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 김원석 PD, 배우 조진웅·조정석 등 추모발언 이어가…대중 반응 갈리기도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연출한 김원석 PD가 눈시울을 붉히면서 말했다.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난 배우 이선균을 기억하는 자리에서 때론 격양되고 때론 분노하던 그의 마지막 말은 “믿는다” 였다.
10월 2일 개막해 11일까지 열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선균을 떠올리는 동료 배우들과 감독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대부분 눈물을 흘렸고,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다. 김원석 PD는 이선균이 하늘로 떠나기 직전, 확인되지 않은 내용만 보고 비난과 공격을 퍼부은 대중에 날을 세웠고 “말도 안 되는 허위 수사내용을 유출한 사람들은 응징을 해야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지난해 12월 세상을 떠난 이선균을 한국영화공로상의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에 맞춰 ‘고운 사람, 이선균’이라는 이름의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생전 그가 남긴 6편의 작품을 상영했다. 2009년 주연한 ‘파주’부터 흥행 배우로 자리매김한 ‘끝까지 간다’(2014), 대표작으로 꼽히는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 아카데미 작품상을 안긴 ‘기생충’(2019) 등이다. 이에 맞춰 배우 조진웅과 조정석을 비롯해 김성훈 감독과 김원석 PD 등이 모여 이선균을 떠올렸다.
#“말도 안되는…그런 사람들 응징 해야”
지난해 12월 27일 이선균이 세상을 떠나고 그를 추모하는 발언과 자리가 이어졌다. 올해 초에는 봉준호 감독과 배우 김의성, 영화 제작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선균 사건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리기도 했다. 지난해 유흥업소 종업원의 협박을 받아 3억원을 건네는 등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이선균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 담긴 수사 내용이 지속적으로 유포되는 피해를 입었다. 당시 기자회견은 이선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유와 그 배경을 밝히고 관련자를 처벌하라는 요구로 이뤄졌다.
고인에 대한 추모와 관련자들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이선균의 작품은 ‘나의 아저씨’다. 고독한 중년의 남자가 힘겹게 삶을 이어가면서 다시 찾는 희망과 사랑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극중 이선균의 대사인 “편안에 이르기를”이라는 말도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고인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됐다. 김원석 PD는 이선균 사후 한 번도 공개적으로 추모 등 관련 발언을 하지 않다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를 계기로 작심한 듯 그간 담아둔 생각을 꺼냈다.
“요즘 대중이 외면하고 대중의 공격과 지탄을 받는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많이 생각한다”며 “(이선균 사건과 관련해)말도 안 되는 기사를 보도한 언론이나 경찰, 검찰을 대중이 용인한다”고 답답해했다. 대중을 향해서도 “대중은 강자”라며 “자르기 전에(공격하고 외면하기 전에) 더 기회를 달라고 말하고 싶다”며 “범죄를 저질렀어도 한 번쯤 회는 줄 수 있는데 이건(이선균 사건)은 범죄도 아닌, 범죄에 대한 증거도 없는, 그냥 거슬리는 상황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답답함과 애통함, 슬픔이 뒤섞인 말이었다.
물론 김원석 PD의 말을 두고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몇몇 사람들은 공개된 자리에서 적정한 발언이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누구보다 이선균을 잘 아는 연출자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세상을 등지기까지 고인이 겪은 고통을 되짚으면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관객의 추모도 이번 부국제를 계기로 형성됐다.
#조진웅, 조정석이 돌아본 이선균
배우 조진웅은 2014년 영화 ‘끝까지 간다’에서 이선균과 투톱 주연을 맡았다. 당시만 해도 영화의 주연으로 티켓 파워가 증명되지 않았던 두 배우는 나쁜 형사와 더 나쁜 형사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표현해 32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데뷔작 ‘애정 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주목받지 못해 절치부심하던 연출자 김성훈 감독도 일약 흥행 감독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터널’과 ‘비공식 작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 시리즈를 연이어 내놓는 토대도 이선균과 함께 한 ‘끝까지 간다’가 있어 가능했다. 때문에 감독에게도 배우에게도 특별한 작품으로 남았다.
