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라 요보비치는 <블루 라군 2>(작은 사진)에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가슴을 드러내 논쟁의 대상이 됐다. |
밀라 요보비치는 1975년 우크라이나의 키예프에서 태어났다. 체코에서 온 ‘수영복 여신’ 폴리나 포리즈코바와 다니엘라 페스트로바, 우크라이나 출신의 ‘포르노 퀸’ 빅토리아 즈드록, 모스크바에서 온 ‘여전사’ 제냐 라노, 러시아에서 온 ‘블론드 미녀’ 나탈리아 소콜로바, 세르비아에서 온 핫 바디 이바나 보질로비치 등등. 러시아와 동구권의 늘씬한 미녀들은 이미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의 중요한 인력들이었는데 요보비치는 그들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그녀는 다재다능했다. 모델로 경력을 시작한 요보비치는 배우를 거쳐 뮤지션과 패션 디자이너로서도 성공했다.
요보비치가 배우가 된 건 어머니 때문이었다. 전형적인 러시아계 미인이었으며 1970년대부터 활동했던 배우인 갈리나 요보비치는 다섯 살 난 밀라를 데리고 미국으로 이주했고, 남편과 이혼 후 싱글맘으로서 힘겹게 딸을 배우로 키웠다. 열 살 때부터 연기 수업을 받던 요보비치는 전설의 에로 영화 <투 문 정션>(1988)에서 주인공 셔릴린 펜의 여동생 역으로 데뷔한다.
요보비치와 에로티시즘은 <블루 라군 2>(1991)부터 그 기나긴 싸움을 시작한다. 촬영 당시 15세에 불과했던 요보비치는 이 영화에서 과감히 가슴을 드러냈다. 이 영화에서의 노출은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이후 DVD로 출시되었을 땐 뿌옇게 처리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찰리 채플린의 전기 영화인 <채플린>(1992)도 문제가 되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17세에 채플린과 결혼했던 밀드레드 해리스 역을 맡았는데 당시 역시 17세였던 요보비치는 가슴과 엉덩이골을 드러낸다. 이 시기의 요보비치는 전형적인 롤리타 콤플렉스의 대상이었으며 자칫 잘못하면 그렇게 소비되다가 단명할 수도 있었다.
이어 출연한 <멍하고 혼돈스러운>(1993)은 그녀가 틴에이저 시절에 출연한 마지막 영화가 됐다. 그 이유는 상대역인 숀 앤드류스와 촬영이 끝난 후 부모의 눈을 피해 야반도주하듯 달아나 결혼을 해버렸기 때문. 요보비치의 어머니는 법정 투쟁을 통해 그들의 결혼이 무효임을 증명 받았고 4년 동안 요보비치를 촬영장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했다. 그 덕분에 롤리타 이미지를 벗겨낼 수 있었다.
스무 살이 되자 드디어 족쇄가 풀린 요보비치는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1997)를 통해 특유의 섹시함을 드러낸다. 깡마른 체구의 그녀는 글래머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붕대를 휘감은 듯한 장 폴 고티에의 전위적인 의상을 입고 가슴을 드러내는 요보비치는 이 영화부터 액션 경력을 시작하는데, 그녀의 여전사 이미지는 기존의 그것과 조금은 달랐다.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2002~)에선 언제나 인상적인 누드 신(특히 1편에서의 욕조 장면은 대표적)을 선사했고 <울트라 바이올렛>(2006)에선 영화 내내 타이트한 의상에 탄탄한 복근의 배꼽을 드러냈다. 시종일관 갑옷을 두르고 등장한 <잔다르크>(1999)가 다소 의외의 모습일 뿐이었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삼총사 3D>(2011)에서도 그녀는 풍성한 17세기 의상을 최대한 섹시하게 입은 상태에서 각종 액션을 해낸다. 이렇듯 요보비치가 만들어낸 여전사 이미지는 언제나 남성 관객들의 관음적 대상이 됐고, 한편으로는 중성적인 그 무엇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췄다면 요보비치의 섹슈얼리티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평면적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여기에 매춘부와 팜므 파탈의 이미지를 섞는다.
덴젤 워싱턴과 공연한 <히 갓 게임>(1998)은 그 시작이었다. 이 영화에서 기둥서방에게 시달리는 콜걸로 등장해 연민에 찬 연기를 보여준 그녀는 <더 클레임>(2000)에선 포르투갈 매춘굴의 포주가 되어 등장한다. 파격적인 정면 노출을 보여주었던 <노 굿 디드>(2002)에 이어 최근작 <스톤>(2011)은 그녀의 팜므 파탈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 로버트 드 니로와 공연한 이 영화에서 그녀는 나이 든 남자를 능수능란하게 육체로 옭아매며 치명적인 섹스 신을 보여준다.
10대 시절 불장난처럼 사랑의 도피 행각을 펼친 후 뤽 베송 감독을 비롯해 함께 연기했던 수많은 남자배우들과 연인 관계를 맺었으며 록 그룹의 뮤지션들과도 한때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현재 밀라 요보비치는 <레지던트 이블>에서 만난 폴 W.S. 앤더슨 감독과 결혼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상태. 하지만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여전히 여전사와 팜므 파탈이라는 극단을 오가며 섹슈얼한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