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7월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가진 법학전문대학원 운영실태와 제도개선 방향 학술세미나에서 정종섭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로스쿨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상태로는 내년에 처음 시행되는 변호사시험에서 로스쿨생들의 무더기 탈락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제1회 로스쿨 졸업생들의 변시 합격률이 40~50%선에 그칠 것이라는 섣부른 관측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각 로스쿨들은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자체 검증시험을 통해 내년 변호사시험을 치를 학생들을 미리 선정하는 등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한 각 로스쿨들의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저마다 위상을 높이기 위해 막판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각 로스쿨들의 실태를 취재했다.
“예상보다 로스쿨생들의 법학 실력이 저조한 편이다. 이대로는 큰일이다.”
올해 전국 변호사시험 모의시험을 주관한 관계자들은 모의시험 결과를 보고 하나같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몇몇 관계자들은 “변호사시험 난이도를 더 쉽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며 난감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변호사시험 관계자들은 사정이 이러한데도 다들 ‘쉬쉬’하고 있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이번 7월 변호사시험 모의시험의 평균 점수가 알려지면 그야말로 큰일 난다. 만약 이에 대해 발설할 경우 고소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며 조심스레 귀띔했다. 가뜩이나 로스쿨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이 달갑지 않은 상황에서 ‘로스쿨생들의 법학 실력이 저조하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좋을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놓인 로스쿨들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 실정이다.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신림동 고시촌 학원가에 모의시험 ‘외주’를 맡기는 로스쿨들이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 졸업시험 명목으로 로스쿨생들에게 사전에 모의시험을 보게 한 뒤 합격선에 못 미치는 학생들을 유급시키는 등 강한 조치를 마련한 곳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것 같은 학생들을 미리 유급시키고, 합격 가능한 학생들만 변호사시험을 보게 해 해당 로스쿨의 합격률을 높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현재 로스쿨 교수들의 첫 번째 목표는 변호사시험 100% 합격, 둘째는 졸업생 전원 취업”이라며 “지금으로선 내년 합격률이 높아야 학교의 네임밸류도 높아지기 때문에 우선은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다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몇몇 로스쿨 측은 합격률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졸업시험을 변호사시험 모의시험으로 대체했다. 내년에 시행될 실제 변호사시험에서 불합격자를 최대한 줄이고자 미리 손을 쓴 것이다. 이번에 졸업시험을 본 로스쿨생 이 아무개 씨(여·29)는 “학교가 변호사시험 합격률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 같다. 졸업시험 우수자에게만 시험을 치를 자격을 준다는 것 자체가 비겁한 발상이다”며 “졸업시험이라서 안 볼 수도 없고 막상 점수가 낮으면 변호사시험 자격도 박탈되니 걱정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처럼 로스쿨생들이 변호사시험을 치르기도 전에 유급될 상황에 놓여있는데도 로스쿨 측은 합격률을 높이기 위한 나름의 ‘묘책’으로 내놓은 졸업시험제도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졸업시험 제도를 운영하는 곳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일례로 또 다른 몇몇 로스쿨들도 이미 지난 여름방학 기간 중 모의시험을 졸업시험으로 간주해 의무적으로 보게 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 졸업시험 겸 모의시험을 치른 로스쿨생들의 성적이 다소 좋지 않다는 것이다. 모 로스쿨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모의시험 결과 실제 변호사시험 과락률에 대비했을 때 약 20%의 학생들만 간신히 커트라인을 통과했다고 한다. 만약 이것이 실제 시험이었다면 해당 학교 로스쿨생 중 약 80%가 변호사자격시험에서 탈락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이 관계자는 또 “변호사시험 커트라인에 맞춰 로스쿨생들을 유급시키려고 했더니 전체 인원의 절반 이상을 과락 시켜야 할 만큼 대부분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서 “원칙대로 유급시키자니 변호사시험을 치를 학생 수가 너무 줄어들기 때문에 유급률은 당분간 상의를 거쳐 조정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결국 내년도 변호사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시험의 난이도가 될 전망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들어 전국 로스쿨 원장들이 변호사시험 출제위원회 측에 “난이도를 쉽게 해 달라”며 체면을 구기고 ‘간청’을 하는 횟수가 늘었다는 후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소재 모 로스쿨 원장은 “되도록이면 쉽게 출제해서 75% 합격률을 유지하는 게 옳다고 본다. ‘책을 덮고 보는’ 변호사시험을 꼭 잘 봐야 법조인으로서의 능력을 검증받는 게 아니다. 로스쿨생들은 전반적으로 법조인으로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은 상위 1%의 학생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시험인 변호사시험만 무난히 통과하게 해주면 앞으로의 실무에서 그 잠재력을 뽐낼 수 있을 것이다”고 주장했다.
