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윤정은 취객이 안주를 던지면 ‘이딴 식으로 사랑 표현하지 마세요’라고 하는 등 재치 있게 대응한다. |
연예계에 전설적으로 내려오는 밤무대의 교본은 다름 아닌 개그우먼 이영자다. 남자 못지않게 넘치는 체력과 구수한 입담, 타고난 끼로 무대를 장악하는 그는 관객의 혼을 쏙 빼놓기로 유명하다. 이런 그에게 밤무대 노하우를 배우려는 연예인들도 상당수인데 실제로 신인시절의 박명수가 그를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진행 솜씨를 익혔고, 유재석 또한 신인시절 이영자의 밤무대 진행을 보고 그대로 흉내 냈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특히 밤무대에 선 연예인들의 공공의 적이라 할 수 있는 취객을 상대하는 노하우도 갖고 있다. 그는 욕설을 건네는 취객에게 똑같이 욕설을 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밉지 않으면서도 시원하게 퍼붓는 그의 욕을 듣고 있노라면 제 아무리 취한 관객도 두 손 두 발 다 들게 마련이라고. 이제껏 그와 ‘욕 배틀’(?)을 벌여 그를 누른 이는 아무도 없다는 후문이다.
한때 이영자와 콤비를 이뤄 활동했던 모델 홍진경 또한 밤무대 에피소드가 실로 다양하다. 그는 고교시절 데뷔해 이영자와 함께 프로그램 속에서 버스 안내양 역을 맡으며 특유의 엉뚱한 캐릭터로 사랑받았다.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곳에서 인생을 배워야 한다”는 그럴싸한 말에 이영자를 뒤쫓았지만 미성년자 홍진경으로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영자를 따라 그는 연일 밤무대 대기실에서 꼬박 밤을 새워야만 했다.
문제는 시험기간이었다. 친구들이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그는 지방의 밤무대 대기실에서 참고서를 펼쳐들어야만 했다. 공부를 하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악어와 앵무새가 가득했고 갑자기 무대에서 “홍진경~!”을 부르짖는 이영자의 목소리가 들릴 때면 부리나케 뛰어나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고. 이영자의 말마따나 홍진경은 본의 아니게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밤업소에 선 연예인들이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바로 취객들의 안주 세례다. ‘얼큰하게 취한 이들의 안주를 맞아 보지 않고선 밤무대를 논하지 말라’는 그들만의 속담(?)이 있을 정도다. 밤무대에 자주 서는 이들은 이 안주세례에 대비한 자신만의 대처법을 가지고 있다.
가수 백지영은 안주를 던진 이에게 물을 건네며 “많이 취하셨는데 얼른 깨셔야죠”라고 노련하게 취객을 다루기로 유명하다. 가수 장윤정은 “안주가 날라 오네요. 그렇게들 좋으세요? 하지만 이딴 식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마세요”라며 불쾌한 마음을 돌려서 표현하는 편이다. 유재석 또한 신인시절 자신에게 신발을 던지는 관객을 골탕 먹이기 위해 무대 위로 날라 온 신발을 손에 들고 무대에서 퇴장했다고 한다. 깡총발로 자신을 찾아온 취객에게 사과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어도 취객은 취객이다. 개그맨 윤정수의 일화. 하루는 그가 밤업소 DJ를 보고 있는데 그날 따라 토마토 안주를 던지는 취객이 있었다고 한다. 애써 웃으며 취객을 달래려 했지만 피하면 피하는 대로 계속 토마토를 던지는 그 취객에 윤정수는 화가 잔뜩 났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그만 던지게 할까를 연구하던 찰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여러분! 이왕 던지실 거면 좀 비싼 안주를 던지세요.” 그러자 무대 위로 날라 오던 토마토 세례는 멈췄고 윤정수는 기분 좋게 자신의 무대를 끝낼 수 있었다.
문제는 윤정수의 뒤를 이어 다음 무대에 오른 가수 성진우였다. 그가 “다 포기하지마~”라며 무대를 시작하는 순간, 좀 전의 그 취객은 그에게 토마토가 아닌 소고기 튀김을 던지기 시작했다. 결국 애꿎은 성진우만 영문도 모른 채 ‘비싼 안주’를 맞아가며 노래를 불러야 했다.
가수와 개그맨들은 익숙한 밤무대지만 탤런트들에겐 가끔 오르는 밤무대가 낯설 수밖에 없다. 하루는 탤런트 조재현이 행사 차 광주의 한 나이트클럽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노래 못하기로 유명한 데다 밤무대 경험이 일천한 터라 그는 내심 걱정을 했다.
결국 밤무대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친분 있는 동료 탤런트 손현주에게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그가 알려준 노하우는 ‘최대한 늦게 등장해 긴장감을 조성하라’와 ‘1절은 악수로 때우고, 2절만 적당히 노래를 불러라’였다. 손현주의 조언대로 적당히 늦게 등장해 관객들의 환호성을 이끌어낸 조재현. 일일이 관객들과 악수하며 “반갑습니다” 등의 멘트를 섞어 여차여차 1절은 무사히 넘겼지만 문제는 2절이었다. 제대로 노래를 불러야 할 2절에서 그의 노래 실력은 금세 들통나고 만 것. 이제껏 환호하던 관객들은 조그만 포도부터 던지기 시작해 노래를 마칠 때 쯤 부피가 큰 사과와 수박까지 내던지기 시작했다. 요리조리 안주를 피해가며 무대에서 내려온 조재현. 그날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무대였다고 한다.
한편 에너지 넘치는 방송인 J는 밤무대에서 본의 아니게 굴욕을 겪었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이른바 돈이 되는 밤업소 출연을 게을리 하지 않는 J. 지방의 나이트클럽에 처음으로 일을 하러 간 날이었다. 업소 관계자에게 첫인상을 강하게 심어주기 위해 노래와 춤, 디제잉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던 J는 유독 젊은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고 한다. 성인클럽에 젊은 관객들이 찾은 사실도 이상했고 자신에게 보내는 환호가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더라는 것.
그에게 환호를 보내던 관객들은 다름 아닌 해당 지역 소재의 대학교 학생들이었는데 바로 J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었다는 것. 해당 나이트클럽에 J가 출연한단 소식이 포스터를 통해 알려지면서 학생들이 단체로 J를 응원하기 위해 나이트클럽을 찾은 것이었다. 결국 무대에서 내려온 J는 학생들에게 “내가 무대에서 술, 담배 했던 것만 소문내지 말아다오”라며 학생들의 술값을 대신 계산해 주었다고 한다.
주영민 연예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