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영철은 누군가와 굉장히 말을 나누고 싶어서 미쳐버렸고, 그래서 흑화된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매드 사이언티스트'라고 말씀해주시지만 그건 직업적인 껍데기일 뿐이고, 그냥 누구보다 나쁜 놈인 거죠. 처음 연기할 땐 빌런으로서 권세정(전지현 분)의 앞길을 막는 역할을 잘 수행하자는 생각뿐이었어요. 그의 행동을 보면 그 안에 여러 해석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먼저 빌런으로 잘 작동해야 했죠. 무력이 있진 않아도 '분신술'을 쓰는 악당이라고 할까요(웃음)."
'부산행'(2016)으로 한국 좀비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연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는 정체불명의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 고립된 생존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들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 중 서영철은 감염 사태의 시작점에 선 인물로, 자신을 '백신'이라고 주장하며 감염자들과 연결된 듯한 모습으로 생존자들을 압박한다. 생명공학자 권세정이 생존자들의 중심에서 버틴다면 서영철은 감염자들의 중심에서 다른 방식의 질서를 만들어내 스스로의 '옳음'을 증명하려 든다. '군체'가 단순한 감염 재난이 아니라 집단의식과 개인의 경계에 관한 장르물로 읽히는 이유다.
"소통이란 건 사실 완전해도, 불완전해도 무섭죠. 영철이는 소통의 완전함을 추구하다가 자기 자신에게 잡아먹혀버린 인물이에요. 인간으로선 너무 깔끔하게 소통이 되는 것도 좀 그런데(웃음), 저는 소통이란 게 밸런스가 잘 맞아야 한다고 보거든요. 작업할 때도 그걸 위해 더 나 자신을 꾸미지 않고 상대방에게 드러내려고 해요. 창작자로서는 어떤 작품이 하나의 어떤 생각으로만 만들어지면 그것만큼 재미없는 게 없으니까요. 건강하게 충돌하는 게 좋아요."

"연상호 감독님과의 작업은 항상 기분이 좋아요. 배우에게 자유를 주시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구)교환 배우 마음대로 해석해서 연기해 봐', 이런 게 아니라 배우가 가진 절반의 자유와 감독님의 절반의 통제로 함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거예요. 첫 테이크는 제 해석으로 먼저 가고, 그걸 감독님이 흡수하셔서 다음 테이크 때 디렉션을 주시는 식이죠. 제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든 감독님이 좋은 순발력으로 마무리를 지어주세요. 감독님과 함께 만들어가는 캐릭터는 감독님의 지분이 8할 이상이고 저는 그냥 '소스 제공자'라고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반대로 극 중 '소통의 불완전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각자의 집단을 이끌며 정반대의 위치에서 충돌하는 서영철과 권세정이다. 서영철이 집단을 통해 하나의 의식처럼 확장되는 인물이라면 권세정은 고립된 생존자들 사이 끝까지 개인의 판단과 선택을 붙드는 인물이다. 이처럼 극한의 대립으로 극의 서스펜스를 이끄는 두 캐릭터지만, 실제로 연기한 배우들은 스크린 밖에서 전혀 다른 유쾌한 호흡을 보여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지현이 구교환을 두고 "자매, 여동생 같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은 것에 대해 구교환도 "새 학기가 시작됐을 때 친해지고 싶어서 눈을 마주쳤던 반 친구인데, 졸업할 때까지 친하게 지내게 되는 그런 사이 같다"고 화답했다.

배우이면서 동시에 창작자이기도 한 구교환은 올해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연이어 대중을 만났고, 또 만날 예정이다. 한때 뜨겁게 사랑했다가 이별 후에 재회하게 된 옛 연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만약에 우리는'으로 흥행 포문을 열었고, 최근엔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모자무싸)에서 20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 중인 주인공을 맡아 현실적인 초라함과 '지질한' 귀여움을 동시에 보여주며 시청자들의 많은 공감을 샀다.
이번 '군체'에서 다시 정반대의 얼굴로 장르적 긴장을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린 구교환은 남은 하반기에도 미스터리 스릴러 '폭설', SF 액션 '왕을 찾아서', 누아르 액션 '부활남' 등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작품마다 장르에 맞춰 전혀 다른 이미지로 관객 앞에 등장하는 그에게 있어 '연기 변신'은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일이라기보다 새로운 현장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던져버리는 것에 가깝다고 했다.
"감독님들마다 절 가지고 만들어내고 싶은 얼굴들이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실제의 제 얼굴은 똑같지만 감독님들이 보고 싶은 얼굴이 무엇인가에 따라 모두 다르게 나오는 거죠. 제가 변검술을 배우지 않는 이상 스스로 얼굴을 바꿀 수는 없잖아요(웃음). 그런 작업을 거치면서 '배우란 건 연출자를 타는 것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만일 연기 변신이란 말이 존재한다면 그건 배우가 하는 일이 아니라 연출자와 작가님이 시켜주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영화 '정원사들'을 찍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감독님이 바라보는 제 얼굴이 또 달라요. 저라는 사람을 코미디로 작동시킬 때 나오는 새로운 얼굴이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게 되면 또 너무 재미있죠(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