에 증명서를 보내는 것 외에 별도의 조치를 취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농심 관계자는 “해마다 영국에 수출하는 물량이 10억원대 정도다. 거대 물량 공급처는 아니지만 영국 시장 관리 측면에서 영국 당국과 크게 부딪치고 싶지 않다”는 소극적 견해를 내놓았다.
한편 이번 문제는 단순히 농심 제품의 방사선 처리 진실공방 차원을 넘어서 국내 제품의 방사선 처리 전반에 대한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 유통되는 일부 식품에 대한 방사선 처리 문제에 대한 비판여론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제품들에 대한 일정 수준 이하의 방사선 처리는 허용돼 있는 상태다. 80년대 세계보건기구 등에서 10킬로그레이(kGy) 이하로 방사선 처리하는 것은 안전하다고 공표했기 때문이다. 즉,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이다. 방사선 처리는 식품의 부패방지나 발아억제를 위해 일정기간 방사선 에너지를 쪼이는 것이다.
이번 농심 제품 파문 주역인 영국을 비롯한 상당수 유럽 국가들도 식품에 대한 방사선 처리를 금지한 것은 아니다. 다만 방사선 처리를 했을 경우 이를 표기하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완제품 전체를 방사선 처리하지 않았더라도 방사선 처리한 원료가 일부 포함돼 있다면 이를 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국내 규정은 다소 관대한 편이다. 소비자보호원과 식품의약품안정청에 따르면 완제품에 방사선 처리를 했을 경우엔 표기를 해야하지만 일부 원료에 10킬로그레이 이하 방사선 처리를 했을 경우에 대한 강제표시규정은 없는 상태다. 방사선 처리가 인체에 유해한가 여부를 떠나 선진국에 비해 소비자의 ‘알 권리’가 충족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일부 소비자 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의 김재옥 회장은 “방사선 처리 표시가 의무화돼 있지 않기 때문에 방사선 처리된 재료가 들어간 식품이 국내 시장에 돌아다니고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경미한 방사선 처리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의견에 대해 김 회장은 “광우병 걸린 소 먹는다고 다 병 걸리는 것 아니다. 변이가 된 음식이 어떤 특이체질을 만나 어떻게 질병으로 발전할지 모르는 법이다. 모든 제품에 방사선 처리 표시를 해놓고 소비자들이 ‘알고 먹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