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수사에 아름답게 물든 단풍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원의 사진은 붉게 물든 단풍과 감나무가 어우러진 풍경의 아름다운 문수사. |
문수사는 전북 고창의 남쪽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다. 선운사라는 유명한 절이 고창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는데다가 워낙 한 귀퉁이에 틀어박혀 있어서 뭇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해온 절이 바로 문수사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이 절이 얼마나 이 계절에 고마운 곳인지.
단풍여행객들은 대부분 고창의 선운사나 인근 장성의 백양사로 관성에 이끌리듯 습관처럼 향한다. 그것이 얼마나 기운 빠지고 지치는 일인지 매번 겪어 알면서도 ‘올해는 다르지 않을까’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그럴 때 문수사를 다녀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미소를 짓는다.
문수사는 장성 축령산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문수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높이 620m에 불과한 이 산은 그 풍모로만 보면 어디 명함을 내밀기도 무척 초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의 이 산은 문수사로 말미암아 한껏 기를 편다. 문수사의 단풍이 그 어느 곳과 비교하더라도 결코 꿀림이 없기 때문이다.
문수사는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사실 창건자와 관련해서는 이견도 있다. 왜냐하면 당시 문수사 일대는 백제의 땅이었는데, 자장율사는 신라의 국통(불교계의 수장으로 왕의 고문역할을 하던 승직)이었다. 어쨌든 문수사는 자장율사가 당나라 오대산(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깨달음을 얻고 돌아와 지었다고 전한다.
▲ 단풍이 문수사 경내로 드는 문틀에 곱게 걸렸다. |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부처다. 세상의 고민을 풀어줄 슬기로움을 중생들에게 내린다고 한다. 지혜의 부처를 모신 절이라서 그럴까.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온 요즘, 단풍에는 시선 하나 두지 않고 자식들의 대학 합격을 바라는 부모들의 방문이 다소 늘었다. 그들은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자식을 위해 기도하고 조용히 절을 떠난다. 초조히 시험을 준비하는 자식들을 생각하면 단풍에 마음이 갈 여유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단풍이 목적이다. 문수사의 단풍숲길은 지난 2005년 천연기념물 제463호로 지정해 보호할 정도로 훌륭하다. 문수사 단풍나무들은 적게는 100년에서 많게는 400년 가까이 된 것들이다. 이러한 단풍나무가 절 주변에 500여 그루나 된다. 대개가 아름드리나무들이다. 큰 것들은 직경이 1m 가까이 되는 것들도 있다. 높이는 20m에 육박한다.
단풍숲은 일주문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좌우뿐만 아니라 하늘마저 키 큰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루며 덮고 있다. 그 속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화염에 휩싸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떨어진 단풍잎들은 이불처럼 길을 덮고 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메마른 단풍잎들이 바스락거리며 밟힌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가는 내내 화염은 일렁댄다. 문수사에 이르러서는 돌계단 옆으로 시원한 계곡물이 철철 흐른다. 그냥 마셔도 좋을 정도로 물이 깨끗하고 차다. 가을 가뭄이 심했던 올해도 문수사 단풍이 이처럼 고운 자태를 자랑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 계곡에 있다. 다른 곳들은 단풍이 타들어가 색이 탁하다고 난리들인데, 이곳의 단풍나무들은 계곡에 뿌리를 대고 충분한 수분을 공급받은 덕분에 언제나처럼 색이 맑다.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마주한 문수사 경내에는 대웅전과 문수전, 한산전, 종각 등의 건물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절 자리가 넓은 편이 아니다. 대웅전은 조선 고종13년(1876), 문수전은 영조40년(1764)에 다시 지은 것이다. 대웅전에는 시도유형문화재 제207호로 지정된 목조삼세불상이 있고, 문수전에는 문화재자료 제181호 석조문수보살상이 모셔져 있다. 사실 절의 문화재와 관련해서는 더욱 뛰어난 것들을 보유한 절들이 많기에 딱히 내세울 것이 못된다. 그런데 절에 걸려 있는 편액의 글씨들이 예사롭지가 않다. ‘문수전(文殊殿)’과 ‘응향각(凝香閣)’의 글씨가 특히 그러한데, 명확치는 않지만 추사 김정희가 쓴 것으로 추정된다.
사찰 뒤편으로도 단풍숲이 넓게 펼쳐져 있고, 그 사이에 감나무가 두어 그루 박혀 있다. 빨갛게 익은 감들이 등불처럼 문수사를 비추는 듯하다. 감은 일부러 따지 않고 둔다. 겨우내 먹이를 구하기 힘든 새들의 주린 배를 채울 양식이다.
김동옥 여행전문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서해안고속국도 고창IC→고창입구 사거리에서 우회전→23번국도→고수삼거리에서 좌회전→21번군도→문수사.
▲먹거리: 고창하면 풍천장어다. 저마다 원조를 자처하는 집들이 선운사 삼인교차로 인근에 모여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다른 걸 소개하고자 한다. 바로 백합요리다. 해리면 동호해수욕장 가는 길에 호수가든(063-563-5694)가 있다. 백합전골, 백합회무침, 백합죽, 백합탕 등을 메뉴로 내놓는다. 음식이 깔끔하고 맛있다. 백합전골은 숙취해소에 그만이다.
▲잠자리: 고창읍 석정온천지구에 힐링카운티(063-563-9300), 그랜드모텔(063-561-0037) 등 숙박업소가 꽤 있다.
▲문의: 고창군문화관광과 063-560-2457, 문수사 063-562-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