김포그니 기자 patronus@ilyo.co.kr
학교도 학생도 “신림동이 짱”
내년도 제1회 변호사시험에서 지방 로스쿨이 서울지역 명문 로스쿨보다 더 우수한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난 7월 시행된 ‘변호사시험 모의시험’ 선택형 부문에서 지방 로스쿨생들이 서울지역 로스쿨생들보다 약 10점 정도 높은 점수를 획득한 것으로 <일요신문> 취재결과 확인됐다. 10점이면 꽤나 큰 점수 차이라서 눈여겨볼만하다.
이처럼 소위 비명문권으로 분류되는 지방 로스쿨이 변호사시험을 코앞에 두고 치러진 중요한 모의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은 데에는 그들 나름의 노력이 있었다.
한 지방 로스쿨에 재학 중인 정 아무개 씨(30)는 매주 목요일 학교 수업을 마친 후 서울 신림동으로 올라온다. 이곳에서 금, 토, 일요일 3일 동안 변호사시험 관련 보충 수업을 듣는다. 정 씨는 “학교 측에서도 사교육을 통해 개인 기량을 올리는 것을 은연중에 장려하는 분위기다. 모로 가도 시험에 합격만 하라는 뜻인 것 같다”며 “지방 로스쿨의 경우 아무래도 서울지역 로스쿨보단 인턴이라든지 기타 혜택이 다소 적은 편이라서 이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몇 배의 노력을 들이고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비단 지방 로스쿨생 개인만의 노력 말고도 그동안 대다수 지방 로스쿨 측은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해왔다. 일례로 C 대 등 지방 로스쿨 7개 학교에서는 신림동 고시촌에서 이름난 학원 몇 군데에 모의고사를 7~9차례 대행해줄 것을 의뢰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한 지방 로스쿨의 경우 지난 9월부터 일주일에 1회씩 총 9차례 모의시험을 유명 사설학원 측에 의뢰해 시행해왔다. 1회차 모의고사당 약 100만 원을 지불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방로스쿨 측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소위 명문으로 분류되는 SKY(서울대 고대 연대)를 비롯한 서울 로스쿨 측에서는 교수님들 자존심 때문인지 사설 학원에 모의고사 의뢰를 안한다. ‘학원 주제에 너희가 뭔데 모의시험 문제를 만드냐’는 것이다. 반면 지방 로스쿨들은 로스쿨 자체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방면에서 로스쿨생들의 기량 향상을 위한 해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원 관계자는 사설학원과 지방 로스쿨 간의 협력관계를 설명하며 “지방 로스쿨 교수들은 문제 해설이라든지 채점 과정 등이 아직까진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이런 면에서 노하우를 갖춰놓은 사설학원에 의뢰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일부 로스쿨에서는 실무 출신 교수 비율이 낮기 때문에 실제 소송업무를 해본 법조인 출신 학원강사에게 모의시험 출제를 의뢰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일전에는 한 지방 로스쿨에서 학생들이 직접 돈을 모아 고시촌 학원강사를 로스쿨에 초청해 특별강의를 진행한 일도 있었다. 이런 움직임에 당초 해당 로스쿨 교수들은 다소 불쾌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나중엔 오히려 모자란 돈을 보태며 학생들의 학업열의를 독려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변호사시험을 코 앞에 둔 막판 레이스에서 학생들을 위해 몇몇 지방 로스쿨 교수들이 권위의식을 과감히 버려 눈길을 끌고 있다. 자비를 들여 유명 신림동 고시촌 강의를 직접 수강해보고 벤치마킹하여 학교 강의에 적극적으로 도입한다는 것이다. 평소 고시촌 유명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고 밝힌 한 지방 로스쿨 교수는 “학생들한테 인기있는 학원 강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했다.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강의 방식이 있다면 대학 교수라는 권위 의식을 저버릴 용의가 있다”면서 “나처럼 사설학원 강의를 몰래 들어본 교수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