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즈음 누아르서 무협으로 변화…장만옥 성룡 주윤발 양조위 등 지금도 왕성한 활동
1992년을 대표하는 홍콩 영화로 어떤 작품을 꼽을 수 있을까. 개인 취향에 따라 여러 작품이 거론될 수 있겠지만 누아르에서 무협으로의 변화 과정에서 큰 의미를 갖는 ‘동방불패’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영화를 통해 임청하가 국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는데 1992년에는 임청하 주연 개봉 영화가 ‘동방불패’ ‘절대쌍교’ ‘신용문객잔’ 등 3편이나 된다.
당시 임청하는 이미 38세로 데뷔한 지 20여 년 가까이 되는 중화권에선 오랜 기간 톱스타였던 배우다. 한국에서 이즈음 크게 주목받았지만 임청하는 1973년 전형적인 청순가련형 스타로 데뷔한 배우였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은 ‘동방불패’에선 중성적인 캐릭터였는데 그 인기로 ‘신용문객잔’ ‘절대쌍교’ ‘도검소’ ‘화룡풍운’ ‘육지금마’의 영화에서도 남장여인 역할을 소화해 큰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서 1995년 개봉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과 ‘동사서독’으로 또 한 번의 전성기를 맞이한 뒤 작품 활동이 거의 중단된다. 그 이유는 1994년 임청하가 세계 500대 갑부에도 이름을 올린 재벌 싱리위안(형이원)과 결혼해 은퇴했기 때문이다.
이후 임청하는 두 딸을 낳았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며 불화설이 거듭됐다. 결국 싱리위안이 상하이의 한 여성을 통해 혼외자로 아들을 낳으며 불화설이 심화됐고 결국 결혼 24년 만인 2018년 이혼한다.
결혼 기간 동안에도 임청하 컴백설이 계속됐지만 실제로 이뤄지지는 못했다. 심지어 2003년에는 한국 드라마 ‘다모’에 출연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현실화되진 못했다. 그렇지만 영화에 다시 출연하지만 않을 뿐 각종 행사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종종 대중과 만나고 있다.
1992년 홍콩 영화계에서 가장 눈길을 끈 배우는 양가휘다. 양가휘는 홍콩 민영방송 TVB 10기로 유덕화와 동기다. 1983년 영화 ‘화소원명원’로 데뷔해 주조연급으로 활동해온 양가휘는 1992년에서야 월드스타로 급부상하는데 그 계기는 장자크 아노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연인’이다. 바로 ‘신용문객잔’에서 장만옥, 임청하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인기몰이를 이어갔다.
양가휘는 데뷔 초 중국과의 합작영화에 출연한 것을 문제 삼은 대만이 그의 출연작을 수입 금지하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홍콩 영화계에선 대만 시장의 영향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영화계에서 외면을 당했다. 이로 인해 노점상을 할 정도로 힘겨웠던 양가휘는 자신을 캐스팅해준 프로듀서 강가년과 1987년 결혼했다. 쌍둥이를 두고 있는 이들 부부는 지금까지 별다른 추문 없이 화목하게 잘 살고 있다.
1987년 대만 계엄령이 해제되며 양가휘에 대한 대만 규제가 풀리면서 다시 홍콩 영화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그는 1992년 ‘연인’으로 월드스타가 되는데 ‘연인’에 캐스팅된 결정적인 이유는 영어 연기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양가휘는 당시 홍콩 영화계에선 드문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로 잡지 편집장을 역임했고 저서도 여러 권 냈다.
‘연인’에서 다소 느끼한 모습을 보여줬던 탓인지 양가휘는 국내에서는 그리 큰 인기를 얻은 홍콩 배우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양가휘는 중화권에선 탄탄한 연기력과 꾸준한 자기관리로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배우다.
1991년 12월에 개봉한 ‘도학위룡’의 주성치는 라이징 스타였다. 1992년에는 도학위룡 2편인 ‘첩혈위룡’과 ‘가유희사’ 등의 출연작이 개봉했다. 주성치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 팬들은 비디오 대여점 구석에서 먼지만 쌓여 가던 홍콩 코미디 영화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유희사’에는 주성치 외에도 장국영, 장만옥 등 당대 최고의 홍콩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1992년 개봉 영화 가운데 장국영 출연작은 ‘가유희사’ 한 편뿐인데 이는 그가 1990년 가수 은퇴 선언을 하며 활동량을 대폭 줄인 여파다. 반면 장만옥은 ‘가유희사’ 외에도 ‘폴리스스토리3’ ‘신용문객잔’ 등 여러 편의 영화를 출연했다.
다른 홍콩 스타들도 기존 활동을 그대로 이어갔다. 성룡은 본인만의 색깔이 분명한 영화 ‘폴리스 스토리3’를 선보였고, 주윤발은 누아르 영화 ‘첩혈속집’을 개봉했다. ‘첩혈속집’에서 주윤발과 호흡을 맞춘 양조위도 그 시절을 대표하던 홍콩 스타 가운데 한 명이다. 당시 큰 인기를 누리던 장만옥, 성룡, 주윤발, 양조위 등 홍콩 스타들은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 미디어를 통해 근황이 자주 알려지고 있다. 다만 장국영은 2003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하늘나라로 갔다.
당시 홍콩 음악계는 1980년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1950년대생 가수 장국영과 알란탐(담영린)의 라이벌 구도에서 1960년대생인 유덕화, 장학우, 여명, 곽부성의 4대천왕 구도로 재편되고 있었다. 당시 홍콩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선 가수의 배우 겸업이 당연한 일이었고 가수로 4대천왕이 된 이들은 당연히 영화배우로도 맹활약했다.
특히 1992년은 유덕화가 가장 왕성히 활동했다. ‘신조협려’ ‘신조협려2’ ‘절대쌍교’ ‘용등사해’ 등 그가 출연한 영화 여러 편이 국내에서 개봉해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한국에선 홍콩 가요보다는 홍콩 영화가 훨씬 인기기 많았다. 이런 까닭에 4대천왕 역시 가수가 아닌 배우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었다. 그러다 보니 4대천왕 가운데 외모가 살짝 밀리고, 영화에서도 주연보다는 조연으로 더 강한 인상을 남긴 장학우의 인기가 가장 적었다.
반면 홍콩을 비롯한 중화권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한 이는 장학우였다. 가수로서 출중한 노래 실력과 음악성으로 큰 사랑을 받아 음반 판매량도 가장 높았던 장학우는 중화권에서 ‘가신’으로 불렸을 정도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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