김성훈 감독과 조진웅은 이선균과 함께 작업한 ‘끝까지 간다’의 상영에 맞춰 부산국제영화제로 달려왔다. 감독은 이선균을 처음 만난 11년 전의 기억부터 꺼냈다. 출연을 제안하려고 만난 이선균은 대뜸 ‘왜 나에게 시나리오를 줬냐’고 물었다. 급히 어머니의 장례식장으로 가던 길에 뺑소니 사고를 내고 피해자를 차에 실어 은폐하다가 더 큰 수렁에 빠지는 형사 역할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던진 질문이었다. 김성훈 감독은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극 중 캐릭터가 좋은 친구는 아니고, 나쁜 행동도 한다. 그런데 관객이 주인공을 질타하지 않고 연민하고 응원해야 한다. 이선균의 선한 이미지와 얼굴이 누군가에겐 엄청난 설득력을 지닌다고 생각한다”는 말이었다.
조진웅은 이선균과 치열하게 부딪치는 액션 장면을 촬영하던 기억을 풀어냈다. “선배다운 선배, 형다운 형”이라고 회상하면서 “액션 장면을 찍고 둘이 거울을 보며 옷을 갈아입는데 어제 있던 멍은 그대로인데 새로운 멍이 또 생겼더라”며 “덩치가 큰 제가 올라타는 액션을 찍었는데 형이 비명을 질렀다. 속으로 ‘리얼한데?’ 생각했는데 그때 형의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이선균은 통증을 제작진에 말하지 않았고, 부상 사실도 숨겼다. 계획대로 진행되는 촬영 일정에 차질을 빚을까 우려해서였다.
당시 기억을 떠올린 조진웅은 “형은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그런 표정에서 지난 삶을 다 이야기할 수 있는데 심장의 속까지 건드리는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저도 계속 기억할 테니까 끝까지 기억해 달라”고 이야기하면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았다. 김성훈 감독 역시 “작품의 이미지를 상상하는데 영감을 준 배우”라며 “인물의 불안함을 눈을 통해 담으려고 시도했고 눈동자의 떨림을 포착하려고 했다. 이선균의 눈은 참 예쁘다”고 말하면서 눈물을 삼켰다.
지난 8월 개봉한 ‘행복의 나라’는 이선균의 유작이다. 10·26 사건 직후 상관의 지시로 대통령 암살에 가담한 군인 박태주와 단심 재판을 앞둔 그를 어떻게든 살리려는 변호사 정인후의 이야기다. 배우 조정석이 정인후 역을 맡아 신념을 지키는 군인 박태주 역의 이선균과 호흡을 맞췄다. 역시 부산을 찾은 조정석은 “(이)선균 형과 작업할 때 느낀 점은 누구보다 집중력이 뛰어나고 매섭고 강렬하게 접근해 열정적으로 촬영에 임한다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재판을 기다리는 박태주와 그를 찾는 정인후가 취조실에서 만나는 장면이 영화에 몇 차례 등장한다. 조정석은 “5일 동안 둘이 이야기하는 장면을 찍었는데 그때 대화를 많이 나누고 행복하게 촬영했다”며 “안타깝고 애절한 마음으로 연기한 그 촬영을 잊지 못한다”고 돌이켰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퍼진 이선균을 향한 기억과 그리움의 표현은 꼭 고인을 직접 추모하는 발언으로만 이뤄지지 않았다. 2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이선균이 생전 영화에 출연한 모습이 영상으로 소개되자 배우 송중기는 흐르는 눈물을 막지 못하고 손으로 훔쳤다. 송중기는 ‘행복의 나라’ 개봉 당시 출연한 배우가 아닌데도 작품을 알리기 위한 관객과의 대회에 참석해 주목받기도 했다. “선배님을 향한 저만의 애도의 과정”이라는 뜻에서 기꺼이 영화를 알리는 데 힘을 보탰다. 이들의 기억에 이선균은 영원히 살아 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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