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대 대통령 선거 후보등록을 하루 앞둔 2007년 11월 24일 영구아트무비 본사를 찾은 무소속 이회창 대선후보가 심형래 대표이사와 환담하는 모습. 연합뉴스 |
지난 9월 30일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한국무역보험공사가 문화수출보험 지원 필수 서류인 시나리오 최종본과 출연진 계약서도 없이 30억 원 지원을 결정했다”면서 “1차 심사에서 평가 점수 미달로 지원이 불가능했는데 외부 심사위원들을 모두 교체한 뒤 평가 점수가 상향 조정됐다”고 지원 강행 의혹을 제기했다. 한나라당 이상권 의원 역시 “무역보험공사는 ‘총제작비 80억 원 이하의 영화만 지원’하도록 돼 있는 공사 규정을 어기고 심형래 감독과 제작비 200억 원 규모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며 “협약식 두 달 뒤 규정에서 80억 원 규제 항목을 삭제해 영구아트에 보증이 가능하도록 변경했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영구아트에 다른 제작사보다 두 배가량 많은 금액을 지원했다”고 특혜 의혹을 제기하며 “심형래 감독은 신지식인 선정 이후 쌓은 정관계 인맥을 통해 다수의 국가 지원을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영구아트에 투자했던 한 저축은행의 전직 임원은 “심형래 감독에 대한 특혜에 가까운 대출에는 청와대에 파견 나가 있다고 한 공무원과 콘텐츠진흥원장, 진흥원이 앞장섰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처럼 거듭되는 특혜 의혹은 심형래의 정관계 로비설로 직결된다. 심지어 영구아트 전 직원들은 심형래가 정관계 인사들에게 연예인 성 접대를 하기도 했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자연스럽게 관심의 초점은 심형래의 로비 대상이 된 정관계 인사가 누구냐 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특정 인사를 지목하기가 쉽지 않다. 심형래의 정관계 인맥이 너무 폭넓기 때문이다. 심형래는 한나라당 정식 당원이다. 당연히 그의 정치 행보 역시 한나라당 지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지만 그의 스펙트럼은 보다 넓었다. 특정 정당을 공개 지지하는 여느 연예인들과는 전혀 다른 행태다.
심형래가 정치권 행사에 처음 얼굴을 비추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 1992년이다. 92년 3월 민자당 정당연설회에 참석해 당시 대표최고위원이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지원한 것. 그해 대선에서도 심형래는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한 뒤 대선후보이던 김 전 대통령의 선거 유세를 도왔다. 또한 96년 총선에선 한나라당 김운환 후보의 선거 유세에 참석하기도 했다.
반면 97년 대선에선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인 이회창 전 대표가 아닌 당시 국민신당 대선후보이던 이인제 의원의 선거 유세를 도왔다. 그리고 99년에는 DJ 정부가 벌인 제2건국운동의 일환으로 추진된 신지식인 운동의 첫 번째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심형래가 정관계 인사들과 본격적인 친분을 쌓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신지식인 선정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심형래는 지난 2008년 김득회 (주)파이토코 대표가 민주당 공천에 참여하자 후원회장을 맡았다. 김 대표는 신지식인 선정 당시 DJ 정부의 청와대 부속실장이었다.
2002년 대선에선 특정 후보의 선거 유세에 적극 참여하진 않았다. 다만 이한동 전 총리의 대선후보 출마 공식 선언식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노무현 정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2005년엔 청와대에서 대통령 비서실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을 정도다. 이즈음부터 심형래는 선거 유세 지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국회의원에게 거액의 후원금을 내는 모습까지 선보인다. 2005년에는 열린우리당 의원이던 심재덕 전 의원에게 500만 원, 2006년에는 한나라당 의원이던 박찬숙 전 의원에게 500만 원을 냈다. 특히 박찬숙 전 의원의 경우 당시 문화관광위 소속이었던 터라 뒷말이 무성했다. 심형래는 회사 이름을 밝히지 않고 기부금을 냈으며 심형래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최성호 영구아트 이사도 회사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500만 원을 냈다. 이들은 고액을 후원해 실명을 공개해야 하는 공개대상 기부자에 해당되는데 실명만 공개하고 회사명은 밝히지 않아 신분을 감추려는 편법이라는 의혹에 휘말리기도 했다. 심형래는 이후 2008년 총선에서도 박찬숙 후보의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2007년 대선에서 심형래는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이회창 전 대표를 지원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 이 전 대표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 영구아트를 방문해 문화콘텐츠 사업 발전에 대한 의견을 교류하기도 했다.
2008년 이후 심형래는 한나라당 당원으로서의 행보에 집중한다. 2008년 4월 한나라당 워크숍에서 여성 당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을 가졌는데 이날 노골적인 음담패설을 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08년 총선에선 한나라당 선거 유세의 일선에 섰다. 백성운 조전혁 박찬숙 박형준 후보 등의 선거 유세에 참여한 것. 또한 2009년 국회의원 재선거에선 한나라당 경대수 후보 선거 유세를 지원했다.
그렇지만 선거 유세 지원, 정치후원금 기부 등으로 심형래와 인연을 맺은 정치권 인사들은 대부분 ‘특별한 친분이 있어서가 아닌 지인 소개로 선거 운동에서 지원을 받았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현직 의원 가운데 심형래와 가장 인연이 깊은 인사는 한나라당 백성운 의원이다. 2008년 총선 당시 심형래는 백 의원 후원회장이었다. 경기 고양 일산갑에 출마한 백 의원은 한명숙 전 총리와의 맞붙어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당시 같은 지역구에 친박연대로 출마한 김형진 씨가 심형래와 절친했던 코미디언 고 김형곤의 친동생임에도 불구하고 심형래는 백 의원 지지에 앞장섰다. 백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이는 아니고 지인 소개로 심형래 대표를 알게 돼 국회의원 선거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라며 “당시 후원회장이긴 했지만 후원금을 내거나 후원행사를 연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심형래는 정당, 지역색과 무관하게 다양한 정치권 인사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정치권 관계자는 “심형래의 폭넓은 정치 행보와 인맥을 보면 해당 정치인 개개인과 친분이 있다기보다는 누군가 브로커 역할을 해주는 이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며 “로비의 키 역시 드러난 정치인이 아닌 브로커가 쥐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