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후 강진 발생 ‘섬뜩’, 신냉전 돌입 전조·코로나 진정 길조 해석 난무…구미호 코스프레 등 뜻밖 관광 효과도
살생석은 도치기현 나스마치 고원지대에 있는 거대한 돌이다. “구미호가 봉인된 곳”이라는 전설로 유명한 돌이기도 하다. 1957년에는 도치기현 문화재, 2014년에는 국가 지정 명승(名勝)으로 등재돼 마을의 관광명소로서 각광을 받아왔다.
전설에 따르면, 일본 헤이안시대(9~12세기) 말기 구미호가 아름다운 여인으로 둔갑해 도바 상황(鳥羽上皇)을 해치려 했다. 그러나 음양사에게 간파당했고, 구미호는 살해된 뒤 돌에 봉인되고 말았다. 때마침 인근 일대에서는 화산가스가 분출돼 수많은 새와 동물들이 죽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마을 사람들은 ‘구미호가 내뿜는 독기 때문’이라고 믿어 ‘살생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같은 전설은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어 해마다 구미호의 혼을 달래는 위령제도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살생석이 깨졌다”는 소식은 3월 5일 밤부터 급속히 일본 SNS(소셜미디어)에 확산됐다. 한 관광객이 “봐서는 안 될 걸 봐버렸다”며 트위터에 사진을 올린 게 계기였다. 바위는 두 동강이 나 있었고, 주술적 의미로 둘러둔 밧줄도 풀어진 상태였다. 나스마치 관광협회에 의하면 “살생석은 3월 4일 밤에서 5일 사이 자연스럽게 깨진 것”으로 보인다. 협회 측은 “이전부터 금이 가 있는 상태라 스며든 물이 얼어서 깨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SNS 상에서는 “돌이 깨졌으니 구미호의 봉인이 풀린 게 아니냐” “어쨌든 불길한 징조 같다”는 등등의 글이 잇따랐다. 또한 “최근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라 더욱 무섭다”는 의견도 있었다. 실제로 돌이 깨지고 10일 후 나스 북쪽 해역에서는 규모 7.3 강진이 발생해 3명이 숨진 바 있다.
진귀한 돌멩이를 향한 관심은 해외에서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여러 매체들이 “이른바 ‘킬링스톤(Killing Stone)’이라 불리는 일본의 돌이 깨졌다”며 관련 소식을 전했다. 특히 뉴욕타임스는 ‘재난의 전조인가, 길조인가’라는 제목을 통해 “세상이 혼란스러운 지금, 일본의 숲에서 풀려나온 구미호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럿거스대학의 일본사 교수인 닉 카푸르는 “이처럼 깨진 돌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불안한 현재를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언급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우크라이나의 전쟁, 잇따른 지진 발생 등 전 세계가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왜 하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즈음, 살생석이 깨지면서 음모론이 함께 생겨났다는 분석이다.
그 가운데는, 돌이 깨진 날짜인 ‘3월 5일’에 주목하는 이들도 있다. 공교롭게도 76년 전, 1946년 3월 5일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연설에서 ‘철의 장막’을 언급한 날이기도 하다. 역사학자들은 이 연설을 계기로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진영과 소련의 공산진영이 대립한 ‘냉전시대’가 공식적으로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음모론자들은 “3월 5일에 살생석이 깨진 것은 우크라이나의 위기로 다시금 세계가 ‘신냉전’에 돌입한다는 전조”라는 가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반대로 “돌이 깨졌기 때문에 밝은 미래가 열리는 징조”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40대 일본인 회사원은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악을 짊어지고 있던 돌이 깨졌으니 끔찍한 일들이 조만간 끝날 것으로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요컨대 “구미호의 해방이 아니라 저주의 약화로 해석하고 싶다”는 의견이다. 나스마치 관광협회 또한 “작금의 코로나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구미호가 돌을 깨고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며 “길조이기를 바란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일본 주간 ‘플래시’는 “깨진 살생석이 뜻밖의 관광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잘 알려진 대로, 구미호는 동아시아에서 고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요괴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국 고전인 ‘산해경’. 여기서 구미호는 생김새가 여우 같은데, 아홉 개의 꼬리가 있으며,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로 묘사된다.
중국 ‘천자문’에서는 은의 주왕을 유혹해 나라를 기울게 한 ‘악녀’ 달기를 구미호로 비하해 요괴 취급을 하기도 한다. 달기는 유명한 중국 전기소설 ‘봉신연의’에서도 요괴로 그려지는데,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까지도 서브컬처계(게임, 애니메이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령, 주간소년점프의 만화 ‘봉신연의’가 크게 히트하면서 달기(구미호)는 인기 악녀 캐릭터로 떠올랐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일본 만화, 게임에서 구미호는 절세 미녀 캐릭터로 그려지기 때문에 관련 코스튬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플래시’는 “이러한 구미호의 인기 덕분에 살생석 주변이 코스튬 촬영장소로도 유명했다”고 전했다. 살생석 바로 옆에 위치한 여관의 경우 촬영방까지 갖추고 의상, 가발, 메이크업 도구를 빌릴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는 것.
또한 매년 5월엔 코스튬 참가자들이 소복을 입고 횃불을 든 채 살생석 주변을 행렬하는 신화축제가 열리는데, 이번에 “살생석이 깨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상에서는 “깨진 살생석을 꼭 보러가고 싶다”며 참가 의사를 밝히는 목소리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매체는 “특히 구미호 복장을 하고 싶어 하는 코스튬플레이어가 많다”면서 “이에 맞춰 여관들도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 살생석이 큰 주목을 끌면서 오히려 코스튬 마니아들의 ‘성지’ 집결로 이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 매체는 “깨진 돌마저 관광 비즈니스에 공헌하다니 여우의 효험이 역시 대단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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