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에 출연한 김재중을 위해 그의 팬들은 밥차를 동원해 스태프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쌀 화환을 보내는 등 김재중의 이름을 홍보하는 데 톡톡히 한몫을 했다. |
넷상에서는 팬들이 돈을 모아 연예인에게 선물할 때 ‘조공한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과연 팬들은 자신의 스타를 빛내기 위해 어떤 조공들을 바칠까. 한 포털 사이트에 지난 3년간 ‘팬클럽 선물’ 관련 기사를 검색해 봤다. 생일 선물을 제외하고 가장 많이 기사화된 조공은 밥차와 같은 스태프들 식사 대접이었다. 올 한 해에만 20여 차례 밥차가 전국 각지로 달려갔다.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의 또 다른 주연 배우 최강희 팬들 역시 삼계탕 100인분을 대접하고 드라마 <계백>에 출연 중인 티아라 효민은 팬들이 차려준 뷔페를 먹고 인증샷을 남기는 등, 팬클럽에서 스태프를 챙기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 됐다. <나는 가수다> 촬영장 역시 출연 가수 팬들이 보내주는 간식과 선물들로 매주 잔치가 벌어진다.
기부와 봉사활동은 다음으로 많은 조공 형태다. 그중 김현중 팬클럽은 ‘기부 클럽’이라 불릴 만큼 열심인데 작년과 올해에 걸쳐 10여 차례나 기사화되었다. 그때마다 기부 금액은 600만~7000만 원에 달했다. 작년 2월부터는 ‘김현중 장학재단’을 만들어 틈틈이 기부금을 적립하고 있다. 올 3월 박시후의 국내외 팬들은 중국의 한 중학교에 ‘박시후 도서관’을 건립하기도 했다. 아이티 지진,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재앙이 있을 때마다 팬클럽은 발 빠르게 돈을 모아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으로 기부금을 전달한다.
세 번째로 많은 것은 광고·홍보 활동이다. 이준기 팬클럽은 기자회견이나 시사회가 있을 때 스태프는 물론 취재진에게까지 선물을 돌려 기자들 사이에 화제가 됐다. 이준기는 팬들의 이런 활동 덕분인지 꽃미남 이미지에서 호감 이미지로 바뀐 대표적인 케이스다. 팬들의 홍보 활동은 정식 활동을 하지 않는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에게도 이어진다. 슈퍼스타K2 출신 존 박의 경우 오랜 기간 소속사를 정하지 못하자 팬들이 자발적으로 보도 자료를 만들고 동영상을 배포하며 홍보에 앞장섰다. 우승자 허각의 경우 작년 10월 한 팬으로부터 ‘허각닷컴’ 도메인을 무상으로 증정받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팬클럽 선물은 철저히 연예인과 팬들 간 1:1 교류의 장이었다. 인기가 높아지면 그만큼 선물의 가격도 높아졌다. 가장 많은 팬클럽 회원 수를 자랑하는 동방신기의 경우 팬들이 2008년 멤버 유노윤호의 생일을 맞아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녹음 장비를 선물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2009년은 빅뱅의 승리, 배우 이영애, 이민호 등이 고가 선물 논란에 휩싸였지만 확인 결과 모두 돌려보내거나 다른 곳에 기증한 것으로 밝혀졌다. 작년과 올해 고가 선물로 기사화된 것은 가수 비 팬클럽에서 선물한 1200만 원대 명품 마이크 정도다.
팬클럽 조공 문화는 예전 고가 선물을 줄 때보다 비용이 더 든다는 비판도 있다. 과거 HOT 팬클럽 활동을 했던 한 여성은 “팬들이 스타를 위해 값비싼 물건을 선물하던 옛날보다 지금 10대들 조공 형태가 비용이나 시간이 더 든다”며 “이제는 생일 때 신문 광고까지 싣지 않는가. 언론에서 별다른 비판을 하지 않는 게 신기하다”며 조공 열풍을 우려했다.
실제로 드라마 <보스를 지켜라> 촬영 기간 중 김재중 팬클럽에서 준비한 선물 내역을 보면 그 놀라운 실체를 엿볼 수 있다. 김재중 팬클럽은 연합을 결성해 제작사 미팅 때 간식을 돌리는 것은 물론 제작발표회 때는 기자들을 위해 보냉병과 USB 300개를 직접 디자인해 선물했다. 당시 전달된 쌀 화환은 역대 최고인 6.56톤으로 결식아동 600명이 한 달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은 PD와 작가에게 이니셜을 새긴 명품 지갑과 만년필을 각각 선물하기도 했다.
이러한 팬클럽 조공 문화는 또래 연예인 간 경쟁을 심화시킨다는 의견도 있다. 동방신기와 박재범 팬들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2PM에서 탈퇴해 활동 중인 박재범의 팬들은 유독 기부와 봉사 활동에 열심인데 이는 기부를 통해 박재범의 이미지를 쇄신시키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전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현재 공중파 출연이 막혀있는 JYJ의 팬들은 올 1월 5대 광역 도시 120대 버스에 대대적인 광고를 실었는데 이를 위해 9817명의 회원들이 모은 돈은 1억 5809만 원에 달했다.
‘재중팬엽합’ 소속 한 회원은 이메일 답신을 통해 “우리 팬연합은 소액 부담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조공 후 정산 내역을 회원들에게 공개한다. 또 남은 돈을 복지센터에 기부하는 등 10원짜리 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다. 이런 조공 활동을 통해 어린 10대 팬들은 연예인과 더 가깝게 느끼고 일찍 기부 문화를 체험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많다”고 설명했다.
조공(朝貢)이란 본래 종속국이 종주국에 예물을 바치던 일을 말한다. 선물을 받은 종주국은 감사해하지 않고 종속국은 기쁘지 않은 게 대다수였다. 조공을 받는 연예인이나 주는 팬들 모두 무심코 쓰는 이 말의 